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검찰이 장씨를 조사한 것은 그에 대한 투서가 접수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사 결과 장씨에 대한 혐의는 확인되지 않아 검찰은 그를 입건유예로 석방했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뒤인 지난 4월24일. 광주지검 특수부(김광암 부장검사)는 다시 장씨를 소환했다.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장씨는 업무상 배임 및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된 것이다.
검찰 조사 결과 장씨는 99년부터 2001년까지 회사 공금 30억원을 임의로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장씨는 빼돌린 돈을 개인적으로 유용했으며, 7억원 가량의 법인세도 내지 않았다는 게 검찰의 발표였다.
장씨의 이 같은 비리가 드러난 것은 그에 대한 투서 때문이었다. 2년 전 그의 비리에 대한 투서가 접수됐을 당시 검찰은 혐의를 확인하지 못했으나, 이번에는 구체적인 혐의를 밝혀냈다.
그러나 장씨가 구속된 후 검찰 주변에서는 이 사건이 장씨의 개인 비리사건이 아니라는 관측이 오가고 있다. 단순 공금횡령 사건의 차원을 넘어선 초대형 사건이라는 얘기인 것이다.
그러나 광주지검은 이 사건을 장씨의 단순 개인횡령사건으로 종결지을 것으로 알려져 향후 처리결과가 주목된다.
광주지검 수사과에 ‘대표가 회사 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하고 있다’는 익명의 투서를 처음 접수한 것은 지난 2002년 9월. 투서를 접수한 수사과는 장씨를 극비리에 불러 투서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당시 조사에서는 장씨가 공금 30억원을 빼돌린 사실이 확인됐다. 그러나 장씨는 10월 초 입건 유예로 풀려났다. 장씨는 검찰에서 “30억 중 내가 10억원을 가져갔고, 나머지는 현장 소장 및 직원들의 격려금, 야근 및 각종 수당, 업무추진비 등으로 사용했다. 개인적으로 쓴 10억원은 회사에 변상하겠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회사 직원들도 “사장이 업무 추진비나 직원 식사 및 격려비 등으로 돈을 지출했다”는 확인서를 제출해 장씨 사건에 대한 검찰조사는 흐지부지됐다.
검찰 수사과는 조사를 끝낸 뒤 곧바로 이 사건을 특수부로 이첩(수사과는 법적 구형 권한이 없는 사법경찰관이 근무하기 때문)했다. 이에 특수부는 드러난 내용만으로는 횡령죄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 장씨를 입건유예 조치했다.
2년이 지난 후 검찰이 장씨를 재조사한 것은 올해 1월 말 장씨에 대한 비리내용을 담은 투서가 법무부로 날아들었기 때문이었다. 투서이기보다는 일종의 고발장이었다. 놀랍게도 투서를 보낸 사람은 장씨의 운전기사인 정아무개씨(43)였다.
검찰 조사 결과 정씨는 사장 장씨가 검찰로부터 입건유예로 풀려난 직후인 2002년 10월17일 서울에서 “10억원을 주지 않으면 사장의 비리를 부패방지위원회와 국세청, 법무부 등에 보내겠다”고 협박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협박으로 정씨는 장씨로부터 지난해 8월까지 모두 5차례에 걸쳐 1억7천만원을 받았다는 것.
그 후에도 정씨의 협박은 계속됐고, 견디다 못한 장씨는 정씨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러자 정씨는 법무부에 장씨의 비리내용을 담은 투서를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법무부는 지난 1월 말 정씨의 투서를 접수, 대검에 이를 통보했으며 대검은 다시 광주지검으로 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지시했다.
재조사에 나선 특수부는 지난 2002년 당시 수사과에서 올린 장씨에 대한 조서 내용을 일일이 재확인했다. 우선 특수부는 퇴사 직원 및 현 직원들을 차례로 검찰에 불러 사실 확인에 들어갔다.
그 결과 검찰은 2002년 사건 당시 회사 직원들의 명의로 검찰에 제출했던 ‘석방탄원서’가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장씨가 직원들을 시켜 석방탄원서를 작성케 했다는 것.
검찰은 곧바로 장씨에게 출석요구서를 보냈다. 그러나 장씨가 이에 불응했고, 검찰은 체포 영장을 발부해 지난 4월23일 장씨를 긴급 체포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장씨는 회사 재산상 손해, 즉 일종의 가지급채무와 가공비용(노무비 등) 지출 내역으로 허위 전표를 만드는 수법으로 회사 공금을 챙겨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 과정에서 장씨는 운전기사 정씨가 자신의 약점을 잡아 거액을 뜯어냈다며 검찰에 정씨를 고소했고, 결국 정씨도 지난 4월27일 공갈 혐의로 구속됐다.
수사를 맡은 특수부 윤석열 검사는 “두 사람 모두 이 건으로 많이 시달려왔던 탓인지 혐의를 대부분 인정하고 있다”며 “두 사람은 영장실질심사까지 포기했으며 오늘(4월30일) 서로간의 고발, 고소를 취하했다”고 밝혔다.
윤 검사는 “30억원이라는 수치를 감안, 단순 횡령보다는 죄가 무거운 업무상 배임죄를 적용했으며 순천세무서가 7억원의 세금을 장씨가 포탈한 것으로 밝혀옴에 따라 조세 포탈 혐의도 추가해 기소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사건이 터진 이후 검찰 주변에서는 장씨가 유용한 회사돈의 사용처와 관련해 정치인에 건네졌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일단 검찰은 장씨가 빼돌린 돈을 유흥비 등으로 탕진한 것으로 결론 내리고 있다. 검찰은 과거 수사에서 밝혀내지 못한 회계 조작을 입증하는 데에 수사력을 집중했으며, 개인 유용 이외에 다른 용처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검찰 주변에서는 장씨가 평소에도 수억원의 거금을 지니고 다녔고, 체포 당시에도 자기앞 수표 2억7천만원이 장씨의 옷에서 나온 점, 그리고 2002년 10월경 자신 소유 부지담보로 은행에서 4억원을 빌린 사실 등에 주목하면서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이다.
특히 장씨가 호남 출신 유력정치인인 A 전 의원과 구여권 핵심 정치인인 C 전 의원 등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루머가 오가고 있다.
여기에 장씨는 호남의 대표적인 조폭인 L씨 등을 동원해 공기업인 K사의 하청을 따냈다는 말도 나돌고 있어 사건파장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