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재로 완전히 불탄 가게들 | ||
사건은 충남 서천군 서천읍의 한 마을에서 일어났다. 주민 2백여 명 남짓한 이 마을이 요즘 때 아닌 의문의 살인사건으로 술렁이고 있다.
사건 취재를 위해 기자가 서천읍을 찾은 것은 지난 5월12일. 때마침 마을에는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어 을씨년스런 분위기마저 자아냈다.
현지 택시를 타고 기사에게 사건에 대해 물어보자 비교적 소상하게 내용을 알고 있었다. 그만큼 이 사건은 적어도 이 일대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었다.
택시를 타고 시골길을 따라 5분 정도 달리자 읍내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문제의 카센터가 나타났다. 철골조물로 지어진 카센터의 잔해가 검게 그을러진 채 앙상하게 남아 있어 사건 당시의 참혹함을 전해주었다.
철골 구조물이 고열에 녹아내리고 그을린 곳에 비가 내려 분위기를 더욱 스산하게 만들었다. 화재 현장은 카센터, 카오디오 가게, 농기계 상사, 식당의 4개 건물이 붙어 있었다.
이 건물들은 지난 5월2일 화염에 휩싸였다. 이웃한 가게의 주민들은 가까스로 몸을 피했으나 카센터에서 잠을 자던 사람들은 화를 면하지 못했다.
그런데 당시 카센터 화재현장에서 여자 시신 한 구가 발견됐다. 당초 이 시신은 이 카센터의 여주인으로 추정됐으나, 일부에서는 카센터에 이웃한 옆집 농기계 판매가게의 여주인일지도 모른다는 추정이 제기됐다. 공교롭게도 화재 발생 시기 즈음 농기계 가게 여주인이 실종됐기 때문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당초 시신의 주인공으로 추정되던 카센터 여주인 또한 행방불명됐다는 점이다.
결국 불에 탄 시신이 카센터 여주인이든 농기계 상사 여주인이든 둘 중 한 명은 행방불명이 된 상황에서 경찰은 시신의 유전자를 감식하는 것 외에는 다른 단서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전자 감식 역시 시신이 전소돼 그리 쉽지 않은 상황.
그러는 동안 이 의문의 화재사건을 두고 경찰 수사는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수사 담당자는 “모든 형사계 경찰들이 총출동해서 수사를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모든 것이 미스터리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수사가 미궁에 빠지자 사건을 둘러싼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채무나 가정 문제와 관련한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나돌았다.
결국 실종된 다른 한 명의 여자를 찾아내는 것이 이 사건을 해결하는 유일한 열쇠였던 셈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의문은 화재 발생 8일 후인 지난 5월10일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던 카센터 여주인이 피살된 채 발견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화재현장에서 약 10k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카센터 여주인의 시신은 목이 흉기로 관통당한 상처가 남아 있어 타살이 확실했다. 단순 화재사건으로 여겨지던 이 사건은 살인사건으로 바뀌었다.
서천경찰서 형사계에 근무하는 9명의 경찰은 매일 총출동해 피해자들의 주변인물들을 샅샅이 탐문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딱히 혐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범행동기를 추정할 수 없는 것도 문제.
수많은 의문을 간직하고 있는 이 사건의 실체는 무엇일까. 현재까지 경찰이 밝혀낸 수사 내용을 중심으로 추적해보자.
▲ 카센터 여주인 사체 발견현장. | ||
그런데 농기계 가게 여주인 김씨가 집을 나선 지 50분 뒤 카센터는 화염에 휩싸였다.
경찰 수사 결과 카센터 여주인 김씨가 전화했을 당시 남편 김아무개씨(44)는 서천읍에서 조금 떨어진 낚시터에서 밤낚시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교통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범인은 누구인가.
현재 경찰은 이 사건과 관련해 몇 가지 시나리오에 따라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첫째는 카센터 화재와 카센터 여주인의 살해범이 동일인일 가능성, 둘째는 이들 두 사건의 범인이 다를 가능성 등이다.
사건과 관련해 현재 경찰이 잠정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사람은 카센터 여주인 김씨의 남편과 사건 당일 밤 카센터 여주인 김씨와 함께 있었던 것으로 밝혀진 정체 불명의 남자.
먼저 남편 김씨.
경찰은 김씨에 대해 아주 조심스럽게 언급하고 있다. 가족을 잃은 슬픔에 빠져 있는 김씨를 증거도 없이 용의자로 몰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예 의심을 풀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당시 김씨는 밤 9시부터 다음날 새벽 3시까지 낚시를 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동행자가 증언으로 남편 김씨의 알리바이는 성립되었다. 김씨의 통화기록도 밤 11시와 새벽 3시에 낚시터에서 집으로 전화한 것으로 나왔다. 김씨는 교통사고는 없었다고 했다.
김씨가 밤 11시부터 3시 사이에 범행을 저지르고 낚시터로 돌아왔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동행자의 증언이 있기 때문에 김씨의 알리바이를 믿어야 하는 상황이다.
다음은 의문의 남자.
사건 당일 카센터에 인접한 카오디오 가게에서 밤 12시까지 모임을 가진 뒤 집으로 돌아가던 사람들은 카센터를 지나던 중 여주인 김씨와 낯선 남자를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하얀 모자를 쓰고 있던 이 남자를 경찰은 강력한 용의자로 보고 있다. 이 남자가 카센터 여주인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고, 카센터 여주인은 그동안 아이들을 돌봐줄 것을 농기계 가게 여주인에게 부탁했다. 그 사이 남자와 농기계 가게 여주인이 마주쳤을 가능성이 높다. 이 남자는 살인을 저지르고 난 뒤 자신의 얼굴을 본 농기계 가게 여주인을 죽이기 위해 다시 돌아와 불을 질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당초 경찰은 출입문이 안으로 잠겨 있는 점으로 미뤄 화재의 원인은 실화로 판정했다. 그러나 용의주도한 범인이 다른 통로로 들어와 불을 놓았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화재 현장은 쇠가 녹아내려 제대로 된 감식이 어려웠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