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 누구요?”
마을과 멀리 떨어진 외딴 초가집에서 가족도 없이 수년째 홀로 살고 있었던 장 노인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부들부들 떨었다. 신발을 신은 채 방안으로 들어온 남자는 두려움과 공포에 떠는 장 노인이 재미있다는 듯 빙글빙글 기분 나쁜 웃음을 띤 채 바라보았다. 이번에 김원배 수사연구관이 전하는 사건은 1990년 경상북도 안동 일대의 시골 외딴집에 침입해 독거노인들을 상대로 연쇄 방화 살인을 저지른 살인마에 대한 얘기다.
인심 좋고 평화로운 시골마을 외딴 집에 한밤중에 침입한 괴한. 장 노인에게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따로 없었다.
“이보게, 젊은이, 왜 이러는가. 보다시피 난 혼자 사는 늙은이네. 살려주게.”
장 노인은 남자에게 사정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남자는 갑자기 분노에 찬 얼굴로 욕설을 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조용히 하지 못해? 이 XXX아! 나는 돈도 필요없고 몸도 필요없는 사람이야. 내가 여길 왜 온 줄 알아? 사람 죽이러 온 거야. 그래야 사회가 어수선해질 거 아냐. 소리쳐도 죽고 안 쳐도 죽는다!”
남자는 흉기로 장 노인을 위협한 뒤 끈으로 신체를 결박했다. 그리고 살려달라는 장 노인의 애원을 뒤로한 채 이불장으로 몸을 눌렀다. 이불장에 깔린 채 옴싹달싹 못하게 된 장 노인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공포에 질려 남자의 행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숨막히는 공포 속에서 몇 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잠시 후 장 노인은 기겁했다. 씩씩거리던 남자가 꺼내든 것은 일회용 라이터였기 때문이다. 남자는 라이터로 방안에 불을 지른 뒤 유유히 빠져나갔고 초가집은 일순간에 전소되고 말았다. 방안에 갇혀 있던 장 노인은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혼자 사는 노인의 집에서 난 의문의 화재사건이 방화살인일 거라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수년째 노인 혼자 가난하게 사는 집에는 탐낼 만한 물건도 없었고 장 노인 또한 원한을 살 만한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집이 전소된 탓에 범인의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데 3개월여 뒤인 1990년 6월 16일 경북 청송군에 사는 김점분 씨(가명·67)의 집에 또다시 낯선 남자가 ‘방문’하게 된다. 김 노인 역시 고된 일과를 마치고 TV 드라마를 보다가 잠이 든 상황이었다. 새벽 1시경 낯선 발자국 소리에 잠을 깬 김 노인은 자신의 머리맡에서 흉기를 들고 있는 중년 남자를 보고 기절초풍한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김 노인은 ‘집을 다 뒤져서 가져갈 게 있으면 다 가져가라.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나. 내게도 젊은이 같은 아들이 있네’라며 그 남자를 붙들고 사정했다. 하지만 그 남자는 분노에 가득한 눈빛으로 ‘XX, 다 필요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 남자는 장 노인 때와 마찬가지로 김 노인의 입을 틀어막고 위협해 방 한구석으로 몰아넣은 뒤 집에 불을 지르고 달아났다.”
이날 김 노인의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혼자 살던 김 노인은 다음날 이웃주민에 의해 전소된 집과 함께 발견됐을 뿐이었다.
그로부터 또 석 달여가 지난 9월 27일 오후 8시경. 경북 안동군에 사는 안말숙 씨(가명·65)는 이웃집에 놀러갔다가 오후 늦게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외딴집에 혼자 거주하고 있던 안 씨는 집에 도착할 무렵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멀쩡하던 집에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게 아닌가.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범인은 방화살인을 하기 위해 안 씨의 집에 침입했다가 집에 아무도 없자 홧김에 불만 지르고 달아난 것이었다.
