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고향인 강씨는 군복무를 마친 뒤 99년에 서울로 올라와 유흥업소에서 웨이터나 DJ 등의 일을 했다. 당시 강씨와 함께 일했던 단란주점 여사장은 “강씨는 참 착한 사람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입원중에 이렇게 (경찰서까지) 찾아와 보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일을 벌일 사람으로는 전혀 생각되지 않았다는 것.
강씨는 업소에서 일하면서 만난 한 여성과 잠시 사귀기도 했다. 강씨와 6개월간 함께 살았던 동거녀에 따르면 강씨는 온순한 사람이었고 싸울 때도 손찌검을 한다든가 물건을 부수거나 하는 난폭한 성격은 아니었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에 온순하면서 그다지 많은 사람을 만나지 않고 주로 혼자 지내며 타인과 단절된 삶을 살아온 과정 또한 유영철과 비슷한 면면. 강씨가 검거된 뒤 일가 친척 중 경찰로 찾아온 사람은 그의 사촌동생뿐이었다고 한다.
강씨의 주소지를 찾아가 보았으나 그곳은 강씨의 사촌동생의 가게였다. 강씨는 특별한 주거지도 없이 사촌동생의 집과 찜질방, 사우나 등을 전전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타향살이에서 겪는 어려움과 여자에게서도 버림받았다는 일종의 좌절감은 강씨의 삶을 차츰 빗나가게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생각했던 것보다 돈이 모이지 않자 그는 강도 행각을 시작했고 여자에 대한 욕구와 적개심 때문에 여성을 유린하게 됐던 것이다.
강씨는 단란주점을 그만둔 뒤 호떡을 팔기도 했고 가방을 파는 노점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강씨의 범행은 계속되었다.
지난해 12월 특수강도로 구치소에서 4개월간 복역하면서 강씨의 범행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다. 교도소 동기들로부터 각종 범죄수법을 전해들으면서 나름대로 완전범죄를 연구했던 셈.
이렇게 쌓인 범죄 노하우는 지난 8월 살인 현장에서도 그대로 발휘됐다. 강씨는 사건을 원한에 의한 살인으로 위장한 것 외에도 현장에서 자신의 지문을 모조리 닦아 없애는 등 흔적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또 차후 자신의 행적이 드러나지 않도록 범행 당일에는 휴대전화를 전혀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강씨의 범행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강씨는 경찰에 검거된 뒤 살인에 대한 죄책감으로 잠을 거의 이루지 못했다고 밝혔다. “밤마다 피해자의 얼굴이 떠올라서 괴로웠다. 매일 악몽을 꿨다.” 경찰서에서 강씨는 뒤늦게 자신의 범행을 후회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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