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발생한 이 사건은 2개월 가까이 피해자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상태에서 동네 친구가 살인자로 몰려 많은 관심을 불러 모았다. 그러나 뒤늦게 시신이 발견되고, 경찰에서 범인으로 지목된 동네 친구의 혐의가 검찰에서 무혐의로 뒤집혀 또 한 차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검찰의 무혐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당초 수사를 맡았던 경찰은 여전히 당초 지목한 사람이 진범이라고 주장하는 등 이 사건은 2라운드를 예고하고 있다. 경찰의 판단이 옳을까, 아니면 무혐의 결정을 내린 검찰이 옳은 것일까. 경찰의 강압수사 논란까지 벌어지고 있는 이 사건의 진실을 추적했다.
피해자는 부산 사상구 덕포동에서 살았던 차아무개씨(42·금융회사 근무). 그가 행방불명된 것은 지난 1월8일이었다. 가족들에 의하면 동네 친구인 김아무개씨(33·건축 일용직)와 만나기로 하고 나간 뒤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가족들은 일주일 동안 차씨의 행방을 찾다가 끝내 발견하지 못해 경찰에 실종신고를 냈다.
차씨가 실종 직전까지 함께 술을 마신 사람은 김씨와 이아무개씨(42·주점 운영)였다. 이들은 이날 밤 7시에서 10시 무렵까지 함께 있었다.
수사에 착수한 사상경찰서는 이씨와 김씨를 강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우선 업주 이씨의 경우 이날 술을 마시면서 실종된 차씨와 심한 말다툼을 했다는 목격자들의 진술이 있기 때문이었다. 또 김씨는 차씨와 돈거래가 있었던 사실이 나와 용의선상에 올랐다.
경찰이 보는 사건의 전모는 이렇다. 이날 술을 마시던 세 사람은 사소한 이유로 서로 말다툼 끝에 이씨가 차씨를 때렸고 맞은 차씨가 쓰러지자 김씨와 이씨가 쓰러진 차씨를 이씨의 차에 실어 유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이씨는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이씨는 경찰 진술에서 “다툰 일도 없고 더구나 때린 일은 전혀 없으며 차씨와 김씨가 술에 취해 나간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김씨는 술을 마시던 중 “왜 술을 사지 않느냐”며 차씨와 실랑이를 하다가 화가 난 이씨가 차씨의 가슴을 때렸고, 쓰러진 차씨를 이씨 차에 실어 낙동강에 버렸다고 진술했다.
그렇다면 과연 이날 세 사람은 술을 마시다가 싸움을 한 것일까? 이씨가 범인으로 몰린 결정적인 근거는 이씨의 업소에서 일한 종업원 황아무개씨의 증언인데, 황씨가 이날 세 사람이 다투는 것을 봤다고 경찰에서 진술했기 때문이었다. 또 이날 이들과 술을 마시기로 했던 박아무개씨(31)도 약속장소로 가던 중 이씨와 김씨가 차씨를 들쳐업고 이씨의 술집에서 나오는 것을 봤다고 진술했다. 결국 경찰은 김씨와 박씨의 진술을 토대로 이씨를 범인으로 단정했다.
그러나 문제는 차씨의 시신이 사라진 점이었다. 사건 후 경찰은 차씨의 사체를 찾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낙동강 인근을 샅샅이 뒤졌다. 김씨가 차씨의 시신을 낙동강에 버렸다고 진술했기 때문. 그러나 시신은 차씨가 사라진 지 두 달이 되도록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사건은 시신을 찾아내지 못한 채 이씨와 김씨의 공동 범행으로 결론내려져 검찰로 송치됐다.
그러나 이 사건은 검찰에서 뒤집혔다. 검찰은 차씨의 시신이 없는 상황에서 김씨와 이씨를 범인으로 결정지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던 중 차씨는 바로 실종 당일 엉뚱한 곳에서 발견됐다. 술을 마신 곳에서 2백m 떨어진 곳이었다. 차씨는 부산진경찰서 관할 지구대에 의해 발견돼 병원으로 옮기던 중에 숨을 거두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따라서 김씨가 차씨의 시체를 낙동강에 버렸다는 진술은 거짓말이 돼버렸다.
부검 결과 차씨의 사망원인은 ‘음주과다로 인한 기도폐쇄’. 가슴에 타박상의 흔적이 있었지만 직접적인 사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소견이었다. 게다가 공범인 김씨와 목격자인 박씨가 경찰에서 한 진술을 번복했다. 김씨는 당시 술을 많이 마셔 기억이 잘 나지 않고 박씨 또한 목격했다는 것을 뒤늦게 부인했다. 결국 이씨는 검찰에서 무혐의로 풀려났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경찰은 곤경에 빠졌다. 일부에서는 이씨가 범인으로 지목되는데 결정적인 진술을 한, 함께 술을 마신 김씨와 증인들이 경찰의 강압수사에 의해 사건이 조작됐다는 의혹에 휘말린 것.
그러나 경찰은 이씨가 범인이라는 심증을 굽히지 않고 있다. 사건을 담당한 경찰은 “이씨가 범인인 것이 확실하다. 이씨가 차씨의 가슴을 때려 쇼크를 준 것이 사망원인이다. 주변 수사를 더 보강해 이씨의 범행을 끝까지 밝혀낼 것”이라고 말했다.
무혐의로 풀려난 이씨는 경찰의 짜맞추기식 강압수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증거가 불충분함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목격자들의 증언을 유도하여 자신을 범인으로 몰아갔다는 것. 이씨의 부인 서아무개씨(34)는 “남편이 자백을 하도록 유도하라고 계속 협박을 했다. 남편이 범인인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모든 수사를 진행했다. 하루종일 시달리다 보니 나까지도 남편이 범인이라고 믿어버릴 정도였다”고 주장했다.
또다른 증인도 <일요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붙잡아 놓고 원하는 진술을 하지 않으면 보내주질 않으니 멀쩡한 사람도 허위자백을 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한 번 진술을 한 뒤에 이를 번복하면 큰 죄라도 되는 것처럼 말했다”고 말했다.
강압수사 주장에 대해 경찰은 “말도 안 된다. 피의자들이 가만있지 않는다. 오히려 유가족들이 피의자를 너무 얌전하게 다루는 것이 아니냐고 항의할 정도였다”고 밝혔다.
‘사체 없는 살해사건’으로 부산 시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던 차씨 사건은 검찰이 이씨를 풀어준 이후에도 경찰의 강압수사 논란과 함께 피살사건이냐 과음으로 인한 돌연사냐를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