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일 경찰이 천안 사건 현장에서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경찰은 이 빠진 ‘퍼즐’을 다시 꿰맞출 수 있을까. | ||
강씨의 최초 진술에 따르면 사건은 피살된 Y씨(40)의 아내 K씨(39)가 사촌오빠인 김씨에게 “남편의 불륜 현장을 잡아달라”고 청부하면서 시작됐다. 김씨는 가까운 후배인 강씨와 함께 ‘불륜 확인’에 나섰고, Y씨를 죽일 경우 K씨로부터 더 많은 돈을 받아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김씨가 강씨에게 살인을 의뢰해 결국 Y씨를 죽이게 됐다는 것이다.
용의자 강씨의 자백과 정황증거 등을 토대로 Y씨 피살사건 수사는 이대로 종결되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 5일 영장실질심사에서 돌연 강씨가 경찰에서의 진술을 번복하고 자신의 ‘단독범행’을 주장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강씨는 영장실질심사에서 “경찰의 강압수사와 가혹행위로 인해 허위 진술을 했다”며 “청부살인은 없었고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강씨의 진술 번복에 따라 살인교사 혐의로 체포됐던 ‘공범’ 김씨 또한 석방된 상태. 구체적인 증거가 없는 데다 김씨가 줄곧 범행을 부인해왔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경찰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한 수사관계자는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강압수사를 하고 가혹행위를 하겠나. 강씨가 갑자기 진술을 번복한 이유를 도대체 모르겠다”며 “청부살인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보강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강씨와 풀려난 김씨의 ‘공범’ 관계뿐만 아니라 숨진 Y씨의 아내 K씨의 범행 개입 여부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K씨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연관성을 부인하고 있고, 김씨 또한 “결코 살인을 청부한 적이 없다”면서 결백을 주장하고 있어 수사 결과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과연 Y씨의 죽음 뒤에 숨겨져 있는 진실은 무엇일까. 사건을 다시 한번 뒤따라가보자.
이번 사건을 맡은 천안경찰서에 따르면 숨진 Y씨와 부인 K씨는 평소 불화가 심했다고 한다. K씨는 남편 Y씨가 바람을 피우고 폭력을 행사해 이혼하려 했지만 Y씨가 이를 거부하자 새로운 방법을 찾게 된다. 급기야 지난 4월 말 K씨는 사촌오빠인 김씨에게 “남편이 이혼하는 데 합의하지 않는다. 남편의 불륜 현장을 잡아달라”며 5백만원을 건넸다. 그뒤 김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후배 강씨에게 2백40만원을 건네며 불륜현장을 잡아줄 것을 재차 부탁했다.
강씨의 최초 진술에 따르면 그러던 지난 5월 초 김씨는 “Y씨를 죽이면 여동생에게 1억원을 받아 5천만원을 줄 테니 죽일 수 있겠나”라고 강씨에게 제의를 해왔다고 한다. 결국 돈에 현혹된 두 사람이 당시부터 Y씨를 살해할 것을 공모했다는 게 경찰의 시각이다.
그날 이후 강씨는 렌터카와 흉기 등 범행도구를 준비해 Y씨 주위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지난 5월17일 김씨는 Y씨를 한 식당으로 불러내 같이 술자리를 가진다. 김씨는 이날 4차에 걸쳐 Y씨와 함께 술을 마신 것으로 드러났다.
한 수사관계자는 “김씨와 Y씨는 평소에도 자주 만나 술을 마시곤 했다. 이날은 특히 김씨가 Y씨에게 많은 술을 권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 수사 결과 김씨는 Y씨와 술자리를 옮길 때마다 대기중인 강씨에게 연락해 위치를 알려주었던 것으로 밝혀졌다(김씨는 강씨와의 통화가 불륜 현장을 잡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경찰은 청부살인을 위해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보고 있다).
술자리가 모두 파한 다음날 새벽 3시께 김씨는 “Y씨가 혼자 귀가하고 있다”고 강씨에게 다시 소식을 알렸다. 그후 강씨는 Y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미리 목장갑을 끼고 회칼을 준비한 채 기다리고 있다가 Y씨를 발견하고 무참히 살해한 것이다.
경찰은 Y씨가 잔인하게 난자당한 점, Y씨의 신용카드, 현금 등 소지품이 그대로 있는 점으로 보아 원한관계에 의한 살인사건으로 추정하고 Y씨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벌이기 시작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범행 현장에는 결정적인 단서가 남아 있었다. Y씨의 가슴에 박혀 있던 흉기 등에서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DNA 샘플을 추출했던 것. 경찰은 주변 인물들의 알리바이와 통화기록 등을 토대로 용의자를 압축하고 DNA 대조작업을 벌인 끝에 지난 3일 강씨를 검거했다.
한 수사관계자는 “DNA 샘플 등 증거를 들이밀자 강씨는 모든 걸 포기한 듯 범행을 순순히 시인하고 털어놨다”고 전했다. 당시 공범으로 검거된 김씨는 자신의 혐의를 극구 부인하며 “살인을 청부한 것이 아니라 단지 불륜현장만 잡으라고 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강씨가 이틀 뒤 영장실질심사에서 돌연 최초 진술을 번복하고 “나 혼자의 단독 범행이었다”고 주장하면서 경찰이 맞춰논 사건의 퍼즐조각은 다시 흐트러진 상황이다. 당시 강씨는 “김씨가 살인을 지시하지 않았다. Y씨의 뒷조사를 하다 Y씨가 가족들을 괴롭히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나 그냥 겁만 주려고 하다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강씨의 진술 번복으로 법원은 “김씨의 범행 공모 여부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김씨의 영장을 기각한 상태. 경찰은 강씨의 이런 주장이 한마디로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수사관계자들은 “혹시나 김씨와 강씨가 입을 맞출까봐 따로 분리해 신문했다”면서 “강씨가 갑자기 진술을 번복한 배경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한 수사관은 “강씨가 Y씨를 얼마나 무참히 죽였는지 Y씨의 가슴을 보면 안다. 남의 가족을 괴롭힌다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그렇게 잔인하게 죽이는 사람이 어디 있나”라며 “강씨가 범행 직전까지 김씨와 통화한 것으로 보아 정황상 두 사람이 공모해 Y씨를 살해한 것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보강수사를 통해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할 계획이다. 또한 김씨와 강씨가 따로 보상을 약속받고 거짓 주장을 하는 것인지와 숨진 Y씨의 아내 K씨가 사건에 개입했는지 여부를 수사중이다.
과연 강씨의 단독범행일까. 아니면 김씨 등이 얽혀 있는 청부살인일까. 수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