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씨는 범행 장소 인근 부동산중개소에 찾아가 전셋집을 구하는 사람인 것처럼 위장해 중개인과 함께 매물을 둘러본 뒤 여성 혼자 있는 집으로 다시 찾아가 흉기로 위협하는 수법으로 연쇄 강도·강간 행각을 벌여온 혐의를 받고 있다. 수사관계자는 “동종 전과 3범인 장씨가 지난 8월6일 전주교도소에서 4년 만기출소한 후 ‘막가파’식으로 범행을 저질러왔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장씨는 출소한 지 한 달도 안된 지난 8월29일 수원에서 첫 범행을 저지른 후 대전(9월3일), 서울 회기동(9월5일), 쌍문동(9월11일)에서 강도·강간 행각을 이어가다 급기야 지난 13일 신림동에서 살인까지 저질렀다.
서울 청량리경찰서는 회기동 사건 이후 비슷한 수법의 전과자를 조회해 장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공개수배한 상태다. 한 수사관계자는 “회기동 사건의 피해자와 부동산 중개인에게 장씨의 사진을 보여주며 ‘범인의 인상착의가 장씨와 일치한다’라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수사를 진행하던 청량리경찰서는 장씨가 출소 후 자신의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설한 사실을 확인하고 장씨의 휴대전화 전파가 마지막으로 잡힌 전북 익산으로 수사관을 급파했다. 그러나 현지에서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던 사람은 장씨와 선후배 사이인 A씨. A씨는 “출소 후 장씨가 찾아와 ‘휴대전화 하나만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 내가 보증을 서서 만들어줬다. 그런데 일주일도 안돼 고장이 나서 나에게 A/S를 부탁했다”고 전했다.
그날 이후 경찰은 장씨에게서 연락이 올 것으로 생각하고 잠복에 들어갔다. 그러던 지난 13일 장씨의 휴대전화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뜻밖에도 신림동의 부동산 중개업자 B씨. B씨가 “오후에 집 보러 다시 온다고 하고선 왜 연락이 없냐”고 하자 전화를 받은 수사관은 장씨의 추가 범행 가능성을 직감하고 B씨에게 사건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리고 장씨가 신림동에서 다녀간 집에 일일이 연락해 ‘낯선 남자가 집 보러 왔다고 하더라도 절대 문을 열어주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때가 오후 3시20분께. 그러나 이날 장씨가 다녀간 집 가운데 안아무개씨(여·27)의 집만은 끝까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곧바로 현장으로 출동한 경찰은 안씨의 집에서 인기척이 없자 강제로 출입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미 안씨는 숨진 뒤였다. 안씨는 목과 복부를 흉기에 의해 수차례 찔린 채로 발견됐다. 신혼 주부인 안씨는 이날 집에서 갓 1백일이 지난 아기를 돌보고 있었다.
경찰 조사에서 부동산중개업자 B씨는 “장씨가 12시께 찾아와 ‘6천만~7천만원 정도의 전셋집을 구한다’고 해 몇 개 보여줬다”며 “그 중 ‘안씨의 집이 깨끗해서 맘에 든다. 오후에 아내와 함께 다시 오겠다’고 해서 장씨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라고 진술했다. 이때 장씨는 고장나서 수리를 맡긴 휴대전화 번호를 남겼다.
이날 장씨가 부동산중개 사무실에서 나간 시간이 오후 1시. 즉 오후 1시에서 안씨의 사체가 발견된 오후 3시30분 사이에 장씨는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장씨는 다섯 차례 범행을 저지르는 동안 그 수법도 대담해지고 흉포해졌다. 수원에서의 첫 범행은 흉기로 위협만 하고 금품만 빼앗았으나 차츰 흉기를 휘둘러 피해자에게 상처를 입혔고 신림동 사건에서는 결국 살인까지 저질렀다.
관악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신림동 사건의 경우 살인까지 저지를 만한 정황은 없어 보인다. 갓난아기 말고는 산후 조리중인 피해자 혼자 있었는데 살인을 한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당시 장씨가 안씨의 집에서 강탈한 돈은 20만원에 불과했다.
또한 청량리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회기동 사건에서는 범행 후 은행에서 현금을 찾으며 CCTV에 버젓이 얼굴을 드러내는 대범함까지 보였다”고 전했다. 장씨가 자포자기 상태에서 마음 내키는 대로 범행을 저지르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피해자와 부동산 중개업자 등에 따르면 장씨는 키 165cm~170cm에 보통 체격의 소유자로 긴 스포츠형 머리가 특징이다. 고향은 강원도지만 사투리는 쓰지 않고 말을 조금 더듬는 편.
한 수사관계자는 “장씨가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교도소 동기들의 도움을 받고 있을 가능성도 조사해보았다. 그러나 교도소에서 말썽도 많이 부려 가까이 지낸 사람이 거의 없었다. 철저히 혼자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훔친 돈이 다 떨어지면 다시 범행에 나설 가능성이 크므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대낮이라도 낯선 사람에게 절대 문을 열어줘선 안된다”고 당부했다.
23일 현재 5개 피해지역 경찰서와 서울경찰청이 공조수사를 펼치며 장씨의 행적을 추적중이다. 물론 그가 ‘떴다방’식 범행을 벌여온 만큼 전국 부동산중개업소에도 현상금 5백만원을 내건 그의 수배전단이 배포돼 있다.
“막바지에 몰린 장씨가 더 흉악한 범행을 저지를까봐 걱정이다. 제발 이제라도 마음을 되돌렸으면 한다.”
한 수사관계자가 독백처럼 내뱉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