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지검 전경. 뒤로 서울지법이 보인다. | ||
검찰의 곤혹스러움은 이 사건에 대한 취재 과정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현재 조사중이다” “별 것 아닌 좀도둑일 뿐이다”라며 애써 폄하하고 있지만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이 부담스러운 듯 명확한 답변은 회피하고자 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안씨가 검찰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생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취재한 결과 그동안 수도권 일대 검찰청이 털린 것은 한두 번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인천 지검의 한 검사에 따르면 그동안 검찰청 내에 자주 출몰한다는 신출귀몰한 도둑에 대한 얘기는 검찰내의 ‘이슈거리’였다는 것. 따라서 검찰 내부통신망에서는 이미 “또 지갑을 도둑맞았다” “범인이 사무실에서 나오는 것을 봤다” 등의 글이 여러 차례 게재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은 조직 특유의 폐쇄성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 도둑을 잡는 검찰청에 도둑이 설치고 다닌다는 얘기는 자칫 검찰의 권위 실추는 물론, 세인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출귀몰’한 도둑의 실체를 쉬쉬해 오던 와중에 안씨가 붙잡힌 것이다. 안씨를 상대로 수사를 벌인 인천지검 강력과에 따르면 안씨는 수도권 일대 검찰청사를 아무런 제재없이 드나들며 지갑 등을 훔쳤던 것으로 전해졌다.
안씨의 범행 행적은 가히 검찰 관계자의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 현재 밝혀진 내용으로 봤을 때 처음 범행을 저지른 날로 보이는 지난달 22일 안씨의 타깃은 국회 법사위의 국정감사가 한창이던 서울지검이었다. 검찰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서울지검에, 그것도 형사부 소속 검사실을 안씨는 노렸다. 더군다나 국회의원들과 취재진의 눈과 귀가 집중된 국정감사 현장에서. 안씨는 국감으로 혼란한 틈을 타 형사부 소속 검사실 두 곳에 침입, 지갑 등을 가지고 유유히 사라졌다.
안씨의 대담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틀 뒤인 24일 또다시 서울지검 청사에 들러 한 부장검사실 직원의 물건을 훔쳤다. 지난 6일에는 인천으로 원정까지 가 인천지검의 사무실을 털어 달아났다. 이렇듯 안씨는 지난 보름 동안 검찰청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절도 행각을 벌였다. 그러나 안씨의 엽기적인 행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대담하게도 인근 백화점에서 훔친 신용카드를 이용해 물건을 구입한 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안씨는 지난 6일 출동한 검찰에 의해 꼬리를 붙잡혔다.
인천지검의 한 관계자는 “자신의 신용카드를 사용할 경우 휴대폰에 문자메시지가 오는 기능을 설치한 한 검찰 직원의 신고로 가까스로 현장에서 범인을 붙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자칫 이 사건이 미궁으로 빠질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궁금한 점은 안씨가 왜 유독 검찰청만 골라 털었는가 하는 부분.
전과 5범인 안씨가 범행을 저지르기에 검찰청은 적당한 장소가 아니었다. 특히 안씨는 강·절도 사건을 다루는 형사부 소속 사무실만을 집중적으로 털어 절도 배경에 대한 의혹이 일고 있다.
일각에는 안씨가 검찰에 앙심을 품고 일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다. 강도 강간 등 특수 범죄 사실이 없는 단순 절도범인 안씨가 지난 10여 년간 교도소 및 보호감호소 등을 돌며 수감생활을 하다 지난 2001년 가출소했다는 점은 이런 해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검찰이 ‘약자’에게 더 엄격하다는 피해의식을 가졌음직하다는 것. 따라서 스스로 피해를 당했다고 생각하는 안씨가 검찰을 골탕먹일 심산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이 아니냐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이런 가능성에 대해 수사 당사자들은 조심스러운 반응. 인천지검 강력부의 한 검사는 “안씨는 현장에서 체포된 후 현재 인천지검 강력부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담당 검사가 배정되지 않아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단순한 도벽 때문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안씨는 절도로 붙잡힌 경우만 다섯 번으로 그동안 여러 차례 비슷한 범행을 저질렀다”며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면 훔친 카드를 백화점에서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은 현재 서울지법 절도 사건도 안씨의 소행이 아닌지 조사중이다. 검찰에 따르면 지난 2일 서울지법 남부지원의 한 판사실에도 도둑이 들어 옷걸이에 걸려 있던 옷에서 지갑을 훔쳐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 인천지검의 한 검사는 “조사 결과 안씨가 ‘서울지검과 나란히 있는 서울지법 사무실에도 침입해 금품을 털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며 “사건의 수법이나 시기 등이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안씨의 소행이 아닌가 추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검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법원과 검찰청을 차례로 습격한 그의 노림수가 더욱더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한편 간 큰 도둑의 ‘검찰청 습격사건’이 알려지면서 검찰측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사건 내용이 부담스러운 듯 다른 부서에 떠넘기기에 바쁜 모습이다. “솔직히 유쾌한 일이 아니지 않느냐”는 한 검찰청 직원의 말은 이런 분위기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
시민단체의 비난도 나오고 있다. 관공서가, 그것도 숱한 주요 수사 정보들이 산적한 검찰청 사무실이 무방비로 잇따라 털렸다는 점에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참여연대의 한 관계자는 “검찰은 지금 수사 정보 유출자 색출 명목으로 기자들의 통화내역을 추적할 것이 아니라 집안단속부터 철저히 해야 될 것”이라며 “다른 곳도 아니고 범죄자를 다루는 검찰청이 털렸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고 씁쓸해 했다.
이석 프리랜서 zeus@newsbank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