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파가 잡지, 시계, 양초 등에 교묘하게 숨겨 중국에서 밀수한 마약들. | ||
이들은 마약을 끊으려 애쓰는 복용 전과자나 그 주변 사람들을 대상으로 마약을 팔아 온 것으로 알려져 경찰을 놀라게 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조직으로부터 마약을 지속적으로 구매해온 ‘고객’들 중 고위층 자제들이나 부유층 가정주부들이 상당수 끼어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마약 복용 혐의로 구속된 한 40대 가장이 “부자들이나 유명 연예인만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자신의 아내와 딸에게 마약을 억지로 복용케 했다는 기사는 꾸며낸 말이 아니었다. 이 황당한 가장의 말처럼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마치 하나의 특권인 양 마약을 복용했던 것이다.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는 지난 9일 중국에서 100억 원대의 히로뽕을 밀반입한 뒤 이를 전국에 유통시킨 거대 마약조직을 일망타진, 이 조직의 두목인 이 아무개 씨(39) 등 8명을 구속하고 알선책 김 아무개 씨(37)는 불구속입건, 판매책 2명은 수배했다고 밝혔다. 또 경찰은 마약을 상습적으로 투약한 혐의로 육 아무개 씨(여·37) 등 4명을 구속하고 김 아무개 씨(43) 등 10명을 불구속입건, 1명을 수배했다.
그러나 정작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마약 조직이 아니라 마약 복용자 15명의 면면이었다. 이 가운데는 전직 검찰총장과 대기업 전 부회장, 전 도지사 등 유력 인사의 자제들과 부유층 가정주부 등이 포함돼 있으며 대부분 상습적으로 마약을 투약해온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 등은 작년 5월부터 올해 3월까지 중국에서 항공우편이나 국제우편, 보따리상을 통해 필로폰 3kg(10만 명 투약분, 시가 100억 원 상당)을 밀반입한 뒤 서울, 부산, 경기 등 전국 조직을 통해 0.03g당 10만 원을 받고 유통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이들이 기존 투약자와 부녀자 등을 상대로 10만 원에서 많게는 200만 원씩을 받고 필로폰을 팔았다고 밝혔다.
이번에 적발된 이○○파는 지난 2002년 2월 두목 이 씨의 구속으로 조직이 와해되는 듯했으나 3년 뒤인 지난해 5월 이 씨가 출소하면서 다시 재건됐다. 출소하자마자 곧바로 ‘본업’에 복귀한 이 씨는 남아 있던 기존 조직원 2명에 지역별 중간 판매책 4명을 추가 영입해 조직을 정비했다.
이 씨는 비교적 가격이 싸고 밀반입이 용이한 중국 필로폰 시장으로 눈길을 돌렸다. 이 조직의 밀반입책 도 아무개 씨는 중국 현지에 거주하는 윤 아무개 씨를 통해 ‘물건’을 몰래 조금씩 들여오기 시작했다.
경찰조사 결과 조직의 운반책들은 필로폰을 잡지책 등에 5~10g 단위로 얇게 코팅하여 붙인 뒤 공항검색대에서 투시를 하지 못하도록 그 위에 먹지나 알루미늄 호일을 덮어 감추는 수법을 쓴 것으로 드러났다. 공항 관계자에 따르면 이 수법을 쓸 경우 엑스레이가 제대로 투시되지 않아 내용물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다.
또 필로폰을 시계케이스, 복대, 스타킹 등에 숨기거나 탐지견을 피하기 위해 사탕, 청심환처럼 포장하는 수법으로 공항이나 항만 검색대를 손쉽게 통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는 선물용 양초 아래쪽 공간에 필로폰을 담은 뒤 그 위에 다시 촛농을 부어 입구를 봉하는 방법을 쓰기도 했다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이 마약을 운반해 온 수법은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지만 한 번에 운반해 오는 양이 소량인데다 방심하기 쉬운 허점을 교묘히 이용했기 때문에 삼엄한 감시를 뚫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파는 물건을 들여오기 위해 다방면으로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한 것으로 보여 현재 추가적으로 공범 등이 더 있는지 계속 수사하고 있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경찰은 지난 1월 6일 서울 여의도 인근의 한 커피숍에서 정 아무개 씨(50)에게 300여만 원 상당의 마약 1g을 판매하기도 했다고 밝혀 마약이 우리 주변 곳곳에서 거래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 관심을 끄는 대목은 그동안 이들로부터 필로폰을 사서 투약해오다 적발된 사람들의 면면이다. 경찰은 “적발된 여성들은 대부분 부유층 주부들이고, 이들 가운데는 이미 마약전과가 있는 이도 있다”고 밝혔다. 이 ‘위기의 주부들’은 주로 친구 등 주변인들의 권유로 마약을 시작한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드러났다.
또 전 도지사 아들 박 아무개 씨(47·구속)와 모 대기업 전 부회장 아들 안 아무개 씨(47·불구속), 전 검찰총장 아들 박 아무개 씨(41·수배) 등 세 명은 예전부터 서로 알고 지내며 함께 마약을 투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전 검찰총장의 아들 박 씨는 종적을 감춰 경찰이 뒤를 쫓고 있는 상태다.
특히 놀라운 사실은 전 도지사 아들 박 씨와 안 씨는 이미 마약 전과가 5~9범이나 된다는 점이다. 경찰에 따르면 전 도지사 아들 박 씨는 10년 전부터 마약에 손댔으며 두 달간 경찰을 피해 시골의 폐교와 지인들의 집을 돌며 도망 다니다가 붙잡혔고, 15년간 상습투약해온 안 씨는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자 곧바로 자수했다고 한다. 경찰은 이들 세 사람이 주로 집에서 마약을 투약했지만 알선책의 제안에 따라 펜션 등지에 모여 집단으로 마약 투약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은 부유하지만 일정한 직장도 없고 가정생활도 원만하지 못했다”며 “이들은 교도소에서 출소한 뒤 마약을 끊으려 했으나 판매책의 집요한 유혹에 넘어가 마약을 다시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 이○○파 판매책 김 씨는 교도소를 찾아다니며 마약사범을 면회 온 여성들에게 의도적으로 접근, “수사기관에서 일하기 때문에 내가 주는 마약은 믿을 수 있다”고 속여 필로폰을 공짜로 ‘시식’하게 한 뒤 본격적으로 판매하기도 했다. 이렇게 ‘약맛’을 본 이 여성들은 다시 주변인들에게 김 씨를 소개해 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7~8명의 마약투약 용의자를 추가로 수사 중”이라며 “대부분이 여성들인데, 이들은 주로 마약사범들의 애인이거나 매우 가까운 사이다”라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파의 조직원들은 마약전과가 있는 사람들을 조사해 집중적으로 이들을 찾아다니며 애써 마약을 끊고자 애쓰는 이들을 다시 유혹, 고객으로 확보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은 주로 수소문을 통해 마약전과자나 투약자들을 찾아다닌 것 같다”며 “고객 관리 차원에서 이들이 별도의 고객명부를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아직 그런 것은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윤지환 프리랜서 tangohun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