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조사가 본격화되자 이 여성은 돌연 자취를 감췄다. 경찰은 이 여성이 애초부터 위자료를 노리고 이혼을 유도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웃의 불행을 부채질한 것도 모자라 위자료까지 꿀꺽 삼킨 이 ‘위험한 이웃’의 황당한 사기 행각을 추적했다.
김아무개씨(여·38)와 한아무개씨(여·44)는 이웃 사촌으로 평소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다. 두 여성의 남편은 모두 한센병 음성환자로 과거 인천 부평에 위치한 한센환자촌 내 양계농가에서 살았다. 두 여성의 친분은 이때부터 깊어졌고 서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 이후에도 서로 고민을 털어놓을 만큼 계속 친분을 유지했다.
그러던 어느날 한씨는 김씨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당신 남편의 간통 현장을 알아냈다”는 것이었다. 놀란 한씨는 김씨와 함께 자신의 남편이 ‘애용’한다는 간통 현장을 덮쳤다. 그 결과 과연 김씨의 말대로 남편이 그곳에 낯선 여인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씨는 충격을 받아 부들부들 떨고 있는 한씨에게 “차라리 이혼해라. 시댁에 재산이 좀 있으니까 지금 이혼하면 5억은 받아 낼 수 있을 것”이라며 이혼을 적극 종용했다.
분을 삭이지 못해 결국 지난해 6월 이혼 수속을 밟게 된 한씨는 김씨의 여러 가지 ‘유익한 조언’ 덕분에 전 남편으로부터 이혼 위자료로 2억4천만원을 받아낼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친절한 이웃’이었던 김씨는 한씨가 위자료를 받아내자 돌변, 본격적으로 마수의 손을 뻗치기 시작했다. 이혼한 지 한 달여가 지나면서부터였다.
한씨는 이혼 위자료로 2억4천만원의 돈을 받아냈지만 이혼 후 아이들의 양육을 책임지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었다. 이혼한 지 한 달이 다 되도록 새 집을 구하지 못해 아이들을 데려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한씨의 전 남편은 “아이들의 양육을 책임지지 않고 있으니 위자료 중 양육비 부분을 다시 반환해 달라”며 “양육비는 아이들을 데려가면 그때 주겠다. 만약 제안을 거부하면 소송을 내서 양육비에 해당하는 위자료를 되찾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깜짝 놀란 한씨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당장 아무 집이나 구해 들어갈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양육비에 해당하는 돈을 전 남편에게 돌려준다면 이를 다시 되찾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자칫 아이들과 돈을 모두 잃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한씨를 괴롭혔던 것이다. 한씨는 ‘친절한 이웃’ 김씨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한씨의 말을 들은 김씨는 대책이 있다며 자신의 계략을 말했다. 그것은 위자료로 받은 돈 2억4천만원을 모두 자신에게 맡기고 전 남편에게 돈이 없어서 못주겠다고 버티라는 것이었다.
김씨의 제안을 들은 한씨는 처음에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거부했지만 김씨는 끈질기게 한씨를 설득했고, 이 과정에서 거짓말까지 보태 꼬드겼다. 김씨는 “나를 못 믿는 것이냐. 이혼하고 위자료를 온전히 다 받아 낼 수 있었던 것도 다 내 덕분”이라며 “은행에 맡겨봐야 계좌추적하면 다 탄로날테니 나한테 맡겨두고 있는 게 제일 안전하다”고 강압적으로 계속 한씨를 설득했다. 또 그녀는 “만약 당신의 전 남편이 소송이라도 걸 경우에는 꼼짝없이 돈도 빼앗긴다”며 “법적으로 알아보니 당신은 매우 불리하다”고 겁을 줬다.
한씨는 내심 불안했지만 결국 김씨를 믿기로 하고 거액의 돈을 건네고 말았다. 그러나 거액의 돈을 손에 쥐게 된 김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 돈을 마구 탕진하기 시작했다. 그는 보관해 주겠다던 위자료로 고급 승용차를 구입하는가 하면 개인 대출금을 갚는 것도 모자라 여러 장의 신용카드로 각종 물품을 구입, 2천만원을 순식간에 날리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김씨는 자신이 몰래 만나던 내연남에게도 돈을 물 쓰듯 쓴 것으로 드러났다. 간통 현장을 적발해 이웃 부부를 이혼하도록 종요한 그녀도 알고 보니 간통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한씨는 시간이 지나면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김씨가 어디서 났는지 모를 돈을 물 쓰듯 쓰고 다닌다는 소문이 들려왔던 것이다. 이에 한씨는 보관하고 있는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으나 김씨는 차일피일 미루며 주지 않았다. 한씨는 뒤늦게 김씨가 자신의 돈을 모조리 탕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이를 경찰에 고발했다.
경찰은 “현재 김씨는 보관하고 있던 돈을 모조리 탕진해 가지고 있는 돈이 거의 없다”며 “2억4천만원 중에 2억1천만원을 쓰고 나머지 돈도 정확하게 얼마나 남았는지 모른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번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인천 동부경찰서 지능1팀은 김씨가 위자료를 챙길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한씨 부부를 파탄에 이르게 한 것은 아닌지 여부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경찰 조사에서 김씨는 ‘한씨 전 남편의 간통 장소를 어떻게 알아냈는가’라는 질문에 “주변사람들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됐다”고만 설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를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한씨가 이혼하기 전에도 김씨는 한씨의 전 남편 뒤를 캐고 다녔던 사실로 미루어 김씨가 한씨의 전 남편에 대해 별도의 ‘안테나’를 계속 세우고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씨는 경찰 조사가 막바지에 이르러 사기횡령혐의가 인정돼 구속영장이 청구되기 직전 갑자기 자취를 감춰버렸다. 경찰은 김씨의 뒤를 쫓고 있으나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상태다.
윤지환 프리랜서 tangohunt@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