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 경리부장 납치살해사건의 범인이 뒤늦게 밝힌 2005년 5월 서울 송파구 주부살해사건의 현장 사진. 이 외에도 7건의 살인을 더 저질렀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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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대체 왜…’. 형사들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김 씨는 납치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돼 1심에 이어 지난해 12월 22일 열린 항소심에서도 공범인 라 아무개 씨(43)와 함께 각각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상태. 조만간 내려질 대법원의 확정 판결만 기다리는 처지였다.
김 씨의 접견 요청에 대전교도소를 찾은 담당 형사는 김 씨로부터 “모든 것을 사실대로 밝히고 싶다”는 뜻밖의 말을 듣게 된다. 뭔가 망설이는 듯한 김 씨를 설득한 끝에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얘기는 가히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기소된 살인사건 이외에도 7건의 살인을 추가로 저질렀으며 이미 공범으로 구속된 라 씨 말고도 친형과 친구가 추가 범행에 가담했다.”
형사들이 그날부터 22일간 교도소를 매일 드나들며 김 씨를 조사한 결과 엽기적인 살인극의 실체가 하나씩 드러나게 된다. 자칫 세월 속에 파묻힐 뻔했던 연쇄 살인사건의 전모를 추적했다.
김 씨(상해치사 등 전과 5범)와 라 씨(폭력 등 전과 5범)가 벌인 살인행각의 시작은 지난 2005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학교 동창인 두 사람은 타지에서 떨어져 지내던 중 2004년 9월경 우연히 재회하게 된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회포를 풀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공사판을 전전하며 막막한 생활을 하고 있던 김 씨는 옛 친구에게 자신의 처지를 털어놨다.
1990년대 서울 강남에서 대형 횟집을 운영하기도 했던 김 씨는 당시 잇따른 사업 실패로 좀처럼 재기하지 못한 채 절망의 나날을 보내던 상태였다. 특히 한 해 전인 2003년은 김 씨에게 악몽과도 같은 해였다. 교통사고로 받은 보상금 1억 원을 경륜으로 몽땅 날려버렸는가 하면 돈 문제로 이혼까지 하는 등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렇다 할 기술도 없고 전과까지 있던 김 씨가 발을 붙일 만한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친구의 얘기를 듣던 라 씨는 “마땅히 할 일이 없으면 나랑 같이 돌을 납품하는 업체에서 일을 해보자”고 권유했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잠시 함께 직장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얼마 뒤 회사의 경영악화로 인해 월급조차 받지 못하게 되자 결국 이들은 직장을 그만두고 만다.
세상에 대한 한탄과 술로 소일하던 두 사람이 결국 눈길을 돌린 것은 범죄였다. ‘크게 한탕해보자’며 손을 맞잡은 김 씨와 나 씨는 본격적인 범행모의에 들어갔다.
처음에 이들은 자신들의 연고지가 있는 충남지역을 범행 무대로 한정했다. 어느 정도 지리도 알고 나름대로 정보도 얻을 수 있는 지역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이후 이력이 붙으면 차츰 전국적으로 무대를 넓혀가자는 식이었다.
두 사람은 범행에 앞서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가령 ‘충남의 소문난 갑부 ○○○’을 범행대상으로 정하게 되면 이들은 곧바로 미행부터 시작했다. 범행대상을 며칠 동안 따라다니며 동선을 체크하고 스케줄을 일일이 파악했던 것. 이들은 이렇게 파악한 정보를 토대로 어떤 방식으로 범행을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범죄시나리오까지 짰다고 한다. 택시기사를 납치해 돈과 택시를 빼앗고 살해한 것이나 가스검침원을 가장한 범행, 외제 승용차 주인에게 시비를 걸어 접근한 것, 일부러 차를 들이받아 대상자를 차 밖으로 유도한 것 등 이들의 실제 범행수법들은 모두 치밀한 사전 계획에 따라 실행된 것들이었다.
이들은 범행을 위해 항상 흉기와 플라스틱 끈을 준비해 다니는 등 철저한 준비를 했다. 또 이들이 대상자를 흉기로 위협해 제압하고 납치·살해하는 과정은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치밀한 계획에 비해 ‘성과’는 너무도 형편없었다. ‘돈이 많다더라’는 뜬소문만 믿고 겉보기에만 그럴싸한 범행대상을 찾은 것이 이들의 가장 큰 ‘실수’였다.
이들의 첫 범행은 2005년 2월 15일 충남 당진에서 시작됐다. 김 씨 등은 평소 눈여겨보던 개사육장 주인 김 아무개 씨(53)를 유인한 뒤 머리를 멍키스패너로 내리쳐 살해했다. 그러나 부유해 보이던 사육장 주인이 지니고 있던 돈은 고작 30만 원에 불과했다.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액수에 실망한 이들은 사건 열흘 후 또 다른 대상을 물색했다. 두 번째 범행대상은 천안에 거주하는 외제차 소유자 이 아무개 씨(34). 며칠간 그를 미행해 동선을 파악한 이들은 2월 25일 외출하는 이 씨의 차를 따라갔다. 접촉 사고를 위장해 이 씨를 제압하는 데 성공한 이들은 준비한 플라스틱 끈으로 이 씨의 손발을 묶고 흉기로 온몸을 찔러 잔인하게 살해했다. 하지만 이 씨로부터 빼앗은 돈은 불과 4만 원.
‘큰 거 한탕’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들은 열흘 후 또다시 범행을 시도했다. 김 씨 등은 3월 5일 10시 30분경 충북 청원의 한 주유소 앞 노상에서 최 아무개 씨(34)의 외제차를 고의로 추돌했다. 이들은 차에서 내린 최 씨를 흉기로 위협, 케이블 선으로 묶고 은행카드를 빼앗은 뒤 현금을 인출하려 했다. 그러나 계좌의 잔액은 없었고 결국 이들은 최 씨를 목졸라 살해하고 말았다. 20일 사이에 세 사람을 살해했지만 이들이 손에 쥔 돈은 34만 원에 불과했다.
