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대학교 어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는 A씨(35)는 두 기관에서 실시한 친자확인 검사 결과가 서로 다르게 나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본 경우다. 처음엔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검사 결과가 나와 아내를 몰아붙였으나, 추후 다른 기관에서 실시한 검사에서는 친자인 것으로 밝혀졌던 것. 뒤늦게 아내에게 사죄를 했지만 이들 부부는 끝내 이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A씨로서는 친자가 아니라고 판단한 검사기관이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A씨는 처음 친자확인검사를 실시한 곳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해 현재 재판이 진행중이다. 대체 왜 이 같은 일이 빚어지게 된 것일까. A씨가 털어놓은 한스러운 사연은 이랬다.
6세 때 부모를 따라 캐나다로 이주한 A씨는 대학을 마친 후 1998년 귀국해 유명 어학원에서 영어강사로 일했다. 2000년 11월께 A씨는 미국에 있는 여동생의 사업체에서 일을 돕기 위해 출국할 예정이었다. 그러다 출국하기 불과 한 달 전에 자신의 수업을 듣던 아내 B씨(28)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A씨는 미국으로 떠나야 하는 처지. 이후 두 사람은 인터넷으로 아쉬운 사랑을 달래다 B씨 또한 A씨를 따라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B씨는 영어학교에 등록해 어학을 공부하면서 A씨 여동생의 업체 일을 도와주며 지냈다. 다음해인 2001년 3월에 약혼을 한 두 사람은 그해 6월에 백년가약을 맺었다.
결혼식 후 A씨의 부모는 A씨 부부에게 캐나다에 있는 사업체를 물려주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캐나다에서 자란 A씨와 달리 B씨는 현지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A씨와도 의견이 맞지 않아 곧잘 다투기도 했다.
결국 B씨는 10월에 먼저 한국으로 돌아왔고 A씨는 사업체를 정리한 뒤 11월쯤 귀국했다. 이 때 두 사람이 한 달 넘게 떨어져 있었던 것이 추후 A씨가 아내를 의심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 B씨는 한국에서 학업을 계속하고 A씨도 다시 영어강사 일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B씨는 임신 사실을 알았고 그 해 7월 출산예정일보다 두 달이나 빠르게 아들을 출산했다.
A씨가 득남의 기쁨에 젖어 있을 때 캐나다에서 건너온 A씨의 어머니는 그 아이가 A씨의 아들이 아닐 것이라는 의심을 내비쳤다. “아무리 봐도 A를 하나도 닮지 않은 것 같다”는 것이었다. 두 달이나 일찍 낳은 아이임에도 미숙아 같지 않았고 B씨 또한 정상분만을 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A씨의 어머니가 강하게 의문을 제기하자 A씨도 ‘설마’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서서히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아내가 한국행을 서둘렀던 이유에 대해서도 석연치 않게 느끼게 됐다.
결국 A씨는 2003년 11월 아내 몰래 자신과 아이의 피를 채취해 서울 C대학교 의과대 E교수에게 친자확인 여부를 의뢰했다. 결과는 놀랍게도 아들이 자신과 친자관계가 아니라는 것.
A씨는 아내를 추궁했고 아내는 “무슨 소리냐. 절대 그럴 리가 없다”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결국 아내의 요청으로 한 달 뒤 서울 D대학교 의과대에서 A씨, 아내 B씨, 이들의 아들, 이렇게 세 명의 혈액을 채취해 유전자검사를 의뢰했다. 이번에는 아들이 이들 부부 양쪽 모두의 친자인 것으로 결과가 나왔다.
아들이 A씨의 친자인 것으로 밝혀지자 아내는 자신을 믿지 못한 A씨와는 살지 못하겠다며 집을 나갔다. 이후 A씨가 아내에게 잘못했다고 사죄하고 돌아올 것을 요청했지만 아내 B씨는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결국 이들은 별거 1년 만인 올해 1월 끝내 이혼하고 말았다.
이 와중에 A씨는 지난해 2월 ‘C대학교의 과실로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며 정신적 피해 보상금 3천만원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A씨측에서는 C대학의 유전자검사 결과가 잘못돼 이혼까지 이르게 된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러나 C대학교측은 ‘검사 과정에는 잘못이 없다’며 맞서고 있다.
법원에서는 양측의 합의를 권유했지만 C대학측에서 조정기일에 출석하지 않아 합의가 무산되었다. 결국 서로 다른 친자확인 검사 결과의 과실 여부는 법원의 판단에 맡겨지게 된 것이다.
한편 검사를 담당한 C대학교 의과대학의 E교수는 “소송에 대한 것이라면 학교측에서 알아서 하고 있다. 내가 특별히 할 말은 없다”며 언급을 회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