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고생 납치 사건을 다룬 일본 영화 <완전한 사육>의 한 장면. | ||
영화 <올드 보이> 속편의 한 장면? 바로 얼마 전 13세 여중생 이아무개양이 실제로 겪은 지옥 같은 감금 생활을 재현한 모습이다. 한 40대 사내에게 납치됐던 여중생 이양은 볕도 들지 않는 한 평 남짓한 지하창고에 12일 동안이나 갇혀 지내면서 수시로 몸과 마음을 유린당해야 했다. 이 같은 엽기적인 범행을 저지른 사내는 경남 김해에서 막노동을 하는 노아무개씨(49·구속). 노씨는 이양을 성폭행한 뒤 도망가지 못하도록 쇠사슬로 ‘족쇄’를 채웠가 하면 이양이 심심해하지 않도록 비디오테이프나 만화를 넣어주는 ‘이중성’을 보였다. 대체 그는 왜 이런 엽기적인 범행을 저질렀던 걸까. 경찰 조사 내용을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했다.
지난 6월6일 오후 2시께 김해시 전하동에 위치한 남해고속도로 지하통로 입구. 친구를 만나러 가던 이양 곁으로 승합차 한 대가 다가왔다. 운전자는 통학길에 몇 차례 마주쳐 눈에 익은 ‘아저씨’ 노씨. “목적지까지 태워주겠다”는 그의 제의에 이양은 별다른 의심 없이 차에 올랐다.
그러나 노씨가 향한 곳은 으슥한 산기슭에 자리잡은 그의 집이었다. 이양이 저항했지만 서슬 퍼런 이씨의 엄포에 이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노씨는 집에 도착한 뒤 이양에게 피임약을 먹이고 성폭행을 했다. 경찰 관계자는 “노씨는 범행 하루 전인 6월5일 피임약을 구입했다. 그가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노씨는 집에서 20여 마리의 개를 키우고 있었다. 개 사육장 밑에 사료를 보관해 두기 위해 작은 지하창고를 만들어 놓았는데 이곳이 이양의 ‘임시 감옥’으로 사용됐다. 노씨는 합판과 앵글로 간이 침대를 만든 뒤 이양을 지하창고에 가뒀다. 마치 영화 장면 같은 감금 생활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피해자 이양이 갇혀 있던 지하창고. | ||
다음날 아침 7시, 노씨는 일하러 나가기 전에 이양에게 손수 아침밥을 지어주고 점심 때 먹으라고 미리 밥상까지 차려 지하창고에 넣어 주었다. 저녁 무렵 노씨가 일을 마치고 들어올 때엔 이양의 또래들이 좋아하는 만화책이나 잡지책을 빌려오기도 했다.
그러나 노씨가 집을 비운 동안 이양은 사육장의 짐승과 다를 바가 없었다. 눅눅하고, 벌레가 들끓는 좁디 좁은 지하창고 안에서 대소변과 식사를 함께 해결해야 했던 것. 이양은 목이 터져라 “구해달라”고 울부짖었지만 주변의 개 짖는 소리에 파묻힐 수밖에 없었다.
노씨가 집에 돌아오면 이양은 ‘감옥’에서 풀려나와 잠시 ‘해방감’을 맛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양에게는 또 다른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밖에서 돌아온 노씨는 어린 몸을 유린하며 자신의 욕정을 채우곤 했다. 이양을 성폭행하고 난 뒤엔 다시 지하창고에 가두고 출입문을 이중으로 잠가 버렸다.
이렇게 며칠이 흘렀을까. 하루 20여 시간씩의 ‘감옥’생활에 견디다 못한 이양이 “집에 보내달라”고 호소를 하자 노씨는 오히려 “내 말 안 들으면 죽여버리겠다”, “너의 집이 어딘지 잘 안다. 도망가도 내가 다시 잡아 오겠다”, “너의 집을 불질러버리겠다”며 이양을 협박했다. 심지어 이양을 무참히 폭행하고 이양의 앞머리를 보기 흉하게 마구 잘라버리기도 했다.
겁에 질린 이양은 더 이상 저항할 엄두도 못 내고 노씨의 감금과 폭행을 홀로 견뎌내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노씨는 방심하기 시작했다.
▲ (시계방향으로)농가 전경, 피해자 이양이 갇혀 있단 지하창고 입구, 피의자 노씨. | ||
그러나 그때까지도 겁에 질려 있던 이양은 선뜻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너의 집이 어딘지 알고 있다”, “도망가면 다시 잡아오겠다”는 노씨의 엄포가 귓가에 맴돌았기 때문. 집에 도착한 이양은 보일러실에서 밤을 지새웠다. 다음 날 아침 친할머니가 이양을 발견했지만 이양은 이틀 뒤에야 할머니에게 12일간의 악몽 같은 체험을 고백했고 가족들은 이 사실을 경찰에 알렸다.
노씨가 미성년자 감금·성폭행 등의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것은 지난 6월22일. 당시 그는 이양이 이미 닷새 전에 도망쳤음에도 여전히 자신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 이양에게 세뇌하듯이 겁을 줘서 결코 신고하지 못하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노씨는 “죽을 죄를 지었다. 너무 외로웠다”고 범행동기를 밝혔다. 노씨 동생은 경찰에 “형이 이혼하고 가족들하고 연락도 끊다시피하고 살면서 무척 힘들어 하고 외로워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노씨가 처음부터 이양을 감금할 생각을 품은 것은 아닌 듯하다. 이 사건을 맡은 한 경찰 관계자는 “노씨가 처음 이양을 성폭행하고 난 뒤 마음이 바뀐 것 같다. 이양이 자신의 얼굴도 알고 집 위치도 아니까 그대로 이양을 보내면 신고할까봐 두려워서 계속 데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정작 경찰을 어이없게 만든 것은 노씨의 ‘항변’. 경찰조사에서 노씨는 “내가 이양에게 과자도 사주고, 고기도 구워주고 잘 대해줬다”고 주장했다고. 사건을 담당한 한 경찰 관계자는 “노씨의 집이 외진 곳에 위치해 좀처럼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다. 이양이 아무리 소리를 질러 봐도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설사 누가 있다고 해도 개들이 짖어대는 소리에 묻혀 들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양이 천만다행으로 탈출했지만 노씨가 마음만 먹었다면 이양을 평생 가두어 놓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