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서울의 한 주택가로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련 없음. | ||
김씨(40)는 자신의 동네 일대에서 지난 2000년부터 최근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8세 여아부터 50대 주부에 이르기까지 주로 혼자 사는 여성만을 골라 범행을 저질렀다.
인천 중부경찰서에 따르면 “김씨의 범행수법은 범행을 계속할수록 업그레이드하듯이 대담해져 놀랍고 충격적이다”라고 전했다.
김씨는 사전답사를 통해 여성이 혼자 사는 집을 주로 범행대상으로 선택했고 경우에 따라 창문을 뜯고 들어가거나 가스배관을 타고 들어가는 등 침입방법도 다양했다. 또 범행시 항상 목장갑과 여자스타킹을 복면으로 사용해 현장에 지문은 물론이고 머리카락 하나 남기지 않았으며 김씨의 얼굴을 기억하는 피해자도 없었다.
범행시간도 여성들이 혼자 집에 있는 오전이나 오후 시간을 선택한 점, 범행 전 수차례 사전 답사하는 등 그 치밀함이 경찰수사를 어렵게 했다. 김씨는 8년 전 전남 벌교에서 인천으로 거주지를 바꾸면서 동사무소에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고 전과도 없어 그를 체포하기까지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 경찰의 전언.
범행의 흉악성도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한 집에 두세 차례 들어가 강간하는가하면, 이틀에 걸쳐 하루는 딸을, 다음 날은 어머니를 겁탈하고, 산후조리중인 여성을 범하기도 했다. 지난해 7월에는 하교하는 초등생을 인근 옥상으로 끌고 가 성추행을 자행해 수사관들도 치를 떨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김씨가 이런 흉악한 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다.
이 사건을 맡은 인천 중부경찰서 강력반(전용남 반장)은 “김씨는 처음엔 생계형 범죄로 시작한 잡범이었다. 그러다가 강도에 재미를 붙였고 나중에는 강간을 목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전했다.
김씨는 지난 96년 전남 벌교에서 인천으로 이사와 일용직 노동자, 보일러 수리공 등 허드렛일을 하면서 지내던 중 일거리도 줄어들어 생활이 어려워지자 2000년 1월부터 강도행각을 벌이기 시작했다.
2000년 1월28일 김씨는 아침 7시에 대입 면접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선 구아무개씨(여·24)를 1백m 정도 뒤따라가 구씨의 가방을 날치기해 10만원을 절취했다. 김씨는 몇 달째 월세도 못내고 배가 고파 도둑질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2000년 1월부터 2002년 4월까지 7차례에 걸쳐 강도행각을 벌였다. 범행시점도 김씨가 일거리가 없는 기간 동안 생활비를 마련할 목적이었고 이때 훔친 물품도 현금 몇만원, 휴대폰 등이었다.
김씨는 생각보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과 강도에 재미를 붙여 본격적으로 범행에 나섰다. 평소 김씨는 직업상 고층건물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 자신의 장기를 살려 4층이나 5층의 가정집을 범행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범행 전에 주택가 우편함을 며칠 동안 뒤져 여자 이름으로만 우편물이 오는 집은 틀림없이 독신녀가 사는 집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범행대상이 선정되면 주택의 창문이나 가스배관 상태 등을 유심히 관찰한 후 침입방법을 연구했다.
이렇게 해서 2002년 7월부터는 담을 넘거나 출입문을 부수지 않고 창문으로 침입하거나 가스배관을 타고 방범창을 뜯고 침입하고, 심지어는 화장실의 작은 창문으로 침입하게 된다. 2002년 7월부터 2003년 1월까지 5차례에 걸쳐 강도를 저질렀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사람들이 취침중인 늦은 저녁 또는 새벽시간을 이용해 김씨가 피해자와 맞닥뜨리지는 않았다.
