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경마장을 근거지로 활동했던 이들 6인조 공갈단은 어설프게 완전범죄를 노렸으나 결국 피해자와 경찰에 의해 끝내 덜미가 잡혀 첫 사기극은 마지막 범행이 되고 말았다.
지난 6월11일 오전 11시. 광주광역시 서구 광천동 버스터미널 앞에서 세 명의 남녀가 광주지방경찰청 기동수사대 형사들에 의해 전격 검거됐다. 사기극을 벌인 지 이미 6개월이나 지난 터여서 안심하고 시내를 활보하던 중이었다.
경찰은 이들을 ‘야간·공동공갈’ 혐의로 구속하고 나머지 일당 3명은 계속 추적중이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광주에서 시내버스를 운전하던 장일두씨(가명· 57). 6인조 사기단 중 주범인 김아무개씨(51) 또한 같은 회사에서 버스를 운전하던 동료였다. 지난해 11월 장씨는 회사를 퇴직했고, 김씨는 장씨의 퇴직금에 눈독을 들였다. 그리고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하기 시작했다.
경마광이었던 주범 김씨는 피해자 장씨를 데리고 종종 광주 시내의 화상경마장을 다녔다. 퇴직 후 할 일이 없던 장씨로서도 재미난 소일거리였다. 경마장에서 장씨는 김씨로부터 평소 잘 아는 여인이라며 한아무개씨(42)를 소개받았다.
김씨와 한씨 두 사람은 내연의 관계인 것처럼 행동했고, 셋이 만날 때는 혼자인 장씨에게 “여성을 한 명 소개시켜 줘야겠다”며 분위기를 잡았다.
어느날 이들 셋이 카페에서 술을 마시던 중 한씨는 장씨에게 “여자를 소개시켜주겠다”며 이아무개 여인(54)을 불러냈다. 이씨는 남편이 모 대학 사무처에 근무한다며 자신을 유부녀라고 소개했다. 거나하게 술을 마신 뒤 분위기가 좋아진 이들 남녀 두 쌍은 곧바로 모텔로 직행했다.
이렇게 이들의 만남은 서너 번 더 이어졌고 장씨는 생전 처음 불륜의 달콤함을 맛보고 있었다.
지난해 12월14일 밤. 이날도 이들 네 사람은 초저녁부터 만나 술을 마시다 오후 8시가 되기도 전에 모텔로 직행했다. 각자의 방에서 시간을 보낸 커플들은 밤 9시20분경 모텔을 나서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모텔을 나오던 장씨는 난데없는 봉변을 당했다.
이씨의 남편이라고 자칭하는 한 사람이 모텔 앞에서 버티고 있었던 것. 그는 장씨 일행을 보자마자 흥분하며 장씨를 협박했다. “내 마누라랑 붙어 먹었으니 죽여 버리겠다. 너 같은 ××는 경찰에 처넣어야 해. 내가 가만히 있나 봐라”며 길길이 날뛰었다.
이때 같이 있던 나머지 사람들은 미리 짜놓은 각본대로 충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김씨의 파트너였던 한씨는 마치 자신도 친구 남편에게 불륜이 들킨 것마냥 당황해하며 황급히 자리를 피하기도 했다.
한바탕 소동을 일으킨 뒤 이씨의 남편을 자처한 그 남성은 “간통 증거를 남겨야겠다. 지금 당장 정액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가야겠다”며 이씨를 데리고 자리를 떴다.
결국 장씨와 김씨 두 명만 남게 되자 김씨 또한 자신의 역할을 시작했다. 김씨는 장씨에게 “형님, 오늘 합의하지 않으면 구속돼요. 정액검사하러 남편이 데리고 갔으니 빨리 돈을 주고 합의를 하쇼”라며 재촉했다. 김씨는 자신이 나머지 일을 해결해 주겠노라며 장씨를 사채업자 정아무개씨(49)에게 데리고 갔다.
김씨는 마치 이씨의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합의하는 시늉을 하며 장씨에게 합의금으로 2천만원이 필요하다고 일러주었다. 장씨는 그 자리에서 사채업자 정씨에게 2천만원을 빌려 김씨에게 건넸다. 김씨는 자신의 중재 노력이 잘 되어 일이 원만하게 이루어진 것인 양 행세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들의 공갈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석 달 뒤 김씨는 장씨에게 “이씨의 남편이 합의 전에 이 일을 경찰에 신고해버려 이미 사건접수가 됐다”고 거짓말을 한 뒤 “잘 아는 변호사를 통해 사건을 무마해 주겠다”고 했다. 김씨가 소개시켜 준 변호사는 장씨와 만난 자리에서 “아는 경찰을 통해 잘 처리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며 또다시 1천만원을 받아냈다. 장씨의 퇴직금 3천만원을 다 빼낸 이들 6인조 공갈단은 각자 역할만큼 돈을 분배한 채 콧노래를 불렀다.
한편 장씨는 비록 퇴직금이 모두 달아났지만 그래도 가족 모르게 모든 일이 무사하게 잘 수습된 것에 안도하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 자신과의 불륜 때문에 이혼이나 당하지 않았을까 염려되어 한때 내연의 관계였던 이씨에게 연락을 시도했으나, 도통 연락이 되지 않았다. 한씨도 마찬가지였다. 김씨에게 물어봐도 “모든 것이 다 잘 처리됐다”는 얘기만 할 뿐이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장씨는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버스회사에서 김씨를 붙잡고 그를 통해 이씨와 사채업자 정씨를 역시 불러들여 추궁했으나 이들은 자신의 범행을 극구 부인했다. 그러나 유부녀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이씨와 한씨가 홀로 사는 이혼녀로 밝혀졌고, 또 장씨에게 소개한 변호사 역시 가짜임이 밝혀지면서 이들의 사기극은 전모가 드러나고 말았다.
이들 6인조 사기단은 광주의 한 화상경마장을 자주 드나들며 서로 친해진 사이인 것으로 밝혀졌다. 울산에 살고 있던 이씨와 한씨, 그리고 이씨의 남편 역할을 한 김아무개씨(53)는 부산의 화상경마장을 자주 다니며 친해지게 되었고 이후 광주의 화상경마장에 놀러 갔다가 거기서 주범인 김씨를 만났다. 김씨 또한 경마장을 근거지로 사채업자 정씨와 변호사 역할을 한 김아무개씨(48)를 알게 되었다.
장씨의 퇴직금 3천만원을 뜯어내는 한 편의 사기극에 동원된 이들 6명의 역할 분담과 연기는 완벽한 것처럼 보였다. 이들은 범행을 감추기 위해 타인 명의의 휴대폰을 사용하는 등 나름대로 빠져나갈 구멍도 미리 만들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깔끔하게 뒷마무리를 하지는 못했다. ‘불륜을 저지른 장씨가 설마 경찰에 신고야 하겠느냐’고 믿었던 탓이다.
이 사건을 담당한 경찰은 “아마 장씨의 신고가 없었다면 이들 6인조 사기단은 첫 범행의 성공을 거울삼아 제2, 제3의 범행 대상을 찾아 나섰을 것”이라며 “협박이나 공갈 같은 범행은 피해자가 신고를 못한다는 점을 악용해 벌어지는 것이 특징이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더 큰 화를 막는 길”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