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산경찰서는 2월 21일 전 군과 그의 친구인 김 아무개 군(19) 등 세 명을 납치살인 등의 혐의로 긴급체포하고 이들로부터 장물을 구매한 유 아무개 군(18)을 장물취득 혐의로 붙잡아 조사 중이다.
모두 10대들인 이들의 끔찍한 범행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황금만능주의와 인명 경시 풍조가 단적으로 드러난 사례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단지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부모와 같은 이웃어른을 납치해 거침없이 폭력을 휘둘러 살해한 10대들. 과연 이들에게 황금보다 귀중한 것은 무엇일까.
지난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가출한 전 군은 특정한 직업 없이 시내 곳곳을 떠돌며 생활하고 있었다. 처음엔 주유소와 PC방 등에서 간간이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때그때 생활비를 벌었지만 방값과 유흥비를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특히 지난해 10월께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뒤부터는 쥐꼬리만 한 수입마저 끊기게 됐다. 결국 석 달 이상 월세를 내지 못한 전 군은 PC방과 찜질방 등을 전전했다.
모아놓은 돈이 바닥나자 전 군은 다시 일자리를 찾을 생각도 했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의 나이에 아르바이트로 벌 수 있는 돈이라고 해봐야 너무도 뻔했기 때문이다.
이때 불현듯 전군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잘 알고 지내던 동네 선배의 아버지 장 씨였다. 읍내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장 씨는 지방 소도시에서는 드물게 고급 승용차를 굴리는 등 지역에서 알부자로 소문이 나 있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전 군은 지난해 4월부터 6월까지 두 달여 동안 장 씨의 횟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었다. 선배와의 친분 덕에 선배 아버지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일을 하게 됐던 것이다. 사장인 장 씨는 횟집의 재정 사정까지 서슴없이 오픈할 만큼 아들의 후배인 전 군을 신뢰하며 살갑게 대해줬다. 장 씨와 전 군은 통상적인 사장과 종업원의 관계가 아니었던 셈이다.
전 군이 보기에도 장 씨의 횟집은 장사가 잘됐다. 특히 주말이면 밀려드는 손님으로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당연히 장 씨의 횟집 매출도 전 군이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장사를 하는 장 씨는 평소 현금을 넉넉히 갖고 다녔으며 가게 매출을 관리하는 통장에도 필요할 경우 즉각 융통할 수 있는 상당액의 돈이 들어 있는 눈치였다.
‘한 건 크게 해보자’는 생각에 빠져든 전 군은 자신을 혈육처럼 대해줬던 장 씨를 범행대상으로 낙점했다. 단지 주변 사람들 중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게다가 잘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범행을 시도했다가 돈도 못 건지고 낭패를 볼까 걱정도 됐다. 아무래도 내부 사정을 잘 알고 범행할 경우 성공확률이 높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혼자서 범행을 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였다. 전 군은 ‘유흥비로 쓸 돈을 나눠주겠다’며 친구인 김 군(19)을 범행에 끌여들였고 이번엔 김 군이 ‘대포차를 뽑아주겠다’며 자신의 후배인 한 아무개 군(18)을 끌어들였다.
학교를 그만둔 후 무직 상태로 지내온 이들 역시 전 군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처지였다. 하루하루 막막한 생활을 하던 이들에게 ‘한탕의 유혹’은 더없이 매력적이었다. 성공할 경우 거액을 챙길 수 있다는 욕심에 부풀어 있던 이들에게 살갑게 대해주던 선배에 대한 의리나 친분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더구나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은 모두 폭력행위 등에 연루돼 평탄치 못한 학창시절을 보냈으며 몇 차례 전과도 있는 상태였다.
