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절도, 성폭행, 강도, 살인 등 그 범죄유형도 갈수록 흉악해지고 있어 채팅 이용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채팅범죄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대화상대의 범죄가능성 여부를 ‘만남’ 이전에 미리 살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
사이버범죄 담당 일선 형사들은 “대화상대의 말투나 대화 접근 방식 등을 조금만 주의깊게 들여다보면 단순한 대화가 목적인지, 범죄가 목적인지를 충분히 식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2일 이아무개씨(24·여)는 채팅사이트에서 만난 김아무개씨(25·남)의 “드라이브를 시켜주겠다”는 말에 약속장소로 나갔다 큰 봉변을 당했다.
시내에서 만나 야외로 향할 때만 해도 이씨는 잠시 후 겪게될 사건을 상상조차 못했다. 고급승용차에 인사성 바른 김씨가 그저 돈 많고 매너 좋은 이른바 ‘킹카’로만 보였다. 하지만 인적이 드문 곳에 도착하자 김씨는 흉기를 든 흉악한 강도로 돌변했다. 결국 이씨는 온몸이 묶인 채 자신이 가진 금품을 모두 뺏긴 후에야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씨의 경우처럼 채팅으로 처음 알게된 대화상대가 ‘함께 드라이브를 하자’며 만남을 제의해오면 절대 응해서는 안된다는 게 일선 형사들의 한결같은 충고다. 특히 고급 승용차를 앞세워 유혹해올 경우 십중팔구 불순한 의도를 품고 있다는 것.
경기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최보윤 경장은 “신분확인이 불가능한 채팅을 통해 만남을 가지는 순간 이미 범죄 위험에 노출된 상태”라고 지적한 후, “특히 차량 안에서 벌어지는 범죄는 주변으로부터 도움을 받기가 힘들기 때문에 ‘드라이브 제의’는 과감하게 거절하는 게 현명하다”고 조언했다.
지난달 28일 채팅으로 만난 여중생에게 “계모 슬하에서 불우하게 자라 현재 이혼한 상태”라며 동정심을 유발시켜 성관계를 맺어온 40대가 구속되는 일이 있었다.
15일에는 “남편에게 학대받는다”며 불우한 가정생활을 하소연하는 수법으로 50대 남자에게 접근, 2천여만원을 가로챈 30대 여성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대구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김창배 경장은 “채팅을 통해 자신이 불우한 것처럼 속여 동정심을 유발시킨 후 금품을 가로채는 사기사건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며 “특히 어린 여중고생이나 혼자 사는 중장년층 남성 등 감상에 빠지기 쉬운 상대를 범행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며 도움을 청하는 이른바 ‘사이버 앵벌이’도 이와 비슷한 사례. 이들은 ‘생활비가 없어 온 가족이 거리로 나앉게 됐다’ ‘수술비가 모자라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됐다’ 등 온갖 거짓말로 동정을 구한 후 대대적인 ‘모금활동’을 펼친다고.
김 경장은 “큰 금액이 아니고 강제적인 갈취가 아니라서 사소한 것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한번 피해를 입은 사람은 이후 정말 도움이 필요한 불우한 이웃까지도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된다”며 ‘사이버 앵벌이’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자신의 직업 등 배경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람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채팅시 대화명과 성별 나이 등 기본정보만 공개한다거나, 직업을 공개하더라도 허위기재가 가능하다는 점을 십분 활용해 직업을 사칭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대전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이상철 경감은 “변호사 교수 재미교포 등을 사칭해 상대방의 시선을 끈 후 서서히 범죄행각을 준비하는 경우가 있다”며 “직업사칭은 오프라인에서도 발각해내기 쉽지 않은 만큼 채팅에서는 특별히 주의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술집 종업원 출신의 30대 남자가 재미교포 음악가 행세를 하며 채팅에서 만난 여성 5명을 성폭행하고 1억여원을 가로챈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울산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김규태 경장은 “일대일 대화만을 고집하는 사람은 채팅 이후에도 지속적인 만남을 요구, 이후 스토커 등 범죄자로 돌변할 가능성이 있다”며 “‘대화거부상대’로 등록하는 등 거부의사를 명확히 밝혀 ‘후환’을 없애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신상을 비공개 상태로 해놓는 사람과도 대화를 피하는 게 역시 상책이다. 김 경장은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공개하지 않는 등 자기정보 공개를 극도로 꺼리는 경우는 뭔가 떳떳하지 못한 게 있는 사람”이라며 ‘기피인물’로 지목했다.
이외에도 대화명을 자주 바꾼다거나, 전화번호 등 연락처를 끈질기게 물어보는 사람도 멀리해야 한다는 게 일선 형사들의 충고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지경현 경위는 “인터넷 채팅 자체를 중단하기 힘들다면 보다 조심스럽게 이용할 필요가 있다”며 “너무 안일하게 상대를 신뢰하고 자신의 개인정보를 누출하는 것은 자칫 범죄행위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팅범죄자 감별 10계명]
다음은 세이클럽, 스카이라이프 등 국내 대형 채팅사이트에서 활동중인 사이버폴리스들이 말하는 ‘채팅범죄 자가진단법’이다.
1. ‘조건만남’ ‘스폰서’ ‘알바모집’ 등을 대화명을 사용하는 사람은 채팅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예비범죄자다. 채팅사이트 내에서 이 대화명들은 ‘성매매, 특히 원조교제를 바란다’는 의미로 통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 내 개인정보 게시판에 ‘쉽게 돈 버는 법 가르쳐줌. 연락처(01X-XXXX)로 연락바람’ 등의 메시지를 남겨놓는다.
3. ‘쪽지’나 ‘귓속말’을 통해 은밀하게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연락을 기다린다.
4. 대화 거부의사를 밝혀도 일대일 데이트(대화)를 계속해서 신청한다.
5. 비공개방을 개설해 놓고 여러 상대에게 한꺼번에 초청메시지를 보낸다.
6. 상대에 따라 직업정보를 변경해가며 대화를 나눈다.
7. 채팅방에 음란·공포·혐오물 등을 올리거나 이런 내용물을 보여주겠다고 제의한다.
8. 운영자를 사칭해 대화를 나누거나 메일을 보내 상대정보를 알아내려 한다.
9. 특별히 묻지 않아도 자신의 직업이나 배경 등을 장황하게 설명한다.
10. 채팅이 초보라거나, 별로 채팅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대화속도가 상당히 빠르고, 상대방의 대화 속도가 느리면 답답해 한다.
안성모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