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강도 등의 혐의로 4년간 교도소에서 복역하다 2002년에 8·15 특별사면을 통해 조기출소하게 된 최 씨는 가족들 앞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최 씨는 “이제는 새사람이 되어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되도록 하겠다”며 지난날의 실수를 반성했다.
출소한 후 최 씨는 가족 부양을 위해 이곳저곳 일자리를 알아보다 볼링장에 어렵게 취직하게 됐다. 최 씨의 집안에도 남들과 같은 평범한 일상이 시작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러한 평화도 오래 가지 못했다. 다시 최 씨의 욕망이 꿈틀대기 시작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2003년 5월경 새벽녘에 청주시 가경동의 한 원룸의 창문이 열려있는 것을 보고 가스배관을 타고 들어갔다. 원룸에서는 A 씨(38·여)가 혼자 잠을 자고 있었고 이에 최 씨는 A 씨를 흉기로 위협한 뒤 성폭행하고 현금을 훔쳤다. 이것이 ‘청주 발발이’ 사건의 서곡이었다.
손쉽게 범행을 마치게 되자 최 씨는 죄책감보다 오히려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그는 최초 범행 이후 새벽시간대에 청주 흥덕구 산남·가경·봉명·복대·죽림동 지역의 원룸촌을 제 집 드나들듯이 돌아 다녔다. 특히 볼링장에서 근무하던 최 씨가 2년 전부터 쉬는 날이 많은 웨딩업체로 직장을 옮긴 후부터 본격적으로 범행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최 씨는 낮에는 아내와 대학,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두 명을 둔 평범한 가장이자 회사원으로 생활했지만 새벽에는 아내에게 “회사일이 밀려 새벽에 출근해야 한다”며 집을 나선 뒤 연쇄 성폭행범으로 돌변했다.
경찰관계자는 “최 씨는 지난 6월 22일 오전 3시 30분께 청주시 흥덕구 한 원룸 건물 2층에서 김 아무개 씨(26·여)를 성폭행하는 등 6년 동안 청주에서 43건, 천안에서 2건의 강도·강간 행위를 벌이며 금품을 뺏은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최 씨는 청주 용암동과 봉명동의 한 원룸에선 시차를 두고 두 차례나 침입해 2번 성폭행을 하고 특히 지난해 봉명동 원룸에선 일곱 살 아들이 옆에서 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부 B 씨(34)를 성폭행 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최 씨는 치밀한 범행 수법과 꼼꼼한 뒤처리로 6년여 동안 경찰의 수사망을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최 씨는 범행을 위해 자신만의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고 한다. 우선 여대생이나 술집 여종업원, 외국인 강사 등 혼자 사는 여성을 주로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는 타깃으로 정한 여성을 몰래 쫓아가 어디에 사는 지 체크했다.
특히 여성이 사는 원룸에 방범용 CCTV의 설치 여부를 꼼꼼하게 확인했다. 최 씨는 범행도중이라도 인근에서 CCTV가 발견되면 중도포기를 할 정도로 방범용 카메라를 가장 두려했다고 한다. 가스배관이 외부로 연결되어 있는 원룸만을 선택했으며 방범창이 설치된 1층은 피했다. 주로 창문을 열어 놓은 2~3층만을 범행 장소로 택했다. 실제로 피해 여성들 중에 1층에 거주하는 여성은 한 명에 불과했다.
타깃을 정하면 사냥감을 노리는 늑대처럼 새벽녘까지 기다렸다가 움직였다. 경찰에 따르면 최 씨는 “가스배관을 타고 원룸에 들어가는 데 어려울 게 없었다”며 “범행 후에도 가스배관을 타고 내려와 도주했다”고 한다. 그는 경찰의 불심검문을 피하기 위해 여성을 협박할 때 사용할 흉기는 따로 준비하지 않고 피해 여성의 집에 있는 부엌칼과 가위 등을 사용했다. 게다가 지문과 DNA를 남기지 않기 위해 장갑과 콘돔을 사전에 준비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실제로 검거 당시에도 최 씨는 자신의 주머니에 콘돔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범행 뒤에는 현장에 머리카락 하나도 남기지 않는 꼼꼼한 뒤처리로 경찰의 추적을 피했다. 그리고 자신의 차를 범행 장소에서 먼 곳에 주차시켜 놓은 채 걸어서 이동하였고 자신의 휴대폰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완전범죄를 꿈꾸던 최 씨도 결국 경찰의 끈질긴 수사로 인해 덜미가 잡혔다. 경찰관계자는 “지난해 청주에서만 5건의 유사 사건이 발생했지만 단서조차 찾을 수 없었다”면서 “올해 4월 또다시 범행이 발생하자 전담팀을 꾸려 유력한 범죄 예상지 4곳에서 새벽 3~6시까지 100여 일간 잠복수사를 진행하던 중 최 씨를 발견하고 현장에서 격투 끝에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최 씨의 치밀한 수법에 경찰들도 혀를 내둘렀다”며 “2007년 이전의 범행은 기억나지 않는다며 버티고 있는 점으로 봐서 추가 범죄가 더 나올 가능성이 많다”고 말했다.
청주=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