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해자 윤 씨, 조 씨와 흉금을 털어놓는 사이인 또 다른 룸살롱의 박 아무개 전무가 인터뷰에 응했다. | ||
<일요신문> 특별취재팀은 애초 사건 발생 직후에 피해자들이 주변 최측근에게 사심 없이 털어놓았을 그들의 진술이 사건 해결에서 가장 중요할 것으로 판단, 피해자들이 흉금을 털어놓을 수 있는 최측근들을 수소문했다. 그런 가운데서 S 클럽 인근의 또 다른 룸살롱의 전무로 있는 30대 초반의 박 아무개 씨를 만날 수 있었다. 박 씨는 윤 씨, 조 씨의 절친한 동료이자 친구다. 그는 사건 당일인 8일 S 클럽 주변의 상황을 생생히 목격했고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또한 사건 다음날 곧바로 친구들을 통해 충격적인 사건의 내막을 생생히 전해들었다.
─처음 조 씨를 만났을 때 그의 모습은 어땠나.
▲한마디로 만신창이였다. 온몸에는 멍이 들어 있었고 특히 눈 주위를 심하게 맞아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너무 많이 맞아서 몸에 감각이 없다고 했다.
─애초 8일 새벽 조 씨 등이 청담동 G 업소에서 김 회장 차남에게 폭행을 가한 사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야기했나.
▲조 씨 등이 먼저 (김 회장 차남을) 심하게 폭행한 것은 맞는 것 같았다. 김 회장으로부터 보복 폭행을 당한 후에 후회를 많이 했다고 한다. 그날 안 좋은 일이 있어 기분을 풀러 영업을 끝낸 후에 술을 마시러 청담동에 갔는데 그만 순간적인 감정에 김 회장 아들을 때린 것이 결국 이런 화를 불러왔다고 했다.
─조 씨가 청계산에서 당한 피해는 어떤 것이었나.
▲조 씨는 친구와의 의리상 윤 씨 대신에 자신이 김 회장 아들을 때린 윤 씨라고 나섰다. 그러자 혼자 끌려 나가 정신없이 맞은 후 어두운 산 속에서 얼굴만 내놓은 채 땅에 묻혔다고 했다. 주위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라이터 불을 켜놓고 ‘넌 오늘 죽는다’고 말했다고 했다. 조직폭력배처럼 보이는 수십여 명의 사람들도 주위에 빙 둘러서 있었고, 당시 조 씨는 정말로 그날이 자신이 죽는 날인 줄로 알았다고 했다. 공포에 떤 나머지 할 수 없이 ‘내가 때린 것이 아니다’고 말했고 당사자가 아니란 말에 확인차 온 건지는 모르지만 뒤늦게 도착한 김 회장의 아들이 ‘나를 때린 사람이 아니다’고 확인해준 다음에야 조 씨는 ‘무덤’에서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날 나무에 매달리다시피 해서 수도 없이 맞았다고 했다.
─북창동 S 클럽에 와서는 어떤 폭행을 당했나.
▲김 회장 일행은 업소에 들어서자마자 사장을 나오라고 했고 사장을 보자마자 따귀를 때린 후 전무, 상무들이 주로 대기하는 곳인 101호에 들어가 윤 씨를 찾았다고 한다. 그때 겁이 난 윤 씨는 바로 옆에 있는 R 업소에 숨어 있었는데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결국 윤 씨는 김 회장 앞에 나타났고 김 회장은 아들에게 ‘네가 맞은 만큼 똑같이 같은 곳을 패주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윤 씨도 눈 주위가 찢어질 정도로 맞았다.
─당시 보복 폭행 현장에 조폭들도 있었나.
▲내가 직접 보진 못했지만 분명히 있었던 것 같다. 들은 바로는 목포 출신의 전국구 조폭이라고 했다. 한화 측의 경호원들은 죄다 ‘가스총’ 비슷한 것을 차고 있었고 동원된 듯한, 점퍼를 입은 ‘조폭’들은 거의 대부분 회칼을 차고 있었다고 했다.
또 그 사건이 있은 후 전남의 모처에서 ‘행사’(조폭들은 결혼식이나 환갑 등을 ‘행사’라고 표현한다)가 있을 때 한화 측에서 동원한 조폭들과 S 클럽과 관련이 있는 조폭들이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자리에서 서로 “조용하게 넘어가자”는 이야기가 오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건 직후 바로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사실 사건이 일어난 얼마 후에 유흥가를 전담하는 모 형사가 조사를 하고 다니며 공공연히 ‘김승연 회장을 내 손으로 꼭 구속시킬 테니 두고보라’는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하지만 그 이후 별다른 수사도 없고 언론에도 나오지 않아 ‘역시 재벌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들은 바로는 사건 당일 S 클럽 사장이 김 회장에게 ‘이 이야기가 밖으로 새어나가면 내 오른팔을 내놓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만큼 업소 측에선 쉬쉬하면서 감추어온 것이다. 어디서 불거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북창동 쪽은 아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들 업소 몫이다.
─사건 당일 S 클럽 밖의 상황은 어땠나.
▲업소 앞은 북창동을 가로지르는 일방통행길이다. 김 회장 일행이 타고 온 에쿠스와 체어맨 등 자가용 6~7대가 길을 막고 있었으니 심한 정체가 있었다. 무슨 일인가 구경 온 사람들도 있었고, 그날 나를 비롯해서 업소 관계자들 중 상당수는 S 클럽에서 뭔가 심상찮은 큰 시비가 붙었음을 다들 알았다. 하지만 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사건 직후에 김 회장 측에서 S 클럽 쪽에 ‘입조심’을 시켰다는 얘기도 있던데.
▲그날 김 회장 측에서 ‘오늘 하루 좀 시끄럽게 하고 대신 장사를 계속할래, 아니면 아예 북창동에서 장사를 그만할래’하고 물어봤다고 한다. 물론 S 클럽 쪽은 당연히 ‘장사를 계속 하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즉 조용히 사건을 묻으라는 이야기인데 이후 언론에 이 사건이 보도되면서 그 쪽에서 입막음 등을 하려는 목적으로 얼마를 제시하는 식의 회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현재 북창동의 분위기는 어떤가.
▲솔직히 사건 직후에 그 쪽에서 입조심하지 않으면 북창동 자체를 문 닫게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는 소문이 나도는 등 이번 사건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더 위축이 되지 않겠느냐고 많이들 걱정하는 분위기다.
일부 언론의 경우 북창동 영업 간부들이 대부분 대졸 출신이라거나 또는 조폭 출신이라고 쓰기도 하고, S 클럽이 북창동에서 제일 큰 업소라고 쓰기도 한 것을 보고 우리끼리 비웃기도 했다. 언론에서 정확히 알고 썼으면 좋겠다.
특별취재팀 (감명국 기자 kmg@ilyo.co.kr, 이남훈 르포라이터 freehook@hanmail.net, 구성모 heymantoday.com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