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검찰에 떨어진 하명이다. 정의(진실 발견)와 사랑(인권 존중)을 모두 겸비한 수사를 하라는 것이다. 한발 나아가 김승규 법무장관은 정의와 사랑을 겸비한 검사를 중용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와 관련한 송광수 검찰총장의 최근 발언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불법 대선자금 수사 당시 정의에 대한 강한 집념을 여러 차례 보여준 바 있는 송 총장이 잇따라 검찰의 수사관행을 바꿔야 한다고 설파하고 있다.
지난해 말 대검 중앙수사부가 노무현 대통령 측근비리에 대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할 때를 상기해보자.
검찰은 지난해 12월29일 대통령 측근비리 중간수사 발표를 통해 지난 2002년 대선 전후로 노무현 후보 선거캠프가 수수한 불법 정치자금 규모가 60억원 안팎에 이른다는 내용의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그러자 청와대는 다음날 발끈하고 나섰다. 문재인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일부 내용은 검찰이 지나치게 여론을 의식, 억지로 형평을 맞추기 위한 무리한 수사라는 의혹이 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문 수석은 또 “검찰이 피의사실을 지나치게 단정적으로 발표하는 잘못이 되풀이 된 부분은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검찰의 사령탑인 송 총장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송 총장은 오히려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받는 상대방이 수사에 불만을 표시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맞받아쳤다. 그러면서 송 총장은 “수사대상의 불만에 대해 검찰이 곤혹스러워하면 어떻게 수사를 하겠느냐”면서 정의를 밝히는 데 주력할 뜻임을 내비친 바 있다. 이처럼 정의에 무게중심을 뒀던 송 총장이 현재는 스탠스가 바뀐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송 총장의 스탠스 변화는 여러 차례 감지된다. 송 총장은 지난 14일 전국 지검·지청 특수부장검사회의에서 “구속을 해야만 수사가 100점이 되는 것은 아니다”면서 “인권이 살아있는 수사를 해달라”고 당부했다. 송 총장은 “자기가 수사한 범죄인은 반드시 구속해야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이상한 풍조는 폐단”이라면서 “가령 압수수색을 할 때 압수수색을 당하는 사람의 고통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이 같은 검찰의 기류는 김 장관이 부임할 때부터 예견됐다. 김 장관은 지난달 9일 취임 첫 기자간담회에서 “인간을 배려하는 수사를 하기 위해 인품이 좋은 검사를 특수부에 배치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동안의 수사방식은 인간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면서 “정의와 사랑, 정의와 인권은 함께 존중돼야 하며 그럴 때만이 국민의 신뢰와 인정, 존경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지난 20일에는 전국 1천5백여 명의 검사들에게 직접 작성한 서한을 전달, 피의자 인권보호 등 수사관행 개선에 힘써 줄 것을 당부했다.
김 장관은 서한에서 “검찰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이 결코 곱지만은 않아 ‘철의 성벽에 둘러싸인 권위주의 집단’이라는 혹독한 평가까지 받고 있다”면서 “1년5개월 동안 변호사로 활동하는 동안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바에 의하더라도 이를 전적으로 부인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사는 실력과 인품을 겸비해 수사에 임해야 한다는 ‘검사 인품론’을 재차 거론했다.
그렇다면 송 총장은 왜 무게중심을 정의에서 인권쪽으로 돌렸을까.
사실 송 총장이 이끈 불법 대선자금 수사팀은 혁혁한 성과만큼이나 비판도 많이 받았다. 그 중의 하나가 수사과정에서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모두 범죄자인 양 다뤘다는 것. 특히 안희정, 이광재, 강금원, 최도술, 문병욱씨 등 노무현 대통령 측근들 수사과정에서 편파시비가 일었다.
이 때문에 청와대 주변에서는 무소불위의 검찰을 ‘손 봐야’ 한다는 극단적인 불만의 소리까지 나왔던 것이 사실이다.
송 총장 입장에서는 불법 대선자금 수사가 부메랑이 되어 그동안의 검찰 수사 관행을 스스로 개선하는데 앞장서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을 맞은 것이다. 최근 직면하고 있는 검찰권의 위기를 송 총장도 직감하고 있는 분위기다.
실제로 검찰권을 옭죄는 새로운 제도가 기구가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다. 부패방지위원회 산하의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신설, 대검 중앙수사부 축소 등 일련의 작업이 모두 검찰 힘빼기와 맥이 닿아 있다.
이런 와중에 김 장관은 법무·검찰의 인사체계를 획기적으로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성과 위주의 인사평가보다는 검찰 수사가 적법한 절차와 정당한 방법에 의해 적정하게 수행됐는지 여부를 점검하는 쪽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수사절차 및 수사결과의 적정성에 대한 책임은 수사검사뿐만 아니라 중간관리자들까지도 묻도록 했다.
김 장관은 또 법무부에 감찰실을 설치, 직무감찰을 강화함으로써 인간을 배려하는 수사관행이 검찰 내에 뿌리내리도록 할 계획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김 장관은 자신이 취하고 있는 일련의 조치가 결코 수사를 하지 말라거나 수사에 대한 열정을 폄하하려는 뜻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일선에서는 김 장관의 진심과는 관계 없이 수사력이 위축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일선 검사들은 “김 장관의 지적 자체는 100% 맞는 말이다”면서 “그러나 어떻게 이상과 현실이 딱 들어맞을 수 있겠느냐”는 반응이다. 일부에서는 “열의를 갖고 수사를 하다가 감찰실의 지적을 받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지만 복지부동형 검사로 있으면 최소한 불이익은 받지 않을 것 아니냐”는 냉소적인 반응도 나오고 있다.
결국 송 총장의 최근의 스탠스 변화는 사면초가에 몰린 검찰의 상황 때문으로 풀이된다. 송 총장은 검찰에 따가운 외부 시선을 의식, 외부인사들이 참여하는 ‘수사제도·관행개선위원회’나 ‘공안자문위원회’를 총장 직속의 자문기구를 만들어 부드러운 검찰상을 만드는 데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송 총장은 지난 20일 민생경제 침해사범 전담부장검사 회의 때 훈시를 통해 특수·공안부는 나무의 꽃에, 형사부는 줄기에 비유한 뒤 “설령 아름다운 꽃을 피우지 못하는 해가 있더라도 나무의 줄기가 싱싱하면 언제라도 꽃을 피울 수 있을 것”고 말했다.
당장은 검찰의 꽃인 특수·공안수사가 일시적으로 위축될 수 있지만 언젠가는 특수·공안수사가 힘을 받을 수도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송 총장이 최근 인권에 보다 무게를 두는 스탠스 변화는 작전상 후퇴일까. 지켜볼 대목이다.
이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