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남부경찰서는 지난 6월 21일 창원시의 한 아파트에 침입해 금품을 훔친 혐의 등으로 이 아무개 씨(48)와 A 씨(여·43)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내연 관계인 이들 커플은 손을 잡고 다니며 아파트 주민 행세를 하다가 불 꺼진 집을 골라 남자는 금품을 훔치고 여자는 망을 봐주는 식으로 범행을 저질러왔다고 한다. 도둑질도 함께 할 정도로 ‘금슬’이 좋은 이 내연 커플의 엽기 절도 행각 속으로 들어가보자.
이들 엽기 절도범 커플이 세상에 얼굴을 드러내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경찰은 다른 절도사건과 관련해 귀금속소매점 주인 김 아무개 씨(48)를 장물 취득 혐의로 구속하고 그의 휴대폰 통화 내역을 조사했다. 그런데 통화대상 중 이 씨가 ‘요주의 인물’로 떠오르면서 이들 커플의 엽기 절도 행각도 꼬리를 밟히고 말았다. 경찰이 유독 발신지역이 일정치 않은 한 전화번호를 주목하고 인적사항을 확인해 본 결과 주거부정에 절도 전과도 상당했던 이 씨가 그 장본인이었던 것.
경찰은 통신회사의 협조를 얻어 이 씨의 위치 정보를 알아낸 후 몇 주에 걸쳐 미행을 시작했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이 씨는 낮에는 주로 울산, 마산, 창원 등지의 성인게임장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자신의 승용차를 이용해 근처의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범행대상으로 삼을 아파트 단지를 물색했다. 그리고 손댈 만한 아파트가 정해지면 저녁 무렵 내연녀 A 씨를 불러냈다.
이들 커플은 범행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다정하게 저녁식사를 함께 한 후 마치 주민인 것처럼 티셔츠 등 운동복 차림으로 아파트 단지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산책(?)을 다녔다고 한다. 이는 사실 불이 꺼진 집을 골라내기 위해서다.
이들은 아파트 경비원과 마주쳤을 때도 태연스럽게 “수고가 많으시다”며 먼저 인사를 건넬 정도로 자연스럽게 주민 행세를 했다. 그러다 범행 대상이 정해지면 이 씨는 자신의 차로 돌아가 범행 도구가 들어 있는 점퍼로 갈아입은 뒤 작업을 개시했다. A 씨는 주차장에 주차해놓은 차 안에 있거나 1층 현관 앞에서 대기했다.
경찰이 자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는 것은 물론 카메라로 증거 장면을 찍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던 두 사람. 이들 커플은 계단을 통해 이 씨가 찜해 놓은 집으로 올라가면 A 씨가 사방을 살피며 망을 봐주는 식의 ‘합동작전’을 구사했다.
이들의 이러한 합동 작전에는 휴대폰이 필수적이었다. 이 씨는 두 손을 빨리 놀릴 필요가 있는 도둑질의 특성상 이어폰을 이용해 전화를 받았으며 그렇게 휴대폰상으로 서로 ‘연결’된 상태에서 A 씨가 주변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해주었던 것. 범행에 걸리는 시간은 대략 10~15분. A 씨 덕분에 이 씨는 혼자 불안한 마음으로 도둑질을 할 때와는 달리 느긋하게 물건을 훔쳐 나올 수 있었다. 또한 범행 후 이들은 모텔 등지에서 함께 밤을 보내기도 했다.
몇 번에 걸친 미행 결과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게 된 경찰은 ‘커플 합동 절도 행각’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유유히 현장을 떠나려던 이들 커플을 현행범으로 그 자리에서 체포했다. 경찰서로 연행돼서도 끝까지 혐의를 부인하던 이들은 증거를 들이미는 경찰 앞에서 결국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이들 내연 커플은 어떤 사연이 있었기에 도둑질까지 함께 했을까.
알고보니 이들은 지난 2003년 당시 A 씨가 운영하던 미용실에 이 씨가 손님으로 찾아가면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지내고 있던 A 씨와 한 가정의 가장이지만 밖으로만 돌던 이 씨는 자연스럽게 정을 통하게 됐다. 그러다 특별한 직업을 구하지 않고 성인게임에 빠져 살던 이 씨가 A 씨의 신용카드를 가져다 쓰면서 문제가 생기게 된다. 결국 이 씨는 1500만 원가량의 빚을 지게 되자 카드빚을 갚기 위해 자신의 ‘전공’을 살리게 된 것. 장성한 아들의 학업을 뒷바라지하던 A 씨는 카드빚을 갚아준다는 이 씨의 말에 범행을 돕게 됐다고 한다.
경찰은 이 씨의 지난 1년간의 통화 내역을 분석한 결과 이 씨가 장물아비 김 씨와 처음 통화한 것이 지난해 9월경이고 이들 커플의 범행 수법으로 보아 이미 오래 전부터 상당수의 범행을 저질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커플은 다른 혐의는 일체 부인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커플이 활개를 치고 다니던 지역에서 해당 시기에 도난 신고가 있었던 정황과 이들 커플의 당시 통화기록을 통한 위치 확인 결과 일치하는 사례가 117건이나 드러났고 피해 금액은 2억 7000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씨는 현금과 귀금속만 골라 훔쳐왔는데 훔친 귀금속의 경우 장물아비 김 씨에게 건네주고 돈을 받았다고 한다. 한 예로 이 씨가 1600만 원 상당이던 귀금속을 김 씨에게 건네고 받은 돈은 203만 원가량. 경찰 관계자는 금의 경우 1돈에 7만 5000원이 시중가라면 장물가는 5만 원대인데 장물아비 김 씨가 그들 세계의 시세보다 훨씬 싼값으로 귀금속을 거래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씨 커플의 절도 행각도 나쁘지만 이들로부터 절취품을 헐값에 사들여 차액을 챙긴 장물범도 나쁘다”면서 “검거 당시 이 씨가 입고 있던 점퍼 속에서 귀금속 소매점 명함이 2개나 더 나왔다. 이곳에 대해서도 수사를 계속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 씨는 구속돼서 죗값을 치르겠지만 피해를 당하고도 법적으로 보상을 받을 길이 없는 피해자들이 안타까울 뿐이다”고 덧붙였다.
현재 이들 커플은 증거인멸의 우려 등으로 구속된 상태. 경찰은 A 씨의 경우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이 씨와 공범이고 명백히 드러난 혐의에 대해서도 부인하는 등 구속이 불가피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씨는 “그 여자는 아무 죄가 없다”며 A 씨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어렵게 자영업을 하며 이미 몇 차례의 옥바라지를 해왔던 이 씨의 아내는 “도둑질로 모자라 바람까지 피운 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며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절도 전문가 이 씨로 인해 두 여자의 인생이 기구해진 셈이다.
장유지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