지난 2000년 일어난 살해사건으로 용의자가 실형을 선고받아 복역중인 가운데 또다른 용의자가 등장해 관심을 끌고 있다. 전북 군산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2000년 8월 익산시 영등동 시내에서 발생한 택시기사 유아무개씨(42) 살해 사건이 마무리 돼 최아무개군(19)이 복역중인 상황에 이 사건의 또 다른 용의자인 김아무개씨(22)가 나타나 지난 5일 그를 긴급 체포했다고 밝혔다.
하나의 살인 사건에 두 명의 범인이 나타난 것이다. 이 사건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범인이 두 명이라는 점외에도 만일 3년 만에 나타난 용의자가 범인이라면 현재 수감중인 피의자가 2년10개월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한 셈이기 때문.
이렇게 되면 당시 수사를 했던 경찰과 검찰, 판결을 내린 사법부로까지 멀쩡한 시민을 살인자로 내몰았다는 점에서 책임론이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택시기사 살해사건의 시작은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지난 2000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북 익산시의 시내에서 새벽 2시가 넘은 시각에 영업용 택시를 몰던 40대 유아무개씨가 칼로 10여 차례 찔려 차 안에서 피살당한 채로 발견된 것.
이후 경찰은 3일 만에 이 사건의 용의자로 당시 열여섯 살이던 최아무개군을 지목했다. 최군을 검거한 데는 목격자의 진술이 주요했다.
당시 이 사건을 목격한 사람은 ‘범인은 노랑머리’라고 지목했고,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수사를 펼치던 경찰은 최군을 용의자로 체포하게 된 것이다.
이후 경찰은 조사 끝에 최군으로부터 범행 일체에 대한 자백을 받아냈다. 경찰의 조서 내용에 따르면 최군은 사건 발생일 새벽 2시경 오토바이를 타고 이 근처를 지나가던 중 택시기사 유아무개씨와 시비가 붙었고, 홧김에 칼로 유씨를 살해했다는 것이었다.
최군은 10여 차례에 걸쳐 유아무개씨를 찔렀고, 이후 도피생활을 하던 중 경찰에 붙잡힌 것으로 돼있다.
경찰은 피의자의 자백과 목격자 진술을 근거로 최군에 대한 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피해자를 살해한 도구인 칼은 결국 찾아내는 데 실패했다.
이후 최군은 실형 10년형을 선고받아, 현재 충남 천안소년교도소에서 2년10개월째 복역을 하고 있다. 그러나 자백을 했다는 최군은 복역하면서 담당 경찰 수사관과의 면담에서 “사실 나는 택시기사를 죽이지 않았다. 나는 범인이 아니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물론 증거물을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이 사건은 피의자의 자백 등으로 별 무리 없이 마무리가 됐다. 그러나 문제는 3년여 시간이 지난 뒤에 벌어졌다.
전북 군산경찰서는 해결되지 않은 몇 건의 택시강도 사건에 대한 수사를 시작하던 중 또다른 첩보를 접하게 됐다는 것. 입수한 내용은 지난 2000년 택시 기사 유아무개씨 살해사건의 범인은 아직도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미 종결지은 사건에 용의자가 새로 나타났다니 경찰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군산경찰서 관계자는 “해결되지 않은 몇 건의 택시 강도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비슷한 수법을 저지른 전과자를 만나 탐문수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지난 2000년 택시기사 살해사건의 용의자가 따로 있다는 내용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이후 경찰은 지난 5일 3년 만에 나타난 용의자인 김아무개씨(22)와 그의 친구인 임아무개씨(22)를 긴급 체포했다. 김씨 역시 경찰의 심문 과정에서 당시 범행의 일체를 자백했다.
군산경찰서에 따르면 김씨는 사건 당시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흉기를 가방에 숨긴 채 택시를 탔다는 것. 택시기사에게 흉기를 들이대며 금품을 요구했으나, 택시기사가 완력을 쓰며 반항을 하자 시비 끝에 자신의 흉기로 기사를 살해를 했다는 것이 김씨가 실토한 내용이다.
용의자는 사건 발생 직후에 친구인 임아무개씨에게 전화를 건 후 임씨의 집으로 찾아갔고, 이후 임씨는 10일 동안 김씨를 숨겨줬다는 것이었다.
용의자 김씨와 함께 경찰에 체포된 임씨는 진술서에서 “당시 김씨의 얼굴과 옷 등이 피범벅이 돼있었고, 범행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칼이 가방 안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검찰은 용의자 김씨가 범행 수법으로 사용한 칼 등 직접적으로 증거가 될 만한 것이 없는 데다가 유일한 증거는 자백뿐이라는 점을 들어 48시간이 지난 후 이들을 석방했다.
그러나 하나의 살해사건에 두 명의 용의자가 나타나자 이 사건은 세간에 알려지게 됐다. 더욱이 두 명의 용의자 모두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는 점에서 누가 진짜 진범이냐를 두고 말들이 많은 것이다.
현재 복역중인 최군의 경우에도 자백과 목격자 진술이 유일했고, 새로운 용의자로 지목된 김씨의 경우도 자백과 친구의 진술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인권단체 등은 이 문제를 한층 더 확대시켜 피의자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경찰이 가혹행위를 통해 허위 자백을 받아낸 것이 아닌지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민변 전주지부 회장인 박민수 변호사는 “경찰이 영장을 청구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계속 지켜보고 있다”며 “특히 현재 수감중인 최군의 경우 수사과정에서 경찰의 가혹행위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또 “진범을 가려내는 여부는 수사기관의 의지에 달려있다”며 “향후 공동기자회견 등을 통해 이 사건의 진범을 가려내는 일을 공개적으로 촉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인권단체 등도 수감중인 피의자가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재수사를 촉구하고 있어서 파문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