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들을 기다리던 것은 현금 2조6천억원이 아니라 잠복중이던 40명의 형사들이었다. 쇠파이프와 골프채, 당구채, 목검을 든 이들 조직원들은 형사들과 격렬한 격투를 벌였으나 곧 현장에서 검거됐다.
그렇다면 과연 피해자 이씨의 집에는 2조6천억원이란 거액이 있었던 걸까. 경찰 조사 결과 ‘2조6천억원’은 결국 헛소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른바 ‘꾼’으로 불릴 정도로 전문가인 이들이 왜 이런 허황된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던 걸까. 이들의 경찰 진술에 따르면 이 ‘거액의 현금 보유설’은 ‘지하세계’에서 은밀히 구전돼온 얘기였다고 한다. 담을 넘는 그 순간까지도 이들은 소문을 굳게 믿고 있었다.
피해자 이씨의 부친이 인천에서 내로라하는 부자였던 것이 바로 ‘괴소문’의 뿌리. 한때 이씨의 집안은 인천항의 하역시설 상당 부지를 소유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갑부였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이씨 집안에 원화, 달러, 엔화가 현찰로 가득 쌓여 있다’는 얘기가 시중에 공공연히 나돌기도 했다. 2조6천억원이라는 구체적인 액수까지 거론되면서 이 소문이 진짜라고 믿는 사람들도 늘기 시작했다고 한다.
문준이파 두목 김아무개씨(56)가 이 소문을 부두목 김아무개씨(59)로부터 들은 것은 지난 5월. 두목 김씨는 부동산 개발업을 해왔으나 사업이 연이어 실패하고 큰 빚을 지게 되자 ‘한탕’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들은 곧 이씨의 집을 털기로 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부두목 김씨는 교도소에서 친분을 쌓았던 행동대장 김아무개씨(38)를 두목 김씨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행동대장 김씨는 이 제안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자신과 친분이 있던 ‘조직원’들을 불러모았다.
그러나 김씨가 행동대원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이 ‘프로젝트’의 기밀이 새어나갔고 결국 경찰의 정보망에까지 들어가고 말았다.
최종적으로 이 프로젝트에 가담한 인원은 모두 14명. 이들은 완벽한 범행을 위해 수차례 예행연습까지 했다. 이들이 우선 한 일은 이씨 집 안에 대한 정탐.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이씨 집안으로 들어가 방의 위치와 가구, 금고 등의 위치를 파악했다. 집안의 구조도를 그린 뒤 이를 공터에 다시 그려놓고 작전을 짜며 맹연습을 했다.
이들은 완벽한 범행을 위해 ‘열쇠조’ 3명, ‘인질조’ 6명, ‘작업조’ 1명으로 나눠 각자의 역할을 분담했다. 부두목 김씨는 자금관리와 작업조 지휘를, 또다른 부두목 서아무개씨(45)는 인질조와 열쇠조를 지휘했다.
한편 이 즈음 경찰은 이들의 범행 정보를 사전에 입수했으나 이들이 과연 범행을 실행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2조6천억원이라는 금액은 터무니없는 액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은 만일의 가능성에 대비, 이들의 범행 나흘 전부터 이씨의 집 앞에서 잠복을 시작했다. 9월16일 새벽 2시 드디어 문준이파의 행동이 개시됐다. 이들은 1톤 트럭(포터) 2대, 봉고차 1대, 승합밴(갤로퍼밴) 1대를 나눠 타고 이씨의 집 앞에 도착했다.
먼저 열쇠조 2명, 인질조 4명, 행동대장 정아무개씨(39)와 부두목 서씨가 담을 넘어 들어갔다. 이들은 모자와 마스크, 장갑을 껴 자신들의 신분이 드러나지 않도록 했다. 또한 현금을 담기 위한 마대자루도 무려 50개나 준비했다.
그러나 이들이 현관문을 채 열기도 전에 잠복했던 형사들이 이들을 덮쳤다. 당시 이들 조직원들의 손에는 30센티미터의 칼, 쇠파이프, 골프채, 당구채, 목검, 마대자루, 쇠못뽑이(일명 빠루)가 들려 있었다. 곧 격렬한 격투가 이어졌고 이들 8명은 이내 형사들에게 검거됐다.
그러나 담을 넘어가지 않았던 나머지 6명은 현장에서 곧바로 도주했다. 이들 중 두목 김씨를 비롯한 4명은 지난 11월24일 저녁에서 25일 새벽에 걸쳐 체포됐다.
피의자들 중 두목급들은 대부분 사업이 한두 번씩 망하거나 해서 거액의 빚을 진 상태였다. ‘한탕’으로 인생역전을 이루려다 보니 괴소문을 차츰 진실로 믿게 된 것이었다. 이들이 범행에 가담할 인원을 찾는 과정에서 ‘도저히 말이 안된다’며 제안을 거절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지만 이들은 오히려 그 사람들을 비웃었다.
결국 ‘문준이파’ 일당은 실체조차 없는 2조6천억원 때문에 허망하게 철창 신세를 지게 됐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이 이번 범행에 성공한 후에 또 다른 범행을 저지를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는 점. 물론 그 계획도 지하세계의 ‘소문’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