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이 나오기 하루 전인 20일 저녁 늦은 시간. 청와대에는 두 개의 정보가 보고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나는 국가정보원에서 올라온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보고였다. 두 개의 보고는 모두 헌재의 ‘위헌’ 결정에 대한 것으로 내용은 비슷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두 개의 보고서가 수치상의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내용은 대체로 일치했다. 1(기각) 대 2(각하) 대 6(인용) 정도의 내용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헌재 발표 일주일 전쯤에 보고된 정보는 ‘부분적 위헌’으로 판결이 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청와대에서는 이에 따라 대책을 숙의한 끝에 ‘국민투표를 받아들이는 내용의 대통령 발표’를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8 대 1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결과가 나왔고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관계자들의 증언이 다소 차이는 있지만 어쨌건 청와대는 실제와는 다른 보고를 그것도 판결이 임박해서야 받은 꼴이 됐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몇몇 언론은 22일 ‘사전에 위헌 판결 결과를 예측하지 못해 우왕좌왕한 청와대의 분위기’를 꼬집는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20일 저녁 보고를 받은 이후 노무현 대통령이 늦게까지 잠을 못 이룬 채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긴급대책회의를 갖는 등 분주히 움직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음날 오후 2시 헌재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 청와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긴 하룻밤를 보내야 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가 바로 전날에서야 ‘위헌’ 결정을 알게 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충분히 대책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들 ‘설마 위헌 결과 나오겠나’라고 생각했는데 최악의 결과가 나와 많이들 당황했다”고 전했다.
지난 7월 헌법소원이 청구된 이후 정치권에서는 “설마 위헌으로 결정나겠나”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수치적으로는 ‘4(인용)대 5(기각 및 각하) 정도’를 기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지난 3주간 국정감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러한 판단은 ‘위헌’ 판결을 기대해 온 한나라당측 관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청와대측의 ‘사전인지 실패’와 관련, 정치권 일각에서는 청와대 일부 인사의 ‘책임설’도 흘러 나오고 있다. “헌재의 동향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여 대응할 시간을 놓친 것에 대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헌법재판관 개개인들의 의견을 직접 들어야 하는 헌재판결의 특성상 사전인지가 어려웠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너무 안일하게 대응하였다”는 비판은 여전히 남는다.
이런 와중에 가장 눈총을 받고 있는 곳은 정보수집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사전에 인지를 했다고는 해도 불과 며칠 전이었고 최종 결과와도 상당한 차이가 있는 정보였다. 안일하게 대처한 것과 관련, 박정규 민정수석이나 몇몇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의 책임이 따라야 할 것으로 본다. 자신들이 알아서 진퇴를 결정할 수도 있고…”라고 말해 이런 전망에 힘을 실어 주었다.
헌재의 판결이 나온 이후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언론과의 사적인 자리에서 “헌재 결정은 국회의 입법권 침해는 물론이고 국민의 헌법제정권을 침해한 것이다. 헌재가 국민을 무시하고 헌법 조문을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다”고 헌재를 강하게 비판했다. 또 “대통령이 국민투표를 제안할 경우 다시 누군가가 헌재에 국민투표 중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헌법소원을 낼 것이다. 헌재가 ‘뫼비우스의 띠’같은 걸 만들어 놓았다. 국민투표를 실시하려고 하면 다시 헌재로 가게 돼 있다”며 정부의 난감한 처지를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일단 헌재 결정의 문제점을 국민들에게 강하게 부각하면서 크게 가야 한다. 헌재를 정치적으로 초토화해야 한다는 말이다”며 “현재 청와대나 대통령은 외부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우왕좌왕하는 상황은 아니다. 대통령이 어떻게 결정할지는 알 수 없으나 대통령께서 매우 냉정하게 이번 사태를 고민하고 계신다. 대통령직을 그만두겠다고 흥분하고, 참모들이 말리고 하는, 그런 상황은 절대 아니다. 차분하게 대응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