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서울 혜화경찰서는 회사 공금을 횡령해 도피 중이던 K 씨(44)를 감금·폭행해 거액을 뜯어낸 혐의로 전직 시의원 이 아무개 씨(64)와 이 씨의 외조카 김 아무개 씨(53), 그리고 이 씨의 제의로 범행에 가담한 전남 나주 지역 D파 조직폭력배 3명 등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아울러 주범 격인 이 씨에게 D파 조직원들을 소개시켜준 모 사찰 주지 김 아무개 씨(여·38) 등 연루자 4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 피의자 가운데 김 씨는 피해자 K 씨의 손윗동서이고 이 씨는 김 씨의 외삼촌. 어떻게 인척 간에 이 같은 폭력·갈취극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 잠시 시침을 몇 년 전으로 되돌려 보자.
피해자 K 씨는 지난 90년대만 해도 썩 괜찮은 기업의 기획실장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99년 자신이 다니던 회사가 경영난으로 법정관리를 받게 될 처지가 되면서 유혹의 덫에 빠지고 만다. 회사 상사로부터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하라는 지시를 받고 비자금을 관리하던 중 그 자신도 공금 20억 원을 빼돌렸던 것이다.
그뒤 도피생활을 시작한 K 씨는 2000년 초 가까이 지내던 손윗동서 김 씨에게 이 같은 비밀을 털어놓는다. 일단 속내를 드러내고 보니 마음 한구석에 얹힌 돌을 빼낸 듯한 해방감도 들었다. 이때만 해도 K 씨는 이날 발설한 비밀이 얼마나 무서운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게 될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K 씨는 횡령한 돈 중 일부로 수원의 한 모텔을 인수해 그곳에서 숨어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동서 김 씨가 그를 찾아오면서 K 씨의 ‘평탄했던’ 도피생활에 서서히 금이 가게 된다. 김 씨가 횡령 사실을 폭로하겠다며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던 것. 이날 이후 K 씨가 입막음용으로 김 씨에게 건넨 돈은 3년간 무려 2억여 원.
하지만 이 정도 액수로는 김 씨의 욕심을 채우기에 부족했다. 김 씨는 K 씨의 돈을 더 뜯어낼 요량으로 자신의 외삼촌 이 씨에게 연락해 그간의 상황을 설명했다. 이 씨는 한때 시의원을 지냈지만 몇 건의 폭력 전과가 있을 정도로 ‘험한 세계’에도 몸담았던 사람. 외조카 김 씨의 얘기를 들은 뒤 이 씨는 사돈뻘인 K 씨를 상대로 ‘작업’을 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우선 이 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목포 시내 한 사찰의 주지승 김 아무개 씨(여·38)에게 일할 만한 사람을 모아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주지승 김 씨는 사찰의 한 신도가 소속된 나주 지역의 폭력조직 D파 조직원들을 이 씨에게 소개해줬다. K 씨가 횡령한 거액을 폭력으로 빼앗을 ‘팀’이 꾸려진 것이다. D파는 전남을 근거지로 활동을 하면서 경기도까지 세력을 뻗치고 있던 전국적인 조직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 등 일당이 범행 ‘디데이’로 삼은 날은 2003년 4월 6일. 이날 오후 9시쯤 K 씨가 운영하는 모텔에 들이닥친 D파 폭력배들은 K 씨를 납치해 교외로 빠져나갔다. 이들은 일산의 한 모텔에 K 씨를 감금하고 쇠파이프와 몽둥이로 폭행을 하기 시작했다. 계속된 위협과 매타작 속에서도 K 씨가 돈의 행방을 이야기하지 않자 이들은 K 씨의 왼쪽 팔꿈치를 부러뜨리기까지 했다.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고 죽음의 공포를 느낀 K 씨는 결국 아내에게 전화해 집에 숨겨뒀던 8억 6000만 원을 이들에게 건넸다. 범행 후 김 씨와 이 씨는 약 4억 원을 나눠가졌으며 나머지 돈은 D파 일당이 가져갔다.
악몽과도 같은 린치를 당했지만 K 씨는 그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하소연조차 할 수 없었다. 그 자신이 저지른 ‘원죄’가 있었기 때문이다. K 씨는 그러나 얼마후 횡령 사실이 드러나 경찰에 붙잡혀 지난 2005년 3월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현재까지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그렇다면 K 씨 갈취 사건이 4년이나 지난 지금에야 밝혀지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이번 사건을 해결한 강력 4팀 한우식 팀장은 처음에 첩보보고를 통해 사건의 ‘냄새’를 맡았다고 말한다. 그는 “당시 건달들 사이에서 D파 조직원들에게 큰돈이 생겼다는 소문이 돌았다”라며 사건 해결 과정을 설명했다. 이후 조폭들 주변을 조사하면서 사건의 윤곽을 파악하게 됐지만 교도소에 있는 피해자 K 씨가 가족에 대한 보복을 우려한 나머지 이 사건에 대한 진술을 완강하게 거부해왔다고 한다. 사건 해결이 늦어지게 된 이유다.
이외에도 사건 해결에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또 있었다. 사건에 가담한 D파 조직원들이 전국적으로 퍼져 있어 형사들이 일일이 이들을 찾아 전국 각지를 돌아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형사들은 목포, 나주, 수도권 등 7개 지역에서 피의자들을 검거했다.
사건 조사 도중 K 씨는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하면서도 내심 손윗동서가 연루되지 않기를 바라는 눈치였다고 한다. ‘설마 가족이 나에게 이런 짓을 했겠나’ 하는 생각이 남아 있던 데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K 씨의 집안이 양분돼 풍비박산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사 결과 손윗동서 김 씨와 김 씨의 외삼촌 이 씨가 사건에 깊이 개입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K 씨 자신은 물론 그의 집안에도 씻을 수 없는 상처만 남게 됐다. 결국 부정하게 쥔 거금이 화근이 되어 ‘가족 잔혹사’를 일으켰던 셈이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