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증권의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일본계 사모펀드 오릭스가 선정되면서 1년 넘게 진행된 현대그룹의 구조조정이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돌입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현대증권 매각 본입찰은 지난해 7월과 10월 두 차례나 연기됐다. 지난해 10월 현대그룹은 현대증권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약 400명을 구조조정 했다. 현대증권의 인력이 감축되면서 비용 부담이 준 것이 실적 개선으로 이어졌다. 실적 개선으로 인해 두 차례 매각 연기는 오히려 득이 돼 돌아왔다. 현대증권 인수전이 전과 달리 치열해지면서 매각가가 시장의 예상을 뛰어 넘는 결과를 냈기 때문이다. 오릭스가 현대증권을 인수하기로 한 가격은 장부가보다 5% 높은 주당 1만 1800원, 총액 1조 800억 원에 달했다.
인수전 초기만 해도 오릭스가 압도적이라는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오릭스는 자산이 94조 원에 육박하는 데다 국내에서 대형 M&A(인수·합병)를 성공적으로 끝낸 경험도 있었다. 현대그룹과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지난해 9월 현대그룹은 오릭스에 현대로지스틱스를 약 6000억 원에 매각하며 숨통을 트기도 했다.
하지만 경쟁상대로 나선 파인스트리트도 만만치 않은 ‘판돈’을 가져와 다크호스로 부상하며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게 됐다. 세계 10대 사모펀드로 꼽히는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를 ‘전주’로 모셔(?)온 것. 파인스트리트는 여기에 국내 대표적 연기금인 교직원공제회를 포함한 국내 전주도 구축했다.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파인스트리트도 허투루 지원한 게 아니란 것을 제대로 보여준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오릭스는 현대로지스틱스를 매수하면서 현대와 손발을 맞춰 본 경험이 있어 현대증권 매각을 진행하는데 용이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M&A 업계 관계자도 “오릭스가 현대그룹과 일해 본 경험으로 현대그룹의 가려운 곳을 알고 잘 긁어주는 협상안을 제시했을 것 같다”고 추측했다.
인수전 흥행 때문인지 업계에서는 현대증권과 오릭스 사이에 낀, 현대증권 2대주주(지분율 9.54%) 자베즈파트너스(자베즈)가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인수전 초반에는 자베즈가 오릭스와 파트너십을 맺고 현대증권 인수전에 참여한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고 최근엔 지분을 계속 보유할 것이라고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오릭스 측은 “자베즈는 파트너가 아니라 매각 대상 지분”이라면서도 “처음부터 컨설팅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알렸다”고 밝혔다. 현대그룹 관계자도 “피인수 지분 보유자가 투자자가 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업계 뒷말의 배경에는 지난 2012년 자베즈의 MG손해보험(옛 그린손해보험) 인수에서 시작된다. 2012년 8월 예금보험공사는 대유에이텍을 서울신용평가정보 지분 60.4%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다. 하지만 대유에이텍은 선정 다음날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포기했다. 대유에이텍과 대유신소재가 약 80% 소유한 스마트저축은행 지분이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이 언론에 오르내리자 부담이 됐던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 후 11월 재선정한 우선협상대상자에 자베즈가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이때도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다. 자베즈가 예금보험공사에 이행보증금 60억 원을 지급한 날 대유에이텍은 자베즈에 60억 원을 단기 운영자금을 목적으로 대여해 줬다고 공시했다. 지난 2013년 2월 대유에이텍은 공시를 통해 MG손해보험 인수에 참여했고 출자약정 총액은 400억이라고 밝혔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앞서의 M&A 업계 관계자는 “자베즈가 지분 매각 대상으로 포함된 만큼 추후 현대증권 인수 자금을 모으는 오릭스의 펀드에 참여할 수는 있지만 당장은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면서 “자베즈가 일단 팔고 다시 투자자로 참여하는 모습으로 결론나면 외부에서 보기엔 사실상 안 팔았다고 볼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오릭스에 지분 매각이 확정되면 자베즈는 약 3년 만에 투자수익률 44%를 달성하게 된다. 여기에 콜옵션이 포함된 만큼 오릭스와 함께 현대증권 투자자로 다시 참여한다면 사실상 확정적인 이익을 앞으로도 거둘 수 있다.
재계에서는 인수전 흥행으로 현대증권 매각이 확실시되는 만큼 우선매수청구권 여부가 화두로 떠올랐다. 현대그룹은 ‘선제적 구조조정’이라는 명목으로 그룹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계열사를 매각했다. 대표적인 계열사로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상선 정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업계 중론은 현대그룹이 당장은 어려워 현대증권을 내놓지만 차후에는 재인수 의사가 있을 것으로 봤다. 결과적으로 오릭스는 현대그룹에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우선매수청구권이 포함됐다지만 구체적인 재매수 시기, 매수 금액 등은 앞으로 협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마지막 궁금증은 현대증권을 매각하면 현대그룹의 부채문제가 종결되느냐는 것이다. 현대그룹은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상선이 가장 큰 규모의 계열사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하지만 나머지 기둥인 현대상선은 아직 정상화되지 못했다. 현대상선은 아직 차입금이 5조 원가량 남아 있고 해운 업황도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해운이나 항공 업계는 배나 비행기를 보통 부채로 매입하기 때문에 부채가 많아 보인다. 하지만 이런 부채는 단기간에 갚아야하는 악성부채가 아니다”며 “선제적 자구책이 완료되고 현대엘리베이터 실적이 좋게 나왔고 해운업계도 조금씩 살아날 것으로 본다”고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현대그룹의 또 다른 관계자도 “현대그룹은 올해와 내년 큰 규모의 만기 회사채가 있지만 산업은행의 신속인수제도(일시에 대규모로 만기가 도래한 회사채를 상환하기 위해 기업들이 사모 방식으로 또 다른 회사채를 발행하면 이를 산업은행이 인수해주는 제도)와 이번 현대증권 매각 대금을 통해 최소한 올해는 유동성 위기라는 말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