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취재 결과 이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동기일 뿐 사건의 내막은 따로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살다시피 한 아들의 가족에 대한 증오심이 복수극의 형태로 나타났던 것이다. 아들은 범행 당시 “나한테 해준 것이 뭐가 있느냐. 나를 한번이라도 가족으로 생각한 적이 있느냐”며 어머니에게 극도의 적개심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끔찍한 살인극을 몰고 온 이들의 불행한 가족사와 범행 전모를 재구성했다.
지난 10일 낮 김 아무개 씨(26)는 친구들과 함께 어머니 이 아무개 씨(46)와 누나 그리고 여동생이 살고 있는 경기도 수원시 영화동 집에 침입했다. 마침 집에는 어머니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앞서 김 씨는 자신에게 돈을 빌려 준 친구 이 아무개 씨(남·26)와 박 아무개 씨(남·26)에게 “돈을 갚을 수 있게 도와 달라”며 범행에 끌어 들였다. 이들 친구들은 어머니를 상대로 한 김 씨의 계획을 듣고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말에 곧 동의했다. 사건을 수사한 수원중부경찰서 관계자는 “아무리 전과자라지만 친구의 어머니를 상대로 한 범행에 어떻게 가담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이들의 목표는 오로지 돈이었을 뿐 친구니 뭐니 하는 것은 애초 안중에도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 범행 일당은 4인조였다. 그 가운데 한 명은 김 씨의 10대 여자친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어머니를 살해한 후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빚을 갚을 요량이었던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
김 씨는 어머니를 상대로 사전에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다. 그러나 막상 범행을 저지르려 하자 한 편에 주저하는 마음이 생겨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지난 19일 실시된 현장검증에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당시 김 씨는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범행을 저지르기 힘들다”고 말했고 이에 친구 이 씨는 김 씨에게 소주를 사주며 범행을 독려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씨는 범행직전 소주 1병과 팩소주 1팩을 마셨다.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평소 어머니가 자신을 무시하며 나무라는 데 반감을 가져오다 범행 당일 어머니로부터 또 “처신을 어떻게 하고 다니느냐. 똑바로 살아라”는 말을 듣자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어머니를 살해했다고 답했다.
김 씨 일당의 패륜 행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 일당은 추가 범행을 위해 여동생과 누나 등 다른 가족들의 귀가를 기다렸다. 이때 어머니가 숨진 방에서 8시간 동안 태연히 TV를 시청하며 라면까지 끓여먹는 엽기적인 행각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밤 11시 30분경 여동생(25)이 귀가하자 김씨는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위협, 현금 35만 원과 현금카드 3장을 빼앗은 뒤 인근 편의점에서 71만 원을 인출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공범 이 씨는 돈을 손에 넣은 뒤 김 양을 성폭행했는데, 당시 김 씨는 이를 수수방관했던 것으로 드러나 경찰 관계자들을 경악케 했다. 공범 이 씨는 더구나 범행 중 회사에 다녀와 알리바이를 조작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경찰 조사에서 김 씨는 “어릴 적부터 나를 자꾸만 나무라는 어머니가 싫었다”며 어머니에 대한 증오심을 드러냈다. 그는 “카드빚 400만 원을 갚아달라고 요구했는데 어머니가 이를 거절하며 야단만 쳤다”고 말했다. 대개의 패륜 범죄가 그렇듯이 이번 사건의 원인 역시 심각한 가정 해체에 그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김 씨의 가정은 부모가 자주 부부싸움을 하는 등 가족 관계가 원만치 못했다. 김 씨는 누나와 여동생, 그리고 현재 군 복무 중인 남동생의 4남매 중 둘째였다. 원만치 못한 가정환경 탓에 가족 내에 말썽이 잦았다. 이 가운데 특히 김 씨는 가장 말썽을 많이 부려 어머니로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꾸중을 들어야했다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오랫동안 함께 살았다. 어머니가 말썽만 부리는 아들을 도저히 감당하지 못해 할머니에게 자주 보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와 할머니 사이를 오가던 김 씨는 자신을 꾸짖기만 하는 어머니보다 항상 관대하게 모든 것을 받아주는 할머니에게 더 정을 느꼈고 실제로 더 많이 의존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보다 할머니와 지내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고 이런 거리감이 결국 모자간 감정의 골을 점점 깊게 만드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김 씨의 반항심은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더 심해졌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친 김 씨의 반항기는 이미 할머니가 제어할 수 있는 선도 훨씬 넘어서고 있었다. 김 씨의 삐뚤어진 행동은 형제들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했다. 형제들 역시 질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어둠의 세계를 헤매는 김 씨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아버지와의 사이도 극도로 나빴다. 한마디로 김 씨는 가족들 사이에서 ‘버림받은 자식’이었던 셈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세상을 뜨자 혼자가 된 김 씨는 집으로 다시 들어가는 대신 본격적으로 바깥으로 나돌기 시작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이때부터 일정한 직업도 없이 여관 등지를 떠돌아다니며 생활했다.
김 씨는 가끔씩 가족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가족들은 김 씨가 돈을 줘도 모두 유흥비로 탕진할 것이라고 보고 김 씨의 도움을 거절했고 이런 사정이 김 씨의 반항심을 더욱 부추겼다. 5년 전 부모가 이혼하면서 가정의 해체는 더 본격화됐다.
지난 2월 그나마 다니던 직장마저 그만둔 김 씨는 유흥비 등을 마련하기 위해 이리저리 끌어 쓴 빚 때문에 400만 원의 카드빚을 짊어지게 됐다. 그는 자신이 이같이 비참한 신세로 전락한 것은 모두 가족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마침내 끔찍한 범행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사건이 발생한 후 경찰은 평소 김 씨가 게임중독에 빠져있었음을 알아내고 김 씨가 게임에 접속할 것으로 판단, 수원 오산 안양 등 일대의 PC방을 대상으로 잠복 및 탐문수사를 벌인 끝에 김 씨를 체포했다.
윤지환 프리랜서 tangohun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