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팸 문자로 치부하고 무시하자 이번에는 또 다른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잘 모르시겠어요? 그럼 사진 하나 보내드릴까요?’라는 문자를 받자 회사원 김 아무개 씨(26)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휴대폰 버튼을 눌렀다.
버튼을 누르자 휴대전화는 인터넷사이트로 연결되면서 여성의 얼굴 사진이 나왔다. 모르는 여성의 얼굴이었기에 김 씨는 곧바로 전화를 끊었지만 다음날 아침 ‘○○모바일에서 2990원 결제’라는 문자를 받았다. 그제서야 김 씨는 자신이 ‘낚였다’라는 사실을 알았다. 문자메시지에 모바일 유료 서비스로 자동 접속되는 장치가 교묘하게 내장돼 있어 접속만 하면 바로 요금이 부과됐던 것이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이런 수법으로 55만 차례에 걸쳐 17억 원을 챙긴 정 아무개 씨(35)를 지난 11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고 11일 밝혔다. 정 씨 일당은 휴대전화 콘텐츠 업체 네 곳을 차려 2006년 9월부터 2007년 8월까지 지인으로 위장한 문자메시지 수천만 건을 보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휴대전화 결제금액이 3000원 미만일 경우 주민등록번호나 승인번호 입력과 같은 인증 절차를 밟지 않고도 결제가 된다는 점을 이용해 문자를 보내고 걸려들 경우 한 건에 2990원씩을 청구했다고 한다. 이들이 가로챈 금액은 개인별로는 2990원의 소액인 데다가 한 달 후 휴대전화 요금에 포함돼 청구되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거의 대부분의 사기를 당하고도 모르고 넘어갔다.
피해자들 중에서는 두 차례 이상 속은 사람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간혹 부당 요금이 청구된 것을 알고 회사로 항의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친절하게 응대하면서 무조건 전액을 환불해주는 치밀함을 보였다. 물론 수사기관에 신고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정 씨 일당은 개인정보를 이용한 맞춤형 ‘피싱수법’도 쓴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이전에 성인 인터넷 서비스를 직접 운영하면서 얻은 개인 정보를 이용해 문자 메시지에 수신인의 이름을 넣어 피해자들을 감쪽같이 속였다고 한다. 한편 2007년 당시 사건을 인지한 경찰은 정 씨가 운영하던 휴대전화 콘텐츠 업체 네 곳을 단속해 정 씨를 제외한 공범 2명을 구속하고 11명을 불구속 입건했지만 주범인 정 씨는 놓쳤다. 경찰은 달아난 정 씨를 2년간 끈질기게 추적한 끝에 최근 검거했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