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찰청 기동수사대는 지난 8일 법원 경매물건에 투자하면 월 50%의 고리를 지급해 주겠다며 피해자들로부터 1백60억원을 끌어 모아 가로챈 최아무개씨(여·28)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혐의로 구속했다.
경찰 조사결과 최씨는 지난해 초부터 은행에서 법원으로 넘어가는 아파트, 토지 등 경매물건을 은행직원과 짜고 싼 가격에 사들인 뒤 되파는 형식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투자자들을 속여 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최씨가 처음 범행을 시작한 것은 2003년 1월. 최씨는 우연히 인터넷을 검색하다 법원의 경매사이트를 발견했다. 최씨는 부동산 경매를 통해 큰돈을 벌수 있겠다는 생각에 법원경매에 대해 주위 사람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책을 통해 경매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습득했다.
이때만 하더라도 그는 사람들을 속일 생각은 없었다. 최씨는 실제로 법원경매에 참여하기 위해 친인척을 통해 돈을 모았다. 물론 친인척들에게 고리의 이자를 준다는 약속까지 했다.
그러나 최씨는 생각과 달리 부동산 경매가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경매에는 한 번도 참가하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이자만 지급했다. 그러던 중 경매를 통한 부동산 매매를 하지 않아도 쉽게 돈을 만질 수 있다는 생각에 돈을 빌려줬던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들에게서 돈을 모아 오면 더 큰돈을 벌 수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투자자들은 최씨가 제때 약속했던 이자도 꾸준히 지급하고 있어 최씨를 믿고 돈을 끌여 들였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투자자들에게 이자를 지급하고 또 다시 새로운 투자자를 모집하는 수법으로 지난 1월까지 최씨가 끌어들인 돈은 모두 1백60억원.
경찰은 “신용불량자가 카드 돌려막기로 하루를 연명하듯 최씨는 매일 새로운 투자자를 모집해 이자를 지급하는 방식을 이용했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1년 동안 원금보다 많은 이자를 제때 받아가 최씨를 의심하지 않고 수완 좋은 사업가로 생각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지난 1월부터 더 이상의 돌려막기가 어려워지자 투자자들이 최씨에게 돈을 갚으라고 종용하기 시작했다. 궁지에 몰리자 최씨는 조직폭력배 E파의 행동대장인 동시에 시숙인 임아무개씨(38)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때 최씨는 임씨에게 시가 5천만원 상당의 고급 승용차와 조직운영자금 명목으로 1억5천만원을 제공하며 “잠시 숨어 지낼테니 투자자들을 혼내달라”고 부탁했다. 부탁을 받은 임씨도 제수인 최씨가 그런 사기행각을 벌이고 다닌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고 한다.
임씨는 부탁받은 대로 투자자들을 찾아가 “채권을 포기하라”며 “목을 잘라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또한 임씨는 부하들을 시켜 피해자 박아무개씨(여·42) 등에게 차량을 이용, 피해자 차량의 앞뒤를 가로막고 차량 유리창을 부수는 등의 행패를 부렸다.
이렇게 상습적으로 채권포기각서 작성을 종용해 15억원 상당을 갈취했다.
경찰 진술에서 임씨는 “부동산 경기침체로 인해 최씨가 잠시 사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다. 최씨가 그런 사기행각을 벌이고 다닌 것은 정말 몰랐다”고 말해 수사관계자들을 어리둥절케 했다.
이 사건을 맡은 한 수사관은 “최씨가 사람들을 속여 사기행각을 벌인 것을 아는 사람은 최씨 본인 말고는 아무도 없다. 나이도 어린 가정주부에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속아 넘어갔다는 게 믿기 어려울 뿐”이라고 말했다.
최씨의 남편도 아내의 이 같은 사기행각을 전혀 몰랐다. 경찰에 의하면 직장도 없는 최씨의 남편은 “아내가 돈을 벌어오는 것이 그저 놀랍고 대견하게 생각했다”며 “아내가 부동산 투자에 특별한 재주가 있어 보였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최씨를 붙잡았을 때 최씨는 두 달간 숨어 다니느라 많이 지쳐보였고 아주 평범한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최씨의 신원을 조회해 본 결과 전과도 없어 진범은 따로 있고 최씨는 단지 명의만 빌려준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 사건의 배후가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최씨가 관리하고 있는 가차명 계좌와 최씨의 통화내역 모두를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조직폭력배 E파의 행동대장 임씨와 연루된 것을 알고 조직폭력배의 비호를 받았을 것으로 보기도 했다. 그러나 임씨는 최씨와의 개인관계로 도와준 것일 뿐 결국 최씨 혼자 모든 것을 꾸미고 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놀라워했다.
최씨는 피해자들로부터 모금한 돈으로 기사 딸린 고급 승용차를 몰고, 살던 월세집을 처분하고 50평짜리 호화주택을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유흥비로 상당한 금액을 탕진했고 고속도로 휴게소 사업에도 30억원을 투자했으나 큰 수익을 남기지는 못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무엇이 평범한 가정주부를 파탄에 이르게 한 것일까.
사건을 담당한 수사관은 “상고를 졸업한 최씨는 숫자 감각이 빠르고 비상한 머리를 가졌으나 남편이 변변한 직업이 없어 생활고를 겪었다. 최씨는 자기가 조금이라도 생계에 도움을 주고자 시작한 일이 이렇게까지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금까지 드러난 피해자 외에 또 다른 피해자들이 최씨로부터 4백50억원을 사기당했다고 주장해 최씨의 여죄를 수사중이다.
만약 피해자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 사건의 피해액은 당초 예상보다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간 큰 주부가 저지른 사기사건의 파장이 어디까지 번지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