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엽기 카사노바 진씨의 소지품들. 왼쪽은 그동안 찍어둔 비디오 테이프, CD, 사진들. | ||
<일요신문>은 문제의 이 남성이 사용하던 수첩과 카메라 등을 단독 입수해 그 내용을 바탕으로 그간의 행적을 추적했다.
현재 유명 회사의 디자이너로 근무하는 김아무개씨(여·27). 김씨는 지난해 인터넷 채팅 사이트를 통해 문제의 남성인 진아무개씨(30)를 만났다. 184cm의 키에 수려한 외모를 지닌 이 남성은 자신을 벤처 사업가로 소개했다.
진씨는 평소 명품옷을 즐겨 입었으며, 데이트 약속이 있을 때마다 일제 컨버터블 스포츠카를 타고 등장했다. 진씨의 화려한 생활과 수려한 외모는 단숨에 김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은 만난 지 얼마되지 않아 깊은 관계를 가졌고, 기념으로 비디오 촬영까지 했다. 얼마 전에는 결혼을 전제로 유럽으로 해외여행까지 다녀왔다.
그러나 진씨가 마각을 드러낸 것은 이때부터. “사업 자금이 필요하다”며 김씨로부터 돈을 빌려줄 것을 요구한 것. 이때까지만 해도 김씨는 진씨를 매너 좋은 청년 사업가로 생각했다. 때문에 3천6백만원에 달하는 거금을 선뜻 내놓았다.
그러나 김씨는 얼마 가지 않아서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을 자책해야 했다. 평소 사기꾼들에게 농락당한 여성들의 기사를 보며 ‘어떻게 이렇게 어리석을 수가 있을까’ 비웃곤 했던 자신이었지만, 막상 스스로가 그 ‘한심한 여성’의 한 부류가 되었음을 뒤늦게 깨달은 것. 평소 주변으로부터 똑똑하고 야무지다는 소리를 들었던 그녀였지만, 진씨의 완벽한 사기극에는 어쩔 수 없었다.
뒤늦게 일이 잘못됐음을 안 김씨는 진씨에게 빌려준 돈을 갚을 것을 요구했으나, 오히려 진씨로부터 “인터넷에 성관계 장면을 담은 테이프를 유통시켜 망신을 주겠다”는 협박만 받았다. 그리고 추가로 돈을 더 내놓을 것을 요구하는 진씨의 파렴치함에 치를 떨다가 고민 끝에 경찰에 그를 고소했다.
경찰 조사 결과 진씨는 사업가가 아닌 전직 호스트바 종업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94년부터 8년간 일본에 체류하며 호스트로 일하다 지난해 3월 귀국한 것. 일본의 상류층 여성 및 한국 관광객 여성들을 상대해 온 그는 이처럼 ‘여성들 상대하는 법’을 다년간 학습해온 셈이다.
▲ 수백 개에 달하는 모텔 명함들, 캠코더, 고성능 디지털 카메라 등 | ||
이 같은 방법으로 지난해 4월부터 최근까지 진씨가 만난 여성은 40여 명. 경찰에 따르면 진씨는 여성들에게 접근한 주요 통로로 인터넷을 활용했다. 인터넷 채팅을 통해 사냥감을 물색한 후 “밖에서 만나자”고 유인하는 게 진씨의 일관된 수법이었다. 경찰조차도 어이없어 할 정도로 고전적인 진씨의 수법은 전문직 여성들에게 백발백중으로 먹혀 들었다.
실제 기자가 확인한 피해 여성들의 직업은 교사, 디자이너, 사업가 등 그야말로 전문직 여성 일색이었다. 미모 또한 빼어나고 경제적 능력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어떻게 이 같은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경찰이 증거품으로 압수한 진씨의 소지품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명함집을 펼치자 여관이나 모텔의 명함 수백 개가 지역별로 분류돼 있다. 진씨가 직접 작성했다는 수첩을 열자 우선 그동안 피해본 여성들과 찍은 사진 수십여 장이 눈에 띈다.
수첩 뒤쪽에는 진씨가 관리하는 여성들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빼곡이 적혀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만나는 여성과의 스케줄을 시간별로 적어놓았을 뿐 아니라 만나는 장소도 비교적 상세히 그려져 있다. 한 명, 한 명을 완벽하게 ‘관리’해온 셈이다.
김씨가 간직해온 세 대의 캠코더와 고성능 디지털 카메라 두 대, 성관계 장면을 찍은 97개의 비디오 테이프의 내용 역시 혀를 내두르게 한다. 카메라마다 김씨와 관계를 가진 여성들의 나체와 성기를 확대해 찍은 모습이 가득 담겨있다. 어색하거나 강제적이라기보다는 대개가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일본의 연인들은 이렇게 데이트를 즐기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곤 한다는 진씨의 말에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러려니 하고 응했던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테이프를 보면 웬만한 포르노 사이트는 저리가라 할 정도”라며 혀를 찼다. 그는 “남성 성기를 본뜬 기구를 사용해 변태 섹스를 즐기는가 하면, 2대1의 변태 섹스도 즐긴 장면이 고스란히 들어있다”고 말했다. 결혼을 전제로 성관계를 허락한 여성들도 있었던 반면, 단순히 돈많은 벤처사업가와 즐겨보자는 식의 여성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는 반증이다.
이석 프리랜서 zeus@newsbank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