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숨진 박씨의 아파트에서 범행을 재연하고 있는 피의자 이씨. | ||
지난달 29일 발생한 단짝 여고동창생 살해사건.
이 사건은 성남 A여고 출신 이아무개씨(31)가 자신의 여고 동창생 박아무개씨(31)를 빨래줄로 교살한 데 이어, 동창생의 아들과 딸까지 목졸라 죽이는 엽기적인 범행이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주었다. 현재 이 사건이 세간의 이목을 모으고 있는 것은 이씨가 동창생과 가족들을 무참히 살해한 이유 때문이다.
당초 경찰이 밝힌 이씨의 범행동기는 “동창생이 자신을 무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찰의 추가 조사결과 이씨가 친구 박씨의 남편 나아무개씨(34)에게 ‘당신처럼 괜찮은 남자가 왜 그렇게 일찍 결혼했는지 모르겠다’는 내용의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밝혀지면서 살해동기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범인 이씨가 자신의 수첩에 ‘내가 죽으면 재산을 나씨 앞으로 남기겠다’고 쓴 메모가 발견되면서 경찰이 이씨와 나씨의 ‘관계’에 대해 집중 수사를 벌이고 있다.
도대체 이씨는 왜 이런 엽기적인 범행을 자행한 것일까.
범인 이씨와 피해자 박씨가 성남 소재 A여고를 졸업한 것은 지난 91년. 그후 소식이 끊겼다가 지난 2001년 동창모임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다시 만났다.
고등학교 시절 친했던 두 사람은 오랜만에 다시 만난 후 이씨는 일주일에 서너 차례 박씨 집을 찾을 정도로 친하게 지냈다. 박씨는 결혼을 해 아들과 딸을 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이씨는 아직 미혼상태였다.
사건이 벌어진 것은 지난 12월29일 오후 3시께. 이날 박씨는 자신의 집에서 10개월 된 딸과 세 살 난 아들을 데리고 TV를 보고 있었다. 그때 이씨가 집으로 찾아왔다. 이씨는 평소처럼 TV를 보는 등 아이들과 놀았다.
그러던 이씨가 갑자기 엽기적인 살인마로 돌변했다.
그는 아들과 함께 놀아주는 것처럼 박씨를 안심시키고는 아들을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입에 수건을 물린 뒤 이불에 말아 목졸라 숨지게 했다. 순식간에 이뤄진 끔찍한 일이었다.
그런 후 이씨는 안방에 있던 박씨에게 다가가 “네 아들이 깜짝쇼를 준비했다”며 박씨를 방으로 유인했다. 방문 앞에서 이씨는 “일단 눈을 감으라”며 박씨의 눈을 감긴 후 박씨의 치마를 올려 얼굴까지 모두 가리도록 했다. 그러고나서 이씨는 미리 만들어둔 올가미를 박씨의 목에 감아 질식사시켰다.
이어 이씨는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 태어난 지 10개월 된 딸을 비닐봉지로 씌워 죽였다.
범행이 끝난 후 이씨는 박씨의 가방에서 열쇠를 꺼내 아파트 출입문을 잠그고 밖에서 창문을 열어 가방을 집안으로 도로 던졌다. 외부침입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또한 이씨는 범행 내내 고무장갑과 털장갑을 번갈아가며 착용해 지문을 남기지 않으려 했다.
이날 오후 5시께 박씨의 남편 나씨가 퇴근 후 집에 왔으나 초인종을 눌러도 인기척이 없어 사건 당일 집에 들렀다는 이씨를 불러 출입문을 따고 들어갔다. 현장을 발견한 나씨는 이씨와 함께 경찰에 신고했다.
당초 경찰은 숨진 박씨의 저항흔적이 없고 외부침입의 흔적도 없어 자살로 추정했다. 그러나 경찰은 “조사를 받던 이씨가 자꾸 손을 보이지 않으려는 행동을 해 손을 유심히 보니 왼쪽 새끼손가락에 줄을 세게 잡아당길 때 생기는 흔적이 있어 의심했다”며 “이를 계속 추궁하니 이씨가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친구가 내가 보는 앞에서는 잘해주는 척하면서 뒤에서는 내가 결혼하지 못했다고 무시하는 것 같았고 친구 시댁도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아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담당수사관은 “이씨는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만을 하려하고 자신이 피해갈 구멍을 만드는 것 같다”고 말했고, 또 다른 관계자는 “조사중에 중성적 음성을 가진 이씨를 쳐다보고 목소리를 듣는 것이 어떨 때는 소름이 끼칠 정도”라며 혀를 내둘렀다.
이씨는 수사과정에서도 세 명을 살해한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분하고 태연하게 범행을 진술했다는 것.
피해자 박씨의 이웃 주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 “박씨 가족은 이사온 지 석달밖에 안 돼 잘은 모르지만 행복한 가족이었다”며 안타까워했다.
한편 이번 사건에 대한 경찰의 수사포인트 중 하나는 이씨의 단독범행 여부. 경찰은 일단 단독범행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이씨와 박씨의 남편 나씨가 평소 어떤 사이였는지와 두 사람의 관계가 이번 사건에 어떤 원인을 제공했는지 등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