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마당에 이번에는 예비 법조인인 사법연수원생이 여성을 상대로 여러 해 동안 파렴치한 성폭행을 저지른 사건이 터져 법조계는 내우외환의 몸살을 앓고 있다.
낮에는 예비 법조인, 밤에는 성폭행범으로 생활해오다 경찰에 붙잡힌 사법연수원 1년차 임아무개씨(31).
임씨의 범행 수법은 사건을 수사중인 경찰마저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집요하고 치밀했다. 음란한 대화내용을 녹음한 테이프를 미끼로 거액의 돈을 뜯어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피해 여성을 성폭행하고, 그것도 모자라 변태적인 포즈까지 강요해 사진에 담는 등 예비 법조인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일관했다.
사법연수원측은 임씨의 혐의 내용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엄하게 다스린다는 방침이다.
임씨가 피해 여성인 김아무개씨(27)를 만난 것은 지난 95년. 당시 임씨는 S대 공대를 중퇴하고 단기 사병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임씨는 무작위로 전화번호를 눌러 폰섹스를 즐기는 이른바 ‘묻지마 폰팅’을 통해 피해 여성인 김씨를 처음 만났다.
장난과도 같은 두 사람의 관계는 급속히 가까워졌다. 밖에서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전화를 통해 성적 농담뿐 아니라 음란한 대화까지 나눌 정도로 친해졌다. ‘양의 탈을 쓴’ 임씨의 본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
임씨는 “대화 내용을 인터넷에 공개해 망신을 주겠다”며 김씨를 협박하기 시작했다. 김씨는 유학을 핑계로 집전화와 휴대폰 번호를 바꾼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소용이 없었다. 김씨의 학교와 이름을 알고 있던 임씨가 동창회 사이트나 포털사이트의 ‘친구찾기’ 서비스를 통해 전화번호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김씨는 결국 2002년 1월 서울의 한 대학 캠퍼스에서 임씨를 만나 테이프를 없애는 조건으로 6백만원을 건네줬다. 그러나 빼앗긴 것은 돈뿐만이 아니었다. 임씨는 김씨를 인근 모텔로 끌고가 강제로 성폭행했다.
이후에도 임씨는 수시로 김씨를 불러내 성폭행을 하고 돈을 뜯었다. 이 같은 방법으로 지난 몇 년간 임씨가 갈취한 돈은 2천8백여만원. 피해 여성은 경찰에서 “갖가지 이유를 붙여 만날 것을 강요했다”며 “나오지 않으면 집에 알린다고 협박을 하는 통에 안 나갈 수가 없었다”고 진술했다.
임씨의 엽기적 행각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성폭행이나 돈을 갈취하는 것도 모자라 야채나 술병과 같은 도구를 이용해 음란한 장면을 연출하게 한 후, 이 장면을 폴라로이드 카메라에 담았다.
놀라운 사실은 사법고시에 합격해 연수원에 입학한 후에도 이 같은 행각을 그만두지 않았다는 점. 임씨는 지난해 12월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때문에 지난 9개월 동안 낮에는 장래가 촉망받는 예비 법조인으로, 밤에는 엽기적인 성폭행을 벌이는 파렴치범으로 살아온 셈이다.
▲ 고양시 일산의 사법연수원 건물. 성폭행사건으로 분위기가 뒤숭숭해졌다. | ||
그렇다고 해서 성적이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연수원측은 현재 프라이버시 문제라며 임씨의 성적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성적 또한 상당히 우수했다는 게 연수원 동기생들의 귀띔이다.
또다른 연수원 동기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성적이 상위그룹에 속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일만 아니었어도 얼마 후 검사나 판사에 임용됐을 것”이라며 못내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다른 풀이가 가능하다. 그동안 성관계 장면을 촬영한 사진이나 비디오 테이프를 이용해 돈을 요구하는 사건은 종종 발생했다. 그러나 취재한 내용에 의하면 임씨의 경우는 얘기가 좀 다르다.
피해 여성의 신고가 없었다면 임씨는 법을 집행하는 검사나 판사로 임용될 수도 있었다. 이 같은 법조인 밑에서 어떻게 법이 제대로 집행될 수 있겠느냐는 게 사건을 접한 일반인들의 생각이다. 임씨의 사건이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다.
임씨 사건은 비단 연수원에서만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일선 검찰청 직원들에게도 적지 않은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임씨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 논쟁을 벌이는 등 만나는 사람마다 임씨 문제를 안주 삼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난 14일 12시 서울지검 서부지청. 때마침 점심시간이어서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이곳에서도 파렴치 사법연수원생에 대한 얘기가 화두가 되고 있었다.
“출세길이 열려있는 자리였는데… 안됐어.”
무슨 말인가 싶어 옆으로 가보았다. 다름 아닌 임씨에 관한 이야기였다. 담배를 피우고 있던 이 직원은 “가만히 있었으면 출세가 보장된 자리였는데 아깝게 됐어. 사법연수원생 신분에 뭐가 아쉬워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이해가 안간다”며 혀를 찼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 직원이 목소리를 높인다. 이 남성은 “그런 사람은 벌을 받아도 싸지. 세상에 어디 할 일이 없어 그런 짓을 저질러”라고 말했다.
사법연수원측은 현재 임씨 사건의 진상조사에 착수한 상태. 혐의 내용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엄격하게 다스린다는 계획이다. 임씨가 받게 될 징계 종류로는 파면, 정직, 감봉 등이 있을 수 있다. 이미 임씨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구성됐고, 위원도 선임된 상태다.
사법연수원 고원석 기획총괄교수는 “경찰 수사와 본인 확인을 토대로 혐의 내용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징계한다는 방침이다”며 “아직까지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범행 수법으로 봤을 때 어떤 징계가 내려질지는 추측이 가능한 것 아니겠냐”며 파면쪽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임씨가 자신의 혐의 내용의 일부를 강하게 부정하고 있는 상황. 임씨는 경찰에서 “상대 여성 역시 나를 좋아해 성관계를 갖고 사진도 찍었다”고 진술했다.
고원석 교수는 “수사기관의 조사를 토대로 징계 절차가 진행되겠지만 본인 확인 절차도 필요하다”며 “임씨가 검찰에서 혐의의 일부를 부인하고 있는 만큼 결론이 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석 프리랜서 zeus@newsbank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