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한 법정에서 30대 미모의 한 여성이 재판장을 향해 눈물의 호소를 했다. 그러나 법의 심판은 엄했다. 부산고법 형사2부는 지난 4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혐의(절도)로 구속 기소된 강아무개씨(33)에 대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전과 5범인 강씨에게 더이상 관용을 베풀 수 없다는 것. 강씨의 문제는 생리 때마다 물건을 훔치는 이른바 ‘생리도벽’이었다.
지난 12월4일 부산고법 301호 법정. 이곳에서는 극심한 ‘생리도벽’ 증세 때문에 또다시 절도행각을 벌인 강씨의 선거공판이 진행되고 있다. 강씨는 이 자리에서 가정으로 돌아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했다. 변호인측은 재판부에 ‘월경증후군’과 ‘해리성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병원 진단서를 제출했다. 심지어 도벽과의 ‘모진 인연’을 끊기 위해 자신의 자궁을 들어내겠다는 ‘자궁 제거수술’ 의사까지 내비쳤다. 그러나 강씨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강씨가 이 지독한 생리도벽에 빠지게 된 것은 지난 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강씨의 나이는 불과 15세. 또래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12~13세의 나이에 처음 생리를 경험한 강씨는 곧 이상한 감정에 빠져들었다. 생리 때만 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뭔가를 훔치고 싶은 욕구가 강렬히 일어났던 것. 이때부터 생리 때마다 인근 백화점이나 슈퍼마켓 등지에서 물건을 훔치는 버릇이 시작되었고, 곧 경찰에 덜미를 잡혀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강씨는 절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밥먹듯이 교도소와 구치소를 들락거렸다. 지금까지 실형 전과만 다섯 차례. 하지만 합의를 통해 가까스로 실형을 면한 횟수를 합치면 수십여 차례에 이른다. 싸늘한 감방에서 허비한 기간만 6년여에 달한다. 예쁘고 지적인 용모를 갖고 있는 강씨는 평소에는 어디하나 나무랄 데가 없었다. 뭇 남성들의 구애공세도 여러 차례 받았다. 하지만 생리도벽은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 재판부가 강씨에게 실형을 선고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공판을 주관한 김수형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합의를 통해 불구속 처리된 것까지 합치면 수십 차례에 이른다”며 “관용을 베풀 수준을 이미 넘어선 만큼 2년간의 실형과 치료감호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지긋지긋하게 강씨를 따라다니던 생리도벽의 유혹은 10여 년 전 극적인 사랑의 결실로 잠시 치유되는 듯했다. 지난 90년 절도죄로 천안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던 강씨는 그 안에서 전 남편 정아무개씨(34)를 만났다. 당시 경비교도대원으로 군복무중이던 정씨는 서울법대 출신의 수재였다. 정씨는 재소자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강씨에 이끌렸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사랑을 키웠고, 정씨가 제대한 91년 결혼에 골인했다. 이듬해에는 아들까지 낳아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
경찰 관계자는 “강씨가 결혼한 91년부터 9년 동안은 강씨의 생리도벽이 전혀 도지지 않았다”며 “개인의 일이기 때문에 단언하지는 못하겠지만 결혼생활이 순탄했다면 불행한 사태는 재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생리도벽과의 질긴 악연은 강씨를 비켜가지 못했다. ‘절도-수감-출소’를 반복한 강씨의 전력을 시댁에서 알아버린 것. 강씨는 결국 시댁의 강력한 반대로 남편과 이혼을 해야 했다. 사랑하는 아들과도 생이별당했다.
강씨의 도벽이 도진 것도 이때부터. 이혼 후 혼자 살고 있던 강씨는 부산의 한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훔치다 경찰에 붙잡혔다. 강씨는 또 다시 교도소에 수감됐지만 출소 후에도 도벽은 사라지지 않았다. 강씨는 결국 지난 1월 부산의 한 백화점에서 또다시 물건을 훔치다 부산 서부경찰서에 검거됐다.
경찰조사 결과 강씨는 백화점 이외에도 전국을 돌며 절도행각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을 수사한 경찰 관계자는 “서울, 대구, 김해, 부산 등 전국을 돌며 병원이나 관공서에서 신용카드를 훔쳤다”며 “피해 액수가 수천만원대에 달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강씨의 외모는 웬만한 탤런트 못지 않다. 그는 “누가 봐도 호감을 느끼는 스타일이었다. 때문에 처음에는 남의 물건을 훔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아 적지 않게 당황했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강씨의 증세가 ‘생리전증후군’ 혹은 ‘월경전증후군’의 일종으로 분석한다. M산부인과 민지영 원장에 따르면 생리를 하는 여성 중 80% 정도가 생리전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느끼지 못할 뿐이지 어떤 식으로든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 민 원장은 “생리전증후군이 심한 10% 중에서 간혹 절도나 살인 등의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며 “강씨의 증상으로 볼 때 생리전증후군이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