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9일 일가족 세 명이 둔기에 맞아 처참 하게 피살된 현장인 구기동 고아무개씨 자택. | ||
그러나 이 사건도 사건 현장의 정황과 살해방법 등으로 미뤄 원한에 의한 범행일 가능성이 높다는 추정만이 나오고 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것은 지난 10월9일 오전(경찰 추정). 경찰이 사체의 경직도와 체온, 주변 이웃들의 증언을 종합해 내린 추정이다. 피해자 시신은 지난 10월9일 오후 6시40분께 발견됐다.
피해자를 발견한 사람은 피해자 강씨의 아들인 고아무개씨였다. 그는 서울 강남의 한 주차장관리원으로 일하고 있다. 고씨는 경찰에서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초인종을 눌렀으나 응답이 없어 대문을 넘고 들어가 현관문을 열어보니 집안에 어머니와 부인, 아들이 피를 흘린 채 숨져 있었다. 어머니는 현관 입구 왼쪽 화장실에서 얼굴을 바닥에 대고 숨져 있었고 아내는 거실, 아들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얼굴을 천장으로 향한 채 숨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살해당한 일가족 세 명 모두 둔기에 맞아 얼굴과 두개골이 심하게 함몰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함몰 정도로 보아 해머나 당구공과 같은 둔기에 여러 차례 가격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얼굴과 머리 이외에 다른 상처는 없었고 세 명 모두 평소 집에서 입는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경찰 조사결과 집 내부는 비교적 깨끗했고 현금이나 통장도 그대로였다.
관할 서대문경찰서는 평창 파출소에 강력 5개반으로 수사팀을 구성하고 30여 명의 형사 인력을 투입,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일단 이번 사건을 면식범의 소행으로 압축시키고, 고씨 가족을 포함한 고씨 주변 인물의 알리바이부터 조사중이다. 사건 당일 비명 소리를 들은 이웃이 없다는 점,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자폐증에 걸린 아들을 살해한 점으로 미뤄 단순 강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이번 사건을 총지휘하고 있는 서대문경찰서 강인철 수사과장은 “잔인한 범행수법, 깨끗한 현장 등 여러 정황을 종합한 결과 고씨 가족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의 범행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면식범의 계획적인 범행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시사했다.
사건 당일 고씨의 집을 다녀간 가족 친지 주변 인물은 없었던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밝혀졌다. 고씨의 사업 동료나 현재의 회사 동료들에게서도 별다른 이상 징후를 포착하지 못했다. 현재까지 가족과 관련해 밝혀진 사실은 전무한 상황.
경찰은 장례식이 열린 10월13일 이후부터 가족과 주변 친지들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고씨의 진술을 토대로 은행 계좌와 통화 내역, 그리고 고씨가 사업을 그만두기 전까지 관계를 맺었던 인물들의 행적을 세세히 추적한다는 게 경찰의 수사방향.
특히 경찰은 고씨가 “지난 95년 컴퓨터 사업을 그만둔 뒤 아내가 집안의 경제권을 가졌다”고 진술함에 따라 아내 이씨가 제3의 인물에게 원한을 샀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사중이다. 한편 사건 발생 당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던 주변인물 A씨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한 혐의점을 찾지 못한 상태. A씨가 5천여만원가량의 은행 빚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나 범행과 직접 연관된 혐의는 밝혀내지 못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PC방에서 이틀 밤을 보낸 뒤 9일 오후 1시께 집으로 들어와 곧바로 잠을 잤고, 이날 7시쯤 경찰들이 깨워 일어났다”고 진술했다. 한편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여러 개의 지문을 채취,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수사를 의뢰했다. 마루에서 발견된 족적에 대해서도 현재 서울지방경찰청이 감식중이다.
현재 경찰은 사건 원인과 관련, 피해자의 아들인 고씨의 재산 부분에 주목하고 있다. 고씨는 현재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용인 소재 부동산이 상당한 규모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고씨의 재산을 노렸거나 고씨에게 돈문제로 원한이 있다면 고씨를 직접 노렸을 것이란 점에서 재산문제 때문이라는 추측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는 게 경찰의 분석이기도 하다.
경찰은 이와 함께 단순 강도사건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단순 강도라면 둔기로 두개골이 함몰할 정도로 잔혹하게 범행을 저지르기보다는 칼 등의 흉기로 범행을 자행했을 것이란 점에서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