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1일 새해 첫 날. 문재인, 박지원 의원 두 당대표 후보 모두 야당 정치의 성지로 여겨지는 광주 무등산을 찾았다. 약간의 시차를 두고 각각 지지자들과 산행에 나선 두 당권주자들은 보란 듯 서로에게 비판의 날을 세웠다.
이날 오전, 무등산 문빈정사를 찾은 박지원 의원은 문재인 의원을 의식한 듯, “당권도 갖고 대통령 후보도 해야겠다는 분도 계신다. 이것은 두 번의 대통령 선거에 실패한 새정치연합으로서는 너무 한가한 말씀”이라고 몰아세웠으며, 오후 같은 곳을 찾은 문 의원은 “지금 우리 당이 안이한 상황이 아니다. 전당대회를 통해서 당을 다시 일으켜 세우지 않으면 다음 총선과 대선에 희망이 없다”고 맞받았다. 본격적인 당권 경쟁의 서막이 올랐음을 실감케 하는 두 사람의 새해벽두 공방전이었다.
이번 대결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가장 먼저 회자되는 포인트는 역시 이번 당권구도가 ‘민주당(계열)’을 대표하는 두 거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리전이라는 점이다. 박지원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문재인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을 지냈다.
묘한 공통점은 더 있다. 두 사람 모두 각 정부의 ‘문고리 권력’이라 칭해지는 마지막 비서실장을 지낸 만큼 이제는 고인이 된 두 전직 대통령의 최측근 이라는 점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각 계파에서 차지했던 비중이 처음부터 컸던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계파 내 주변부에서 점차 중앙으로 이동한 좌장들이다.
동교동계 출신으로 분류되는 박지원 의원은 기존의 1960~1980년대 형성된 동교동계 1~3세대와 비교하자면, 한참 늦게 발탁된 비주류였다. 때문에 혹자는 그를 동교동계보다는 범동교동계로 분류하기도 한다. 1970년대 김대중 대통령의 미국 망명 시절 후견인으로서 인연이 있지만, 박 의원이 김 대통령을 본격 보좌한 것은 1990년대 이후다. 훗날 기존의 동교동계 인사들로부터 시샘과 질투의 시선 속에서도 ‘김대중의 유서 집행자’라 칭해질 만큼 계파의 중심으로 파고들었다.
문재인 의원은 친노진영에서도 ‘부산파’로 분류됐던 인물이다. 굳이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콘텐츠를 만드는 데 기여한 공을 비교하자면, ‘부산파’보다는 안희정, 이광재 등 노 대통령의 보좌진 그룹을 중심으로 한 ‘서울파’를 꼽는다. 하지만 정권 창출의 중심부였던 서울파는 핵심 인사들의 구속과 대통령 탄핵 사태 등을 이유로 정권 말로 갈수록 주변부로 이동했고, 문 의원을 비롯한 부산파는 점차 중심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제 문 의원은 친노진영의 좌장으로서 중심에 섰으며, 부산파보다는 ‘문재인계’로 더 잘 불리고 있다.
이러한 일부 정치적 이력만 제외한다면, 두 사람은 하나부터 열까지 대립각에 섰다. 두 사람 모두 계파 대립 구도에 대한 해석은 손사래를 치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부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머지 군소 후보를 제외한다면, 문 의원은 친노진영의 좌장으로서 당권 경쟁에 임한다. 박 의원은 문 의원과 비교해 특정한 계파의 좌장이라 할 수는 없다. 다만 호남을 중심으로 비노 결집을 이뤄야 하는 박 의원은 구도상 자연스레 비노진영을 대표해 경쟁에 임한다.
‘혁신’과 ‘연륜’의 대결이기도 하다. 문재인 의원은 스스로 총선 불출마를 내세우며 시스템 공천과 계파 해산이라는 강도 높은 혁신안을 정면으로 내세웠다. 강력한 친노진영을 발판으로 경쟁자인 박지원 의원과 비교해 젊은 자신의 이미지를 확고히 하겠다는 심산이다.
반면 최고령 현역인 박지원 의원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연륜’과 ‘경험’을 내세우고 있다. 3선이라는 다수의 의정 경험과 청와대, 내각 등 정치경력으로만 따진다면, 단연 문 의원을 압도한다. 박 의원이 당·대권 분리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배경도 결국 이러한 자신감에서 나온다는 해석이다. 박 의원은 지난 연말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미국 양원 의장처럼 경험과 경륜을 갖춘 대표가 싸울 때는 싸우고 단독으로 협상할 때”라며 “나는 이미 두 번의 대선을 승리한 경험이 있다”고 자신의 장점을 내세우기도 했다.
공수 구도를 놓고 보자면, 최대 계파의 좌장으로 ‘스페셜 원’으로까지 불리는 문재인 의원은 수성의 입장이고, 박지원 의원은 이 강력한 친노진영을 넘어서며 대역전을 노려야 할 공세의 입장이다. 어찌됐건 급한 쪽은 박 의원 쪽이라는 분석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이렇게 진단했다.
“현실적으로 문재인 의원과 박지원 의원의 당권구도를 예측해 보자면, 5.5 대 4.5 정도다. 미안한 말이지만, 이마저도 박 의원에게 후하게 쳐줘 그렇다는 것이다. 친노진영과 대척점에 있는 중진들에 도움을 요청하는 한편, 호남은 물론 야권 내 취약지역으로 꼽히는 강원과 영남의 당심도 절박하게 끌어 모야 한다. 박 의원이 해당 지역의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주장하는 것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그래도 쉽지 않은 게임이다.”
박빙우세의 포지션을 취하고 있는 문재인 의원 입장이지만, 만에 하나 당권 수성에 실패한다면 사실상 회복불능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는 사실상 자신의 정계 이력의 ‘피니시 게이트(마지막 관문)’로 삼고 있는 박지원 의원 입장과 비교하자면 더욱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중도성향의 한 당직자는 “두 후보 모두 패배로 인한 데미지는 크겠지만, 더 부담스러운 입장은 응당 문재인 의원”이라며 “차기 총선 불출마를 공식화했다는 것은 결국 당권 접수 후 대권 직행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만에 하나 실패하면 대권 재도전은 물론 정계 복귀 자체가 쉽지 않다. 친노진영 내부에서도 차기 대권 후보로서 이제 안희정(충남지사)이라는 대안도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