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두사부일체>의 한 장면. | ||
지난 17일 부산 기장지역 고교생 37명을 폭력혐의로 검거한 경찰의 말이다. 상습적인 금품 갈취 및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이들 고교생들은 후배들이 ‘상납금’을 제때 바치지 못하자 군고구마 장사와 아르바이트까지 시키며 그 돈을 착복해 왔다고 한다. 조직폭력배 뺨치는 폭력과 금품 갈취 행각이 일반 고교생들에 의해 자행됐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같은 학교폭력이 최근에 등장한 것이 아니라 선후배 간에 대물림되면서 수년간 계속돼 왔다는 사실이다. 경찰은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알 수 없다”면서 “선배들에게 당한 후배들이 다시 선배가 돼 똑같은 행동을 반복해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이번 사건의 가해 학생은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해 도대체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경찰은 한숨을 쉬기도 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 10월 말 피해 학생 중 한 명의 학부모가 “아들이 선배들에게 상습적으로 구타를 당하고 있다”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은 이번 사건 피해 학생 5명의 학부모들이 단체로 부산지방검찰청에 민원을 제기하면서다.
검찰이 관심을 가지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탔고 이후 11월 13일 경찰은 가해학생 전원을 검거했다. 사건 담당 형사에 따르면 경찰은 처음엔 폭력 학생 수를 10여 명 정도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검거 작전이 시작되면서 가해 학생의 수가 10명에서 20명, 종국에는 37명까지 늘어났다고 한다. 사건 직후 경찰은 “이렇게 큰 사건인 줄은 몰랐다”고 말하며 놀라워했다는 후문이다.
경찰조사 결과 드러난 이들의 범죄는 조직폭력배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경찰에 따르면 고교 2~3학년생들을 중심으로 이뤄진 이들 가해 학생들은 지난 2007년 4월부터 자신이 졸업한 중학교 후배들 15명을 상대로 하루 상납금 2만~3만 원을 요구해 왔다. 중학생들이 매일 이 금액을 감당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지만 그들은 인정사정 없었다고 한다. 상납금을 내지 못할 때마다 모진 폭력이 뒤따라 피해 학생들은 어떻게든 돈을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들 중에는 도둑질을 해서 상납금을 바친 학생도 있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지난 10월 초 이번 사건의 단초가 됐던 김 아무개 군(15) 외 4명에 대한 집단 폭행 사건도 바로 이 상납금 때문에 빚어졌다. 당시 피해 학생들은 선배들로부터 주먹과 발, 심지어 각목 등으로 30분가량 폭행을 당해 전치 2~3주의 상해를 입었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의 폭행은 상습적으로 자행돼온 것으로 드러났다. 선배들은 후배들이 돈을 가져오지 않거나 조금이라도 반항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가차없이 집단폭행을 가했고, 그런 상태가 1년 7개월 동안 계속돼 왔다고 피해 학생들은 진술했다.
심지어 이들 가해자 학생들은 후배들이 제때 돈을 가져오지 못할 경우 여름에는 전단지를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시켰고 겨울에는 군고구마 장사까지 시켰다고 한다. 물론 장사 밑천은 피해 학생들이 댔고 이익금은 모두 선배들이 빼앗아갔다. 그렇게 1년 7개월여 동안 중학교 3학년 후배 15명이 선배들에게 빼앗긴 돈은 무려 1200만여 원.
이번 사건에서 주목할 점은 후배들에게 돈을 빼앗았던 가해 학생들도 저학년 때나 중학교에 다닐 때에는 똑같은 일을 당했던 피해자였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피해 학생들 중 일부는 상납금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후배들을 괴롭혀 돈을 빼앗은 경우도 있었다.
경찰은 “폭력과 금품 갈취가 상당히 오랫동안 일상화돼 온 것으로 보인다”며 “가해 학생들이 대부분 자신들도 당했던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인지 몰라도 검거된 후에도 별로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고 전했다.
결국 이번 사건은 학교 주변에 만연해 있는 폭력에 대해 그동안 기성세대들이 얼마나 무관심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시민단체들은 “내 아이만 괜찮으면 된다는 학부모들의 이기적인 태도와 알고도 모른 척 넘어가는 교육자들의 무사안일주의가 고질적인 학교폭력을 키워 왔다”며 “우리 모두가 학교폭력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자성을 촉구하고 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학교폭력을 근절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사건을 담당했던 해운대 경찰서의 한 형사는 “두려워서 신고를 못하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수사를 확대해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학교 폭력을 뿌리 뽑겠다”고 밝혔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