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30일 경찰들이 부천초등생 피살사건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서울신문 | ||
당시 경찰은 윤군과 임군이 실종됐을 때 단순 가출 사건으로 처리하고 뒤늦게 수색에 나서 경찰의 초동 수사에 대한 비난이 일자 담당 경찰서장을 교체하는 등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또 중학생 박아무개군(15)을 성급히 용의자로 지목해 긴급체포했다가 증거불충분으로 이틀 만에 풀어줘 경찰의 강압수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수사가 시간을 끌면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자 임군의 큰아버지(46)가 경찰 수사에 불만을 제기하면서 한강에 투신자살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사건 발생 3백 일이 지나면서 새로운 의문과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과연 범인을 가리고 있던 베일이 한 꺼풀 벗겨지는 걸까. 부천초등생 사건을 다시 하나씩 짚어본다.
지난 1월14일 경기도 부천시 소사동의 한 주택가. 사건은 평소 친형제처럼 지내온 윤군과 임군이 집에서 8백m가량 떨어진 공터에서 공놀이를 하다가 함께 사라져버린 데서 시작됐다.
윤군은 이날 오후 8시50분께 수신자부담 전화로 여동생(11)에게 “엄마가 있는, 집 근처 PC방으로 간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그 이후 가족들은 윤군과 임군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없었다. 경찰은 처음에 단순 가출로 보았으나 일주일이 지나도록 아이들의 행방이 묘연하자 뒤늦게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탐문수사중 임군의 같은 반 친구 김아무개군(11)으로부터 “실종 당일 오후 10시께 카톨릭대 인근 편의점에서 30대 남자의 뒤를 따라가는 모습을 봤다”는 진술을 들었다. 그후 카톨릭대 근처와 뒤편 춘덕산 일대에서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벌였다.
그러던 지난 1월30일 살아있길 바라는 주위의 기대를 저버리고 윤군과 임군은 실종된 지 16일 만에 집에서 약 2.5km 떨어진 춘덕산 7부 능선 부근에서 목 졸려 살해된 채 발견됐다.
당시 윤군의 사체는 바로 누운 상태로 온몸이 발가벗겨져 있었고 양손의 검지, 중지, 약지는 운동화 끈으로 여러 겹 묶여 나무가지에 매달려 있었다. 윤군과 1m 옆에서 발견된 임군은 팬티만을 입은 채 손과 발이 목도리로 묶여 있었고 사체는 점퍼로 덮여 있었다. 윤군과 임군의 사체에는 나뭇가지에 긁힌 자국이 일부 있었지만 특별한 외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 결과 윤군과 임군은 실종 당일 살해되었고 범인은 아이들의 등을 밟고 뒤에서 목도리로 목을 졸라 살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범인과 관련된 물증이라곤 윤군과 임군의 등에 찍힌 범인의 운동화 자국 일부 외에는 발견되지 않아 경찰수사는 난항을 예고했다.
수사 초기 경찰은 사체 발견 모습과 유일한 목격자인 김군의 진술을 토대로 “체감온도가 영하 20℃를 오르내리는 늦은 밤 야산에서 아이들의 옷을 모두 벗기고 특히 윤군의 손가락을 운동화 끈으로 묶어 놓은 것으로 보아 30대 남자의 단독범행이고 정신병자이거나 가학성 변태성욕자의 소행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경찰의 이런 추정은 많은 의혹을 낳았다.
목격자 김군은 윤군과 임군이 범인으로 추정되는 남자의 뒤를 따라갔다고 진술했다. 즉 아이들은 이 남자를 ‘자발적’으로 따라갔다는 의미다.
만약 이 남자가 정신병자였다면 아이들이 밤늦은 시간에 야산의 7부 능선까지 순순히 따라갔을까. 또 하나 아이들의 사체 상태로 보아 범인의 가학성은 엿보이지만 성폭행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어 범인의 살해동기가 성적(性的)인 이유와 연관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당초 단독범의 소행이라는 경찰의 주장에 대해서도 반론이 일었다. 아무리 힘이 센 남성이라도 초등학생 2명을 아무 저항의 흔적도 없이 살해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점에서 공범이 있을 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됐다.
그로부터 10개월이 지난 지금, 수사본부는 이런 의혹들의 상당 부분을 받아들이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함께 수사하고 있다. 지난 11월26일 부천 남부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수사 초기 ‘30대 남자의 단독범행’ 추정은 상당부분 수정되고 있다. 나이가 30대라는 것도 목격자인 김군이 아이들이 따라간 남자의 뒷모습만을 보고 얘기한 것이기 때문에 나이에 대해선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밝혔다.
오히려 경찰은 10대 청소년들에 의한 우발적인 살해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그 근거는 이렇다.
먼저, 사체에서 가장 궁금증을 자아냈던 것 중 하나가 윤군의 손가락을 운동화 끈으로 묶은 부분이었다. 사건 초기 언론에서는 운동화 끈이 정교하게 매듭지어져 있어 범인이 포장과 관련된 직업을 가진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전문가들 역시 “처음 보는 생소한 매듭”이라며 범인이 특수한 직업의 소유자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경찰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한 수사관계자는 “범인이 운동화 끈으로 윤군의 손가락을 여러 겹 매기는 했지만 꼼꼼하다고 하기보단 아이들 장난처럼 여겨질 정도로 유치해 보인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범행수법도 치밀해 보이지 않고 ‘준비된 살인’이라기보단 어딘가 모르게 허술해 보인다는 것. 수사본부의 한 관계자는 “범인이 나름대로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아이들의 목도리를 이용해 살해했지만 일반적인 살인사건과 달리 치기어린 면이 많이 보인다”며 “특히 보통의 경우 결박하기 쉬운 손목을 묶게 마련인데 그렇지 않고 윤군의 손가락 하나하나를 묶었다는 건 왠지 어설퍼 보이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수사 관계자들이 10대 청소년들의 범행 가능성을 제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10대 청소년 몇몇이 윤군과 임군이 살해되기 전후 시점에 사체 발견 지점 근처를 서성이는 것을 봤다는 목격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아직 수사단계라 얘기할 순 없지만 주변 사람들의 진술을 토대로 용의선상에 오른 10대 청소년들의 당일 알리바이를 조사중이다”라고 설명했다.
범인의 윤곽과 함께 풀어야할 가장 큰 숙제로 남은 부분은 ‘살해 동기’. 도대체 범인은 왜 아이들을 살해했을까. 그것도 이상한 방법으로.
범행 현장의 정황상 윤군의 경우 범인이 혹한의 날씨에 먼저 윤군의 옷을 모두 벗기고 그 다음 손가락을 운동화 끈으로 동여매 나뭇가지에 매단 다음 목 졸라 살해한 것으로 추정된다. 비교적 깨끗한 사체의 상태로 보아 이 과정에서 윤군은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범인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왜 윤군은 꼼짝하지 못했을까. 이미 충격을 받고 저항불능의 상태에 있었던 걸까. 혹시 윤군이 범인의 지시에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었던, 어떤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닐까.
한 수사관계자는 “범인이 윤군의 손목을 묶는 대신 손가락을 묶었던 부분에서 ‘윤군이 손가락과 관련해 어떤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즉 범인이 윤군의 손가락을 묶은 것이 어떤 ‘처벌’의 의미를 지닌 게 아닐까 하는 시각이다.
다시 고개를 드는 부천 초등학생 사건에 얽힌 의문들. 경찰은 기존의 의혹들을 하나씩 제거해가면서 수사를 새로운 방향으로 틀어 베일 속 범인에게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