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인천 동부경찰서. 이곳에 두 명의 중년 여성이 찾아왔다. 이들은 한 고등학교 교사 권아무개씨(남·51)의 부인과 여동생이었다. 이들은 권씨와 지난 89년부터 최근까지 불륜관계를 맺어온 이아무개씨(여·50)를 상습공갈 혐의로 고소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교사 권씨와 당시 학부모였던 이씨는 15년 전부터 불륜관계를 맺어왔고, 지난 95년 권씨가 관계를 정리하자고 요구했지만 이씨가 그동안의 불륜사실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해 최근까지 수억원을 갈취했다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씨의 며느리도 협박에 가담한 죄로 불구속기소됐다. 이 며느리는 바로 권씨의 15년전 제자인 이씨 아들의 배우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더욱이 취재 과정에서 권씨와 이씨 가족들은 이미 이들의 불륜 사실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왜 그동안 가족들이 침묵하고 있었는지 궁금증을 낳고 있다.
당시 사채놀이를 하던 이씨는 이때부터 내연의 관계였던 권씨에게 돈을 자주 빌리게 됐다. 적게는 수십만원, 많게는 1백여만원씩 빌려오던 것이 불륜의 세월만큼 불어나기 시작했고, 꼬리가 긴 만큼 양쪽 집안에서도 불륜 사실을 알고 말았다.
권씨의 부인은 엄격한 집안 출신의 평범한 가정주부로 이혼은 입 밖에도 꺼내지 못한 채 남편이 돌아와 주기만을 바랐고, 이씨의 남편 역시 밖으로만 도는 아내를 다그쳐 봤지만 듣지 않자 이내 체념하고 말았다.
지금은 장성해 결혼까지 한 이씨의 아들조차 “어머니와 선생님이 부적절한 관계라는 것은 중3 때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어린 나이였고, 내 어머니였기 때문에 모르는 척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결국 불륜 사실이 들통났음에도 불구하고 6년이나 지속되어온 이들의 관계는 95년 권씨의 입에서 “끝내자”는 말이 나오면서 결말이 나는 듯했다. 하지만 당시 이씨는 이미 사채로 인해 상당한 빚을 지고 있었다.
권씨측 주장에 따르면 이때부터 집요한 이씨의 협박이 시작됐다고 한다. “불륜 사실을 교육청에 폭로하겠다”며 수시로 돈을 요구했다는 것. 권씨는 교사로서의 부도덕한 행위가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이씨와의 만남을 지속했고, 때로는 월급에서,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여기저기서 대출을 받아 이씨의 요구를 들어주었다고 한다.
권씨에 따르면 계속해서 만나주지 않자 한번은 이씨가 수업 중에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학교 앞인데 나오지 않으면 찾아 가겠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까지도 이씨와의 관계를 유지한데 대해 “교사로서의 명예를 잃을까 두려워 달래줄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했다. 결국 결별을 선언한 시점으로부터 3년 뒤인 98년, 권씨 가족은 빚을 감당하기 어려워 살던 아파트를 처분하고 이사까지 가게 됐다.
이에 대해 경찰은 “2000년 7월부터 최근까지 1백19차례에 걸친 증거물을 종합하면 1억4천여만원에 이르는 고소 사건이지만, 피해자측은 불륜관계를 맺어올 당시부터 준 돈까지 따지면 3억여원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에서 또하나 눈길을 끄는 점은 ‘교사와 학부모와의 불륜’이라는 점 외에 이씨의 며느리가 협박공갈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 내막은 이랬다.
집까지 날린 권씨가 곤궁에 처했던 99년 무렵, 그의 제자이자 결국 불륜의 매개체가 되어버린 이씨의 아들이 장성해서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이씨의 가족들이 그동안 참았던 울분을 터트리고 만 사건도 이때 일어났다. 어머니인 이씨가 남편이 준 아들의 결혼자금까지 탕진해 버렸던 것.
이에 분노가 치민 이씨의 남편은 급기야 예비 며느리를 데리고 권씨의 집까지 찾아가 “두 사람이 함께 만나면서 이 돈까지 결국 같이 쓴 것 아니냐”며 “돈을 내놓으라”고 내몰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돈을 같이 쓰기는커녕 오히려 피해자라고 생각했던 권씨 가족 입장에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는 일. 권씨측은 이씨의 며느리 김아무개씨(30)와의 통화 내용을 녹취해 경찰에 증거물로 제출했다. 이씨의 남편은 2002년 이미 사망했고, 결국 며느리인 김씨는 불구속 입건됐다.
결국 이 일을 계기로 이씨는 집에서 나와 혼자 생활하게 됐고, 아들과도 의를 끊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생계까지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되자 이씨는 권씨에게 더욱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권씨측에 따르면 돈을 요구하는 횟수와 액수가 점점 늘어났고, 자신의 집까지 찾아와 협박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결국 우물쭈물하는 권씨를 제쳐두고 부인과 여동생이 나섰다. 이들은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고소밖에 없다”며 “명예고 뭐고 다 포기했다. 남은 것은 빚밖에 없다”며 하소연을 했다.
고소 이후 두문불출해온 교사 권씨는 이씨가 계속해서 혐의 사실을 부인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경찰서에 나와 이씨와 대면하게 됐다. 권씨는 “협박을 당했다”고 주장했고, 이씨는 “서로 사랑했을 뿐 협박은 안했다”며 맞섰다.
스승과 어머니의 불륜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이씨의 아들도 이 사건으로 그동안 애써 연을 끊었던 어머니를 5년 만에 다시 만났다. 이씨의 아들은 “결혼할 무렵 어머니에게 실망해 왕래를 끊은 것은 사실이지만, 아버지도 이미 돌아가셨고 향후 어머니 빚을 갚아드릴 상황이 되면 모시러 갈 생각이었다”고 말해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양하나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