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9일 국회 본청 귀빈식당에서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왼쪽에서 두 번째)과 김한길 전 새정치연합 대표(왼쪽에서 세 번째)가 의기투합해 ‘오늘, 대한민국의 내일을 생각한다’ 토론회를 열었다. 뒷 모습은 안철수 의원.
양당 대표와 대표 격이 총출동했고 여야 의원 합쳐 90여 명이 눈도장을 찍자 한쪽 자리에선 “본회의를 열 수 있는 의사정족수보다 많네”라는 말도 나왔다. 미래권력의 상수로 회자하는 두 의원이어선지 1시간 30분이 넘는 토론회 시간, 끝까지 자리를 함께한 의원도 40명이 넘었을 정도였다.
두 의원은 국회 외교통일위 소속으로 지난해 국정감사 때 미주반에 배속됐다. 새누리당 미주반은 유 의원 외에 나경원 정병국 의원이, 새정치연합에선 정세균 의원이 포진했다. 새누리당 의원 모두 차기 원내대표군에 속해 있고, 정 의원은 불출마 선언을 했지만 차기 전당대회 대표 후보 ‘빅3’로 회자한 굵직한 인물들이다.
김한길 의원은 “우리 미주반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은 유 의원과 둘뿐이었다. 담뱃값이 진작 인상됐다면 이런 토론회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라 농을 했고, 유 의원은 “건물 밖에서 이야기를 나눌 일이 많았다. 정말 많은 고민을 공유했다”며 그 농을 받았다. 이 ‘김유합작’ 속 정치적 함의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차기 원내대표에 도전할 유 의원은 외연 확장, 즉 본인의 개혁적 성향을 배경으로 이념적 스펙트럼 넓히기에 나섰다는 얘기가 많다. 야당 의원들로부터도 ‘합리적 보수주의자’, ‘말이 통하는 여당 의원’으로 불리는 유 의원은 이날 토론회에서 ‘성장과 복지가 함께 가는 국가전략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발제했다.
그는 “성장, 복지, 통일이라는 3대 국가 아젠다에 대한 국가전략이 없다”고 지적했고, “저부담-저복지로는 양극화를 해결할 수 없고, 고부담-고복지는 그럴 재정이 없다. 중부담-중복지에 대한 수렴과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전제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했고, “가진 자가 더 많은 세금을 낸다는 원칙하에 어떤 세금을 더 거둘지 고민하자”고 밝혔다. ‘증세 없는 복지’를 이야기하는 박근혜 정부와 다른 말이고, 새누리당 누구도 꺼내지 않았던 ‘부자증세’를 꺼내 든 말이기도 했다.
계획대로라면 오는 5월 치러질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은 내년 5월, 그러니까 2016년 4월 20대 총선 이후까지가 임기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캠프에서 뛰었던 유 의원은 지난 대선 박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의 부위원장을 역임하면서 큰 선거를 치러본 경험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 지지율이 30%대로 추락하고, 보수 진영에 대한 표 확장이 주춤하고 있는 마당에 본인이 “중도를 안을 수 있는(한 초선 의원)” 이미지 제고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날 유 의원은 새누리당의 공과를 모두 짚었고, 정부에 대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예의 직설적인 화법은 피했다. 성장하기 위해선 지속 가능한 경제를 위한 분배도 중요하다고 강조했고, 최경환 경제부총리 주도로 펼쳐지는 ‘초이노믹스’, 이른바 단기 부양책에 대한 비판도 했다. “역대 정부는 정권 초 단기 경제 성적표를 잘 받으려는 유혹에 빠져 인위적 단기 부양책을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재정 건전성만 해칠 뿐”이라는 경고는 여권 내에서 듣기 힘든 지적이었다.
대표직을 내려놓고 칩거했던 김한길 의원은 이날 유 의원과의 토론회를 기점으로 공식 활동에 돌입한 모습이다. 우선 문재인 박지원 의원을 중심으로 전당대회 당대표 ‘빅2’ 구도가 형성된 가운데, 김 의원의 의중이 어떻게 작용할지 주목하는 이가 많다. 비노진영의 좌장 격인 김 의원이어서 아직 표심을 확정하지 않은 의원들을 움직일 수 있다는 말도 들린다. 특히 이날 함께 공동대표를 역임한 안철수 의원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면서 ‘김-안 상호보조’는 여전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 의원은 이날 “유 의원과의 고민의 근본이 다르지 않았다”고 했고, “정치의 중심은 청와대가 아닌 국회”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적대적 공생관계에 있는 양당 중심 정치가 상생적 경쟁관계를 이룰 때 정치가 국민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가 민간이 아닌 소속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벌였다는 점, 100명 가까운 여야 의원이 참석했다는 점을 두고 두 의원의 무게감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는 모습이었다. 여야의 주류에서 한발 비켜서 있는 두 의원의 의기투합이 앞으로 가져올 정치가 상생일지 ‘살생’일지 주목되고 있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