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철없는 20대 3명은 “별(전과)을 달고 나오면 조직의 힘든 막내생활을 면할 수 있을 것 같아 일부러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이번 사건의 취재 결과, 황당한 이들의 범행 고백보다 더 황당했던 것은 깡패·건달들을 수없이 상대하는 일선 강력반 형사들의 증언이다. “이런 류의 조폭 막둥이들의 감방신고식은 늘상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지난 6월5일 수원에서 술을 마신 후 “조폭에게 왜 술값을 받느냐”는 억지를 써 가며 술집에서 난동을 부린 20대 3명이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수원 지역의 한 폭력조직의 일원이라고 밝힌 이들은 경찰에서 “조직 막내생활이 너무 힘들어 교도소에 갔다오면 조직 내 서열이 올라갈 것이라는 기대에 일을 저질렀다”는 변명을 당당하게 늘어놓았다. 이제 갓 10대를 벗어난 조폭 ‘막둥이’가 일부러 죄를 지으면서까지 ‘감옥행’을 자초하고 나선 것이다.
조폭 막둥이들의 이런 범죄 행각은 흔히 있는 일은 아니지만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는 게 일선 형사들의 반응이다. 이런 류의 범행을 조폭들은 ‘감방신고식’이나 ‘자진출두’라는 용어로 사용한다고 한다.
이제 갓 스무살을 넘겼을 법한 ‘덩치들’이 폭력사건을 저질러 입건되면 형사들도 “감방신고식 온 거 아닌가”하는 의심부터 일단 하게 될 정도라는 것. 특히 취조를 받는 중에도 주눅들지 않으려고 어깨를 펴고 고개를 뻣뻣하게 세우면 십중팔구 조폭 막둥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스스로 철창행을 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조직 내에서 인정받아야 한다는 조바심 때문. 30여 년간 조폭 검거를 담당해온 서울경찰청 기동수사대 김종역 관리반장은 “조폭사회도 일반사회와 마찬가지로 내부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자신의 능력을 알리려고 일부러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위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면 평생을 막내 노릇만 하다 조직생활을 끝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전과라는 일종의 ‘훈장’ 하나를 달게끔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영화 <초록물고기>에서 한석규가 리얼한 조폭 막내 연기 를 했다. | ||
이러다보니 신참 조직원들에게 ‘감방신고식’은 ‘진정한 조폭’이 되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쯤으로 여겨지고 있다.
스스로 교도소 생활을 결심하기까지에는 ‘언젠가는 보스가 되고 말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한몫을 한다고.
인천의 한 폭력조직에 몸담은 적 있는 박아무개씨(31)는 “별 하나는 달아야 한다는 건 기본이고, 최소한 ‘3성장군’(전과3범)쯤 돼야 어깨에 힘 좀 주고 동생들을 거느릴 수 있다고 여긴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빵(교도소)에 갔다오는 게 보스가 되기 위해서는 유리하다는 얘기들을 많이 들었다”라고 밝혔다. 보스가 되겠다는 부푼 희망을 안고 당당하게 교도소행을 택한 신참들이 박씨 주변에도 여럿 있었다고 한다.
무조건 교도소행을 택하는 것만으로 인정받는 것은 또 아니다. 같은 철창 신세라 하더라도 어떤 과정으로 들어갔는지에 따라 또 등급이 매겨지기도 한다.
박씨는 “이번 사건처럼 일선 경찰서에 입건되는 정도로는 크게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큰 건을 터트려 검찰이나 경찰청 조폭전담반 담당자와 ‘독대’를 하는 정도가 돼야 제대로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술집에서 행패부리는 정도는 애교 수준이라는 것. 조직 내에서 ‘넘버3’가 되려면 최소한 “신문 사회면에 이름 석자 정도는 올려야 한다”는 말이 우스갯소리만은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실제 ‘감방신고식’을 마치고 조직에 다시 복귀한 후 이들의 생활에는 큰 변화가 있을까. 90년대 초 신고식을 경험한 박씨는 “별반 달라진게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자신을 경계하는 시선만 늘어났을 뿐 조직생활에서는 그다지 나아진 대접이 없더라는 것.
박씨는 “행동대원 막내들은 대부분 허드렛일이나 형님들이 직접하기 꺼려하는 지저분한 일들을 도맡아 해야 하는데 출소 후에도 이 생활은 여전했다”며 “조직 규모나 개인 능력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오늘날에도 대부분 상황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결국 서열상승을 통해 보스의 자리에 오르려는 야심가(?)들은 또다른 범죄를 통해 ‘훈장’만 늘리는 악순환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 김 반장은 “처음 교도소에 들어가기가 어렵지 일단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 제집 드나들 듯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생활을 반복하다 어느날 조직이 와해되거나 버림받으면 오갈 데 없는 처량한 신세가 되는 게 바로 조폭 막둥이들의 삶”이라고 강조했다.
영화에서처럼 멋있는 ‘보스’를 꿈꾸며 교도소에 첫발을 내딛지만, 정작 남는 건 하나 둘 늘어난 전과기록과 고단한 육체뿐인 것이 ‘막둥이’의 미래라는 것이다.
안성모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