안동 일대에서 몇 달 간격으로 발생하는 이상한 화재사건을 둘러싸고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이었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화재가 난 곳은 하나같이 마을에서 떨어진 있는 집이었다. 또 대개 자정을 넘긴 시각 집주인이 잠자리에 든 후에 발생했다. 더구나 피해자는 모두 혼자 살고 있는 노인들이었는데 하나같이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불이 날 당시 그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도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우발적인 화재로 보기에는 뭔가 이상했다. 현장에는 어떠한 증거도 없었지만 범죄와의 연관성을 짐작케하는 여러 가지 징후들이 포착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며칠 후 또 한 건의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10월 18일 오전 경북 안동군의 한 마을에서 할머니 3명이 끔찍한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사망자는 집주인 서말년 씨(가명·71)와 이웃에 살고 있던 서 노인의 친구(70)와 동서(70) 등 3명이었다. 서 노인의 집은 화재로 완전히 타버린 상태였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현장을 최초로 발견한 이웃에 따르면 전날 자정께 서 노인의 집 쪽에서 ‘쿵’하는 폭발음이 들리고 곧이어 정전이 됐다고 했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 아침 일찍 서 노인의 집으로 가보니 집이 폭삭 내려앉아 있더라는 것이었다. 이웃들에 따르면 서 노인이 살던 동네는 가옥이 총 6채가 있었는데 3채는 빈집이고 나머지 3채에 각각 서 노인 등 할머니 3명이 살고 있었다. 남편과 사별한 이들은 자식들을 도시로 출가시킨 뒤 오랫동안 혼자 살아오던 처지였는데 워낙 외롭다보니 한가족같이 지내왔다고 한다. 평소 서 노인 등은 늦게까지 한집에 모여 놀다가 같이 잠을 자곤 했다는 것이다. 보아하니 이날도 노인들이 모여서 같이 잠을 자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당시 경찰은 이 사건을 ‘전기 누전에 의한 단순화재’로 파악했고 감식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일부 언론은 노인들이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동반자살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살인마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약 보름이 지났을 때였다. 11월 2일 오후 8시경 경북 봉화군에 사는 오병태 씨(가명·64)의 집에 괴한이 침입, 흉기를 휘두르다 달아난 사건이 발생한 것이었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당시 오 노인의 집에는 오 씨의 처제와 동서, 주민 등 4명이 모여 TV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낯선 남자 한 명이 느닷없이 흉기를 들고 방안으로 침입했다고 한다. 남자는 오 씨 등을 방 한 구석에 몰아넣고 흉기로 위협했다. 그러나 건장한 체격을 갖고 있던 오 씨 등이 합세해 거세게 반항하자 흉기를 휘둘러 중상을 입힌 뒤 집안에 있던 현금 5만 원을 빼앗아 그 길로 달아났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범인이 노인 혼자 사는 외딴집을 노렸다는 점에 근거해 그동안 안동 일대에서 발생한 미스터리한 사건들과 관련 있을 것으로 파악했다. 그리고 범인이 멀리 도망가지 못했을 것으로 판단하고 마을 일대에 수사대를 급파, 결국 다음날 새벽 2시경 마을 인근의 빈집에 은신해 있던 남자를 검거했다.
그리고 경찰조사과정에서 이 남자가 약 8개월에 걸쳐 6명의 노인을 살해한 연쇄살인마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1990년 3월부터 그해 11월까지 발생한 화재·변사사건의 숨겨진 진실이 모두 드러나게 된 것이다.
지창식(가명·47). 8개월 동안 노인이 혼자 사는 시골마을의 외딴집에 침입, 힘없는 노인들을 가둬놓고 집에 불을 질러 살해한 ‘악마’의 이름이었다.
조사결과 지 씨에게는 이미 특수절도 등 10여 차례가 넘는 전과가 있었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고아로 자란 지창식은 어린 시절부터 대구 일대를 전전하며 닥치는 대로 살아온 것으로 파악됐다. ‘소년 지창식’의 삶은 여느 또래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부모의 그늘 밑에서 보호받으며 성장할 수 없었던 지창식의 가슴속에는 부모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과 세상에 대한 뿌리깊은 원망만이 자리잡고 있지 않았나 싶다. 특히 청소년기를 거치며 극심한 방황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길거리를 배회하며 온갖 범죄의 유혹을 받았던 지창식은 결국 특수 절도 혐의로 소년원에 수감되는 것을 시작으로 범죄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된다. 이때 그의 나이 불과 열일곱 살이었다.”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교도소에서 보낸 지 씨는 이렇다할 생계수단을 가지려야 가질 수 없었다. 지 씨는 89년 가을 청송보호감호소에서 가출소하기까지 무려 20년 이상을 수감생활을 하며 보낸 것으로 기록돼 있다. 지 씨는 출소 후 얼마간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학벌도 기술도 돈도 없는 지 씨를 받아주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특히 지 씨의 전과는 세상 사람들에게 영원한 주홍글씨였다. 지 씨의 가슴속에 잠재돼 있던 분노가 서서히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 이 무렵이었다. 이어지는 김 연구관의 얘기.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 해봤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사회의 멸시와 냉대뿐이었다. 실제로 검거 당시 그는 경찰에서 ‘전과자라는 낙인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범행동기에 대해 그는 ‘사회 저명인사와 국회의원 등을 살해해서 신문·방송을 타려 했다. 그래서 사회적인 관심과 이목을 받아 재소자와 전과자가 겪는 소외감과 고충을 알린 후 자살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지 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방화살인강도 혐의로 91년 겨울 사형을 확정받았다. 당시 중범죄자들만을 수감하는 것으로 악명 높았던 청송감호소에서 출소해 자유를 찾은 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저항능력이 없는 할머니 등 6명을 살해한 것은 더없이 잔인한 행동으로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지 씨는 사형 확정 4년이 지난 95년 11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당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지존파 사건의 범인들도 이날 함께 사형이 집행됐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