이들은 범행에 앞서 치밀한 사전 계획을 세웠다. 늦은 시각 장 씨의 횟집에 침입해 장 씨를 납치한 다음 폭행을 가해 돈을 빼앗자는 시나리오였다. 특히 아르바이트 경험으로 횟집 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던 전 군은 범행날짜를 ‘월요일 새벽’으로 정했다. 평일보다 주말에 매출이 월등히 높아 이 때쯤이면 장 씨가 현금을 가장 많이 갖고 있을 거라는 계산에서였다.
우선 이들은 제각기 역할을 분담했다. 한 군은 망을 보고 김 군이 장 씨를 급습해 제압하면 전 군이 현금을 챙기는 식이었다. 범행날짜를 정한 전 군 등은 미리 짜놓은 각본을 재차 확인하며 예행연습까지 했다.
마침내 디데이로 정한 지난해 12월 11일 새벽 2시 30분경 전 군 등은 계획대로 장 씨의 횟집에 침입했다. 그 시각 장 씨의 횟집에는 장 씨와 노모밖에 없었다. 전 군 등은 장 씨를 위협, 돈을 요구했다. 하지만 다른 방에서 잠들어 있던 장 씨의 노모는 집 안에 강도가 들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전 군 등은 순식간에 장 씨가 보관하고 있던 돈 400만 원과 통장, 자동차 키를 빼앗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장 씨가 갖고 있던 400만 원이 거금을 꿈꾸던 이들의 성에 찰 리 없었다. 장 씨의 통장 비밀번호를 알아내 더 많은 돈을 가로채기로 결정한 이들은 장 씨를 승용차로 납치, 사전에 미리 봐둔 장소로 향했다.
인적이 드문 보령시의 한 야산으로 장 씨를 데려간 전 군 등은 장 씨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해 비밀번호를 알아냈다. 전 군 등은 나이만 10대였을 뿐 체구는 성인과 다름없었다. 청년 셋이서 한꺼번에 달려들어 수십 분 동안 가하는 무지막지한 폭행에 중년 남성이 당할 재간이 없었다. 결국 장 씨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전 군 등은 실신한 장 씨를 차에 태우고 돌아다니다 서산시 부석면의 한적한 휴게소 여자화장실에 버려두고 달아났다. 심한 외상을 입은 장 씨는 사건 당일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들은 장 씨의 시신을 유기한 뒤 인근 은행 현금지급기 코너에 들어가 장 씨의 통장으로 돈을 인출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장 씨의 통장에는 ‘거액’이 들어 있지 않았다. 이들이 장 씨의 통장에서 인출해낸 돈은 겨우 130여만 원. 생각보다 적은 금액에 실망한 전 군 등은 20일 후 동네 후배인 유 아무개 군(18)에게 장 씨 소유의 고급 승용차마저 팔아 400만 원을 더 챙겼다. 이들은 장 씨로부터 뺏은 돈을 나눠갖고 각자 유흥비 등으로 탕진했다.
한편 ‘휴게소 화장실에서 사체가 발견됐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소지품을 통해 이내 사체의 신원을 확인했다. 경찰은 장 씨의 승용차가 사라지고 통장에서 돈이 인출된 점 등으로 미루어 돈을 목적으로 한 납치살인일 것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이후 경찰은 장 씨의 횟집 주변과 사체가 발견된 장소 등 범인들이 머물렀던 곳과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경로에 설치되어 있는 폐쇄회로 화면을 하나씩 분석, 용의자를 압축해 나갔다.
뜻밖에도 사건은 쉽게 실마리가 풀렸다. 장 씨를 유기한 화장실에 떨어져 있던 누군가의 목도리가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다. 경찰은 이 목도리에 묻어 있던 머리카락에 대해 유전자 분석을 실시했고 그 결과 용의선상에 올랐던 인물들 가운데 전 군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다. 결국 경찰은 범행 직후 부산으로 도피해 있던 전 군 등을 추적해 검거하고 범행 일체를 자백받을 수 있었다.
돈에 눈이 멀어 돌이킬 수 없는 범행을 저지른 전 군 등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잘못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이들에게 다른 범행동기가 있었는지, 또 다른 죄는 없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