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6명은 김씨를 둘러싼 뒤 순식간에 전기충격기로 실신시켰다. 그리고 김씨 승용차의 보조석에 있던 금괴가 든 검은 가방과 현금 1백30만원을 챙겼다. 이들은 실신한 김씨와 김씨의 승용차를 인천의 한 공터에 버려둔 뒤 이내 자취를 감췄다.
사건이 일어난 시각은 오전 11시 45분. 햇볕이 쨍쨍한 대낮이었고 주변에는 수많은 차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 범행 현장을 눈여겨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마치 범죄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당시 이 강도 피해자가 가지고 있었던 금괴는 무려 30kg, 시가 5억원에 해당하는 분량이었다. 게다가 이 금괴는 이날 아침 중국에서 인천항으로 밀수입한 것이었다. 때문에 밀수범인 김씨도 경찰에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금괴를 강탈한 일당 6명은 이 사실을 미리 알아채고 과감한 범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이들은 사건을 일반 강도사건으로 위장하기 위해 피해자의 신용카드까지 가져가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다. 그러나 하마터면 ‘완전범죄’로 끝날 뻔한 이 대낮의 강탈극은 전혀 엉뚱한 사건 때문에 그 실체가 드러나게 됐다.
그때 그 사건이 벌어진 지 석 달여가 흐른 지난 4월, 6인조 강도단 가운데 막내인 강아무개씨(23)가 부산 중부경찰서에 연행됐다. 채팅으로 만난 16세의 박아무개양과 강제로 성관계를 가진 혐의 때문이었다.
당시 박양은 부모가 가출신고를 해놓은 상태였다. 박양을 찾아낸 경찰은 박양의 그간 행적을 조사하던 중 전화통화가 잦았던 한 젊은이를 포착했다. 박양을 추궁한 결과 ‘강제로 성관계를 맺었다’는 진술을 받아내고 이 젊은이를 체포했는데 그가 바로 강씨였던 것.
물론 강씨는 이 신용카드를 길에서 주운 것이라고 발뺌했다. 그러나 경찰은 신용카드의 주인을 수소문해 금괴 강탈 피해자인 김씨를 찾아낼 수 있었다.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은 김씨는 “강도를 당한 카드가 맞다”고 확인해 주었지만 경찰의 출석 요구에는 선뜻 응하지 못했다. 자신의 ‘원죄’ 때문이었다.
당시 김씨는 강탈당한 금괴 때문에 금전적·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었다. 빼앗긴 금괴는 중국에서 인천항에 사건 당일 오전 9시에 도착한 밀수품이었다. 원래 이 금괴를 서울 낙원상가의 한 귀금속 도매상으로 옮기는 게 김씨의 ‘임무’였다. 강탈당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금괴값 5억원은 ‘운반책’인 그가 책임져야 할 부분. 때문에 김씨는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집을 내놓고 팔리기만을 기다리던 상황이었다.
경찰의 계속되는 출석 요구에 고민하던 김씨는 혹시 금괴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경찰의 조사에 응했다. 그러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단순히 카드와 현금 1백30만원만 빼앗겼다며 금괴를 강탈당한 사실을 털어놓지 않았다. 애초 강간 피의자로 붙잡힌 강씨 또한 강도 사건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경찰의 눈에는 이 사건이 그렇게 단순한 사건으로만 보이지는 않았다. ‘겨우’ 1백30만원을 빼앗기 위해 6명의 일당이 승용차 2대를 동원해 고속도로상에서 계획적으로 추돌사고를 냈다고 여기기는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피해자 김씨는 부산에서 귀금속 가게를 운영하고 있고 재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인물. 귀금속을 노린 치밀한 범죄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경찰의 일차적인 판단이었다.
경찰은 피의자 강씨의 휴대폰 통화내역 등을 토대로 강도 사건 공범들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검거된 몇몇 공범들을 추궁해 결국 ‘금괴 이야기’를 자백받았다. 이런 가운데 강씨의 신병은 부산지검 형사1부로 넘어갔고 보강 수사 끝에 피해자 김씨가 30kg의 금괴를 강탈당한 사실이 확인됐다.
▲ 금괴강탈 사건이 발생했던 경인고속도로 현장. | ||
그러나 검찰이 김씨의 당일 행적과 강도 공범들을 추궁하는 등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이자 결국 김씨는 금괴 밀수 사실을 털어놓았다. 검거된 강도사건 공범들에게서도 밀수 정보를 미리 입수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그렇다면 이 강도범들은 김씨가 금괴를 운반한다는 정보를 어떻게 입수했을까. 두 가지 가능성이 거론된다. 먼저 밀수조직의 일원이 강도범들로부터 대가를 받기로 하고 몰래 정보를 넘겨줬을 가능성이 있다. 강도범들의 보스격인 이아무개씨(50·폐차장 운영)는 밀수 전과가 있어 밀수조직원들과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검찰은 아예 밀수조직과 강도범 일당이 서로 내통해 김씨에게서 돈을 뜯어내기 위해 벌인 ‘사기극’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강탈 사건 직후 ‘두목’ 이씨는 수고비로 6천만원을 강도 일당 6명에게 나눠줬던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30kg짜리 금괴를 강탈하면서 6천만원을 선뜻 수고비로 내준 것은 ‘그들 세계’의 생리상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다. 장물이라 몇 단계를 거쳐 처분할 수밖에 없는데 실익에 비해 과한 수고비라는 것. 이들이 단지 금괴뿐만 아니라 피해자 김씨가 갚아야 할 금괴값까지 염두에 두고 돈을 나눴을 가능성이 점쳐지는 대목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검찰은 금괴 밀수조직과 강도상해를 저지른 폭력조직을 모두 소탕하려 했으나 나머지 피의자들은 잠적한 상태다. 5일 현재 밀수품 운반 혐의로 김씨 외 1명이 구속됐고 2명은 수배중이다. 또한 강도상해를 저지른 6인조 중 3명은 체포됐고 나머지 3명과 같은 일당 3명에게도 수배가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