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21일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
선고 시점 조절설
헌재는 지난 7월12일 신행정수도 특별법에 대한 헌법소원이 접수된 이후 결정 시점 등에 대해 언급을 피해왔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건 때처럼 정례 브리핑도 하지 않고 다만 법과 원칙에 따라 결정하겠다고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이범주 헌재 사무처장은 지난 18일 헌재 사무처에 대한 국감에서도 “사건의 중요성을 감안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헌법재판소법 규정에 따라 법정 심리기간인 1백80일 이전에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만 답변했다.
그러나 이번 헌법소원 사건의 주심 재판관인 이상경 재판관은 국감 바로 다음날인 19일 전종익 공보담당연구관을 통해 21일 선고를 하겠다는 뜻을 전격 발표했다.
외견상으로만 보면 헌재는 18일 저녁 때쯤에서야 신행정수도 특별법에 대한 결론을 내렸고,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 바로 다음날인 19일 즉각 선고일정을 밝혔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말로 헌재가 18일쯤에서야 결론을 내렸을까.
그러나 헌재 주변에서는 18일보다 훨씬 이전에 위헌쪽으로 방향이 잡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헌재에 대한 국감 전에 선고를 하게 되면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여야 의원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을 것이 예상돼 국감 이후로 선고를 미루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이것이 시중에 떠도는 선고 시점 조절설이다.
한 법조인은 “90여 쪽에 달하는 헌재 결정문을 작성하고, 재판관들이 결정문을 검토하는 시간을 감안하면 결론은 헌재 국감 이전에 결론이 났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 같은 설을 뒷받침했다.
그렇다면 헌재가 선고 시점을 국감 바로 다음날 발표한 이유는 뭘까. 국감 바로 다음날 선고 시점을 발표하면 국감을 피하려했다는 비난을 받을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발언이 작용을 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시는 헌재 국감이 있던 지난 18일 건교위로부터 국감을 받았다. 이때 이명박 시장은 “신행정수도 특별법에 대해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리더라도 대다수 국민이 반대하면 수도이전에 계속 반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일각에서는 헌재가 이 시장의 발언처럼 갈수록 커지는 정부와 서울시와의 갈등을 하루빨리 봉합하기 위해서는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더라도 헌재가 국감 다음날 선고 일정을 전격 발표한 것 아니냐고 해석하고 있다.
위헌 아이디어 차용설
헌재의 위헌 결정을 한 데는 ‘불문헌법’이라는 학계에서조차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던 다소 생소한 이론이 힘을 발휘했다. 헌재는 결정문을 통해 “서울이 수도라는 점은 헌법상 명문의 조항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선왕조 이래 6백여 년간 오랜 관습에 의해 형성된 관행이므로 관습헌법으로 성립된 불문헌법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수도는 서울이라는 관습헌법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른 헌법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정부는 헌법 개정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한 만큼 위헌”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같은 헌재의 결정문의 취지는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발간하는 <시민과 변호사> 8월호에 기고한 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의 ‘신행정수도 이전 특별조치법은 위헌이다’는 제목의 기고문과 너무나 흡사하다.
최 교수는 불문헌법을 나름대로 체계화한, 헌법을 전공한 교수다. 최 교수는 이 기고문을 통해 “헌법에 명문 규정이 있느냐에 상관없이 헌법의 핵심부에 해당하는 사항이 있고 그렇지 아니한 사항이 있다. 주권이나 영토나 국민 등 헌법의 핵심에 관한 사항이 그러하다. 지난 6세기 동안 서울이 우리나라에서 차지하여 온 중심적, 정신적 위치 때문에 즉 우리나라 정체성의 중심부에 존재하기 때문에 서울의 지위는 헌법적 사항이지 단순한 입법사항으로 처리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또 기고문에서 “우리나라 헌법에 서울을 수도로 하는 명문규정을 두지 아니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항이었기 때문이다. 상해임시정부를 대표하고 통일정부를 염원하였던 김구 선생이 서울로 귀환하셨던 것은 서울이 가지는 나라의 전통적 상징성(정체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헌재의 결정문을 이루고 있는 위헌의 논리구조와 사실상 같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일부에서는 헌재가 위헌의 논거를 최 교수의 주장에서 얻은 것 아니냐고 보고 있다. 당사자인 최 교수도 헌재 결정 직후 “내가 <시민과 변호사>에 기고한 기고문에서 아이디어를 빌려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번 사건의 주심 재판관인 이상경 재판관은 “국내외 자료를 모두 검토하고 수없이 논의하고 토론했다”고 말해 외부 자료를 참고했음을 시사했다.
헌재 결정 사전 유출설
헌재 결정 전날인 20일 정치권과 법조계는 술렁거렸다. 헌재가 신행정수도 특별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소문이 조금씩 퍼지면서부터다. 청와대도 헌재 결정 하루 전부터 청와대 내 율사출신 관계비서관 등이 여러 루트를 통해 헌재의 결정에 대한 예측 정보를 얻어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정보원도 헌재 결정에 대한 상당히 구체적인 정보를 청와대에 직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부 여권의 관계자들은 “지난 대통령 탄핵사건에서도 헌재가 대통령을 탄핵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지만 사실과 다르지 않았느냐”고 정보의 신빙성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판단했다.
그러나 20일 밤부터는 정보가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급기야 선고 당일은 21일 오전 모 언론사에는 헌재가 8 대 1로 위헌 결정을 했다는 정보보고가 돌았다. 또 다른 언론사는 위헌이라는 정보를 사전에 입수, 신행정수도 건설 예정지였던 공주, 연기지역에 취재기자를 사전에 급파하기도 했다. 선고 당일날 정부측 대리인단이 헌재에 출석하지 않은 것도 위헌 결정을 미리 알았기 때문이 아니냐는 분석까지 제기됐다.
헌재측은 이 같은 사전유출설에 대해 펄쩍 뛰고 있지만 서초동에 떠돌았던 위헌 결정에 대한 사전 정보가 워낙 구체적이어서 법조인들은 사전유출설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이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