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일 서씨의 병원 현관에는 휴진 공고가 붙어있었다. | ||
이후 서씨는 대구로 돌아와 치과를 개업하는 한편 시민단체와 정책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일찍부터 정치에 관심을 보여왔다고 한다.
실제로 서씨는 한때 광역시의원 지방선거에 출마하기도 했으나 낙선한 것으로 알려진다. 서씨는 그후 지역에서 ‘실직자 특별대책위원회 추진위원장’, ‘노인회 지정 치과의사’를 지내는 등 활발하게 봉사활동을 펴며 기반을 다져왔다고 한다. 지난 98년에는 모 당의 공천을 받아 지방선거에 나섰으나 역시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이같은 다양한 활동 때문에 주변에서는 서씨가 파렴치한 성범죄 행각을 벌였다는 사실에 상당히 의아해하는 분위기다. 서씨의 치과가 입주해 있는 건물의 주인은 “평소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자선단체에 기부도 많이 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활동도 많이 해 평판이 좋았다. 나도 기자들이 찾아와서 알게 되었는데 정말 의외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대구치과의사협회의 한 회원은 “서씨는 동기들 사이에서 평가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사람이 나쁘다기보다는 대개의 정치인이 그렇듯 과대포장에 능한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일을 벌일 정도로 파렴치한 사람은 아니었다. 회원들이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말했다.
서씨는 지난 십여년 동안 정치지망생으로서 비교적 모범적인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꿈이 멀어지면서 차츰 변태적 성행위를 탐닉하는 이중생활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 가운데 그의 ‘두 얼굴’을 눈치챈 사람은 거의 없었다.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