그러던 2003년 6월2일 새벽 1시경 조아무개씨(여·28) 집에 유리창으로 침입하여 강도짓을 하다 잠에서 깨어난 조씨가 김씨를 보고 소리를 지르자 김씨는 조씨를 흉기로 위협하고 강간했다. 너무 놀란 조씨는 경찰에 신고도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일주일 후 2003년 6월10일 새벽 3시에 김씨가 다시 유리창을 통해 조씨의 집에 침입해 강간했다. 그리고 범행 후 조씨 몰래 조씨의 집 열쇠를 훔쳐갔다. 이때부터 김씨는 강도가 아니라 강간만을 목적으로 범행을 저지른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김씨는 2003년 7월9일 자정이 다 된 시간에 다시 조씨의 집에 들어갔다. 이때는 두 번째 범행에서 훔쳐간 조씨의 집 열쇠로 출입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가 침입했을 때 조씨는 퇴근 전이었다. 김씨는 혼자 TV를 보고 있다가 새벽 1시경 퇴근한 조씨가 집에 들어오는 인기척이 들리자 재빨리 안방의 장롱에 숨었다. 조씨가 샤워를 마치고 방안의 불을 끈 뒤 잠자리에 들던 시간이 새벽 2시였다. 이 때 불도 꺼지고 주위가 조용해진 것을 느끼고 김씨가 장롱에서 뛰어나왔다. 조씨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씨는 다시 조씨를 강간했다. 무려 세 차례에 걸쳐 피해를 입은 조씨는 다음날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조씨의 진술을 받은 한 수사관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피해사실을 진술하던 조씨는 갑자기 구토를 하는 등 극도의 공포상태를 보였다. 경찰 생활하면서 그렇게 공포에 질린 얼굴은 처음 봤다”고 말했다.
김씨는 2003년 7월15일 오후 2시 이아무개씨(여·20)의 집에 들어가 이불로 이씨의 얼굴을 덮고 강간했다. 이 때도 김씨는 범행 후 이씨의 집 열쇠를 절취했다. 그리고 이틀 후 오후 2시경 다시 이씨의 집에 훔친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 혼자 있던 이씨의 어머니 나아무개씨(44)를 강간했다. 사흘에 걸쳐 모녀가 함께 당한 것이다.
그의 흉악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 2월20일에는 산후조리중이던 한아무개씨(25)의 집에 들어가 생후 3개월된 아이와 잠을 자고 있던 한씨를 강간하기도 했다. 김씨는 산후조리중이니 그냥 필요한 것만 가져가라고 빌던 한씨를 아이 옆에서 무참히 강간했다.
특히 김씨는 지난 2월20일부터 검거되기 직전인 3월12일까지 20여 차례, 사흘에 두 번꼴로 강간을 범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새는 줄모른다는 속담처럼 김씨는 질주하듯 범행을 저질렀다.
피해자들이 김씨의 얼굴도 못 본 상태에 수사를 진행하던 경찰은 피해자 중 김씨가 빨간 색 줄무늬 운동화를 신고 있었고 김씨의 왼쪽 가슴 상단에 50원짜리 동전크기의 점이 있다는 진술을 확보해 주변을 탐문수사하고 있었다. 경찰은 성인 남성이 빨간색 줄무늬 운동화를 신고 다닌다는 것이 특이해 이 점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러던 지난 14일 잠복근무중이던 경찰이 오후 3시경 집에 가던 김씨를 발견했다. 당시 김씨가 빨간 색 줄무늬 운동화를 신고 있어 경찰이 불심검문을 했던 것이다.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다가 한 경찰이 장난처럼 김씨의 상의 셔츠를 잡아당겨 왼쪽 상단에 점이 있음을 확인했다. 곧바로 경찰에 연행된 김씨는 의외로 순순히 자신의 범행 사실을 자백했다.
경찰조사 결과 지금까지 드러난 김씨의 죄목은 강도강간 5회, 특수강간 15회, 강간미수 5회, 특수절도 20회 등이다.
경찰은 “김씨가 50여 차례 범죄를 저지르는 동안 신고는 단 5건에 불과했다. 피해자들이 제때 신고만 했어도 김씨는 금방 잡혔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