거듭되는 범행에도 ‘벌이’가 탐탁지 않자 이들은 자신들의 능력에 대한 적잖은 갈등을 겪게 된다. 결국 그해 4월부터 김 씨는 친형(56)을 범행에 끌어들인다. 김 씨의 형 역시 사업실패와 이혼을 겪은 김 씨와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김 씨의 형은 한때 가정을 이뤄 두 명의 딸을 두었으나 형편이 어려워 큰딸은 입양 보내고 둘째딸이 네 살 되던 때 이혼을 하는 등 순탄치 않은 생활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렇다 할 수입도 없던 처지였던 김 씨의 형은 ‘우리도 한번 제대로 살아봐야 하지 않겠냐’는 동생의 제안을 이내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러자 이번엔 라 씨가 공사장에서 알게 된 이 아무개 씨(53)를 공범으로 끌어들였다. 4인조로 팀을 재정비한 이들은 또다시 역할을 나누고 범죄 시나리오를 짜는 등 본격적인 범행 준비에 들어갔다.
이들은 그동안 활동했던 충청도 지역을 벗어나 경기도와 서울로 범행무대를 옮기는 동시에 범행대상을 택시기사와 고급빌라에 사는 사람으로 확대했다. 한 달여 뒤인 4월 27일 이들은 경기 남양주에서 손님을 가장해 개인택시에 올라탄 후 기사 김 아무개 씨(57)의 머리를 20㎏짜리 돌로 마구 내리쳐 살해하고 차량과 20만 원을 빼앗았다. 또 며칠 뒤에는 한 모범택시 기사를 유인해 역시 동일한 수법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5월 한 달 동안 이들이 살해한 사람만 해도 3명. 하지만 이들의 범행에는 브레이크가 없었다. 전기검침원을 사칭해 가정집에 들어가 집주인을 살해하는가 하면 슈퍼마켓 주인을 살해하고 외제차 주인에게 ‘차가 싸구려 같다’고 시비를 걸고 죽이는 등 거침없는 살인행각을 이어갔다. 이런 식으로 김 씨 등 4인조가 벌인 범죄는 강도살인 7건을 비롯해 인질강도 1건, 강도상해 2건, 강도미수 1건, 특수절도 1건 등 무려 18건에 달했다.
경찰 조사 결과 김 씨 등은 2005년 12월 순천에서 인질납치극을 벌여 2500만 원이라는 목돈을 만졌던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 경우를 제외하고는 피해자들을 무조건 즉시 살해하는 잔인함을 보였다. 살해 이유는 자신을 무시하는 말투를 썼다거나 범행이 발각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10개월 동안 이들에게 살해된 사람은 무려 9명. 하지만 이들이 사람 9명을 죽이고 뺏은 돈은 인질납치로 번 돈 2500만 원을 제외하면 1000만 원 정도에 불과했다.
천안서 강력3팀 형사들은 대전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김 씨와 라 씨로부터 이 같은 추가범행 12건에 대한 진술과 관련 증거자료를 확보한 뒤 김 씨의 친형 등 나머지 공범 2명에 대한 검거작전에 돌입했다. ‘동료’의 변심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일까. 이들 공범들은 주거지 주변에서 잠복해 있던 형사들에게 체포됐으며 그후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15일 현재 현장검증을 앞두고 있는 경찰은 이번에 김 씨 일당의 추가 범행이 확인됨에 따라 그동안 충남지역에서 미제로 남아 있던 당진과 천안 살인사건과 남양주, 하남 사건 등이 머잖아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김 씨가 ‘제2의 유영철’로 불릴 만큼 무지막지하게 살인행각을 벌여온 이유는 무엇일까. 경찰관계자는 “어린 시절의 환경이 전적으로 김 씨를 연쇄살인범으로 만들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고 말했다.
3남 1녀 중 막내인 김 씨는 초등학교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것으로 알려진다. 김 씨는 사춘기 시절을 겪으면서 성격이 점점 난폭해졌다고 하는데 고등학교 때는 무리를 지어 패싸움을 벌이다 폭행치사에 연루된 적도 있었다. 그뒤 고교를 중퇴한 후에는 강도짓을 하다 출동한 경찰을 중태에 빠뜨려 소년원에 수감되는 등 본격적인 탈선의 길로 빠져들었다.
성인이 된 후에도 평탄하지 못했다. 가정을 꾸렸지만 하는 일마다 실패하기 일쑤. 90년대엔 강남에서 횟집을 하며 돈을 모았으나 IMF 위기를 맞아 가게를 정리해야 했으며 그후에 시작한 택시운전 등도 벌이가 시원치 않아 항상 쪼들린 생활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김 씨가 범행에 친형을 끌어들였다는 것과 친형이 그 제안에 응했다는 것도 상식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경찰관계자는 “어릴 때부터 평범하지 않은 가정환경에서 함께 자란 데다 두 사람 모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점 등 상황이 두루두루 겹쳤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 관계자는 “김 씨는 과거에 형의 권유로 키토산 약품판매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모아놓은 대부분의 돈을 날려 형에 대한 깊은 원망도 품고 있었다”면서 “이 일이 김 씨가 형을 범행에 끌어들인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형에게는 부담이 되었던 듯하다”고 전했다.
현재 경찰은 충청도 일대의 미해결 사건 중에 범행수법과 유사한 사건이 있다고 판단, 이들의 여죄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