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G홈쇼핑 압수수색 때 사용한 LG 생활건강상품 포장 상자. | ||
요즘 이 상자는 각 방송사 뉴스화면의 단골 손님이다. 기껏해야 종이 상자에 불과하지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막강 대검 중수부의‘판도라 상자’ 노릇을 하면서 어느새 카메라의 집중 표적이 돼버린 것이다.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은 중수부 수사관들이 이번 수사 과정에서 각종 상품과 회사 로고가 박힌 상자를 이용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검찰은 압수수색 때면 으레히 ‘검찰로고’가 찍힌 상자를 이용했다. 지난 2000년과 2001년에는 베이지색, 그리고 올해는 파란색의 검찰 공인 상자가 동원됐다. 실제로 지난 10월15일 최돈웅 한나라당 의원 자택의 압수수색 과정에서도 검찰 로고가 선명하게 찍힌 박스를 사용했다.
그러나 최근 재벌 계열사 압수수색에는 시중에서 팔리는 과자나 스넥, 라면 등의 상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찰에 확인한 결과 그 이유는 예산 부족과 각종 압수수색 건수 증가에 따른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탓이라는 설명이다. 압수수색 건수가 폭주하면서 상자가 부족해진 것이다.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실 관계자는“지난해 두 번에 걸쳐 수십 개를 구입했는데 이미 동이 난 상태”라며 “예산 문제도 그렇거니와 일괄적으로 박스를 구입하다보니 자주 훼손되고 해서 이제는 추가 구입을 하지 않고 압수수색 기업에서 수사관들이 직접 상자를 챙기거나 주변 편의점 등에서 구입하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대검 관리실 관계자도 “대검의 식당이나 매점 등 자체적으로 나오는 박스는 이미 낡고 이물질 등이 묻어있기 때문에 수사관들이 이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품과 회사명이 찍힌 상자가 TV에 자주 비치면서 이를 놓고 해당 기업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사소한 종잇조각이지만 해당 기업은 ‘부정적인 이미지 생산’이냐 ‘간접 광고 효과 이득’이냐를 놓고 계산기까지 두드리는 정도니 할 말 다한 셈.
▲ 지난 2000년 압수수색 때 사용된 서울지방검찰청 로고가 찍힌 상자. | ||
이 중 상품 로고가 찍힌 박스가 연이어 클로즈업되면서 때아닌 곤욕을 치른 기업도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LG. 대검 중수부 수사관들이 LG홈쇼핑을 압수수색한 뒤 회계 관련 장부들을 담은, LG그룹 계열사 로고가 찍힌 박스를 들고 있는 모습이 연이어 방송 뉴스에 방영되자 LG 관계자들은 ‘병주고 약주나’라며 항변했다.
압수수색 당일 방송에 가장 많이 노출됐던 박스가 공교롭게도 LG생활건강의 프리미엄 선물세트와 LG푸드사업계열사인 아워홈(구 LG유통 푸드서비스 사업부) 로고가 찍힌 상자였기 때문이었다. LG생활건강은 화장품, 치약, 칫솔 등 생활필수품을 주로 생산·판매하는 회사이며, 아워홈은 LG유통 사업부에서 독립한 기업이다.
나머지 회사들은 시청률이 높은 8∼9시 저녁뉴스 시간대에 자사 상품 로고가 찍힌 상자가 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광고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은근히 반기는 눈치. 특히 지난 11월27일 현대캐피탈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 당시 회계서류 수집 용도로 사용된 거창사과와 모나리자 화장지 상자는 각종 신문과 방송에 선명하게 실렸다. 압수수색에 관한 자료 화면은 최근에도 TV나 신문지상을 장식하고 있어 이들 두 회사의 관계자들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는 후문이다.
최근 노출빈도가 잦은 기업 중 하나인 (주)상지통운(화물운송업체)의 관계자들도 이날 자사 회사 상호가 찍힌 박스 5∼6개가 각종 언론에 클로즈업되고 있어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