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평소 유 씨와 친하게 지내던 지인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유 씨의 갑작스런 죽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인근 주민들이 아들 이 씨가 가끔씩 유 씨 집에 찾아오면 언성이 높아지고 싸움 소리가 자주 들렸다고 했다”며 “유 씨의 죽음에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제보를 받고 수사에 착수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어머니를 잃은 아들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수사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경찰은 우선 이 씨의 통장 거래 및 휴대폰 사용 내역 등을 중점적으로 조사하며 수상한 부분을 찾아보았다. 그러다 이 씨가 유 씨의 사망 시점을 전후로 박 씨, 전 씨 등과 연락을 수십 차례 했으며, 특히 박 씨에게 거액의 돈을 건넨 정황을 발견했다. 이에 경찰은 이 씨를 소환해 추궁한 결과 이 씨로부터 모든 모든 사실을 자백받았다. 어머니 유 씨가 사망한 지 15개월 만에 진실이 밝혀진 것이다.
▲ 영화 <공공의 적>에는 부모를 무참하게 살해하고 거짓 눈물을 흘리는 엘리트 아들이 나온다. | ||
이 씨가 중학교에 다니던 무렵인 1989년 유 씨는 남편과 이혼하고 홀로서기를 했지만 이후 오히려 점포를 늘리면서 재산을 모았고 아들인 이 씨를 지극정성으로 키웠다. 지인들도 유 씨의 지극한 자식 사랑에 감탄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 씨는 유복한 성장기를 보내고 서울의 한 명문대 체육특기생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이 씨가 결혼할 때에는 유 씨가 따로 살 수 있도록 하남시에 빌라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이 씨가 대학시절 경마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 불행의 씨앗이었다. 그는 경마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설 경마를 알게 됐고, 자신도 모르는 새 서서히 빠져들었다고 한다. 친부모 자식보다 사이가 좋았던 이들 모자간이 어긋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어머니인 유 씨가 여러 번 꾸짖기도 했지만 이미 경마에 중독돼버린 그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결국 그는 학점 미달로 대학에서 제적을 당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됐다.
집에서 노는 아들을 그냥 볼 수 없었던 유 씨는 아들이 중고차 매매업을 할 수 있도록 사업자금을 대주며 도와주었다. 그리고 ‘결혼을 하면 정신을 차리겠지’ 싶어 아들이 원하는 아가씨와 서둘러 식을 올리고 집도 장만해주었다. 하지만 그는 변하지 않았다.
결국 돈이 궁해진 그는 지난해 3월 어머니 유 씨에게 찾아가 “중고차 매입 자금이 필요하다”며 상속을 요구했다. 하지만 유 씨는 “사설 경마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는 너에게 재산을 줄 수 없다”며 “차라리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재산이 한 푼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어머니를 살해하고 유산을 독차지하기 위한 ‘끔찍한 계획’을 세우게 된다.
우선 청부살인업자를 구하기 위해 PC방을 찾아 ‘전과자와 출소자의 쉼터’란 인터넷 카페 게시판을 찾았다. 거기서 ‘시키는 일은 다 해 주겠다’라는 글을 올린 박 씨, 전 씨와 만나 “어머니를 죽여 달라”고 부탁했다.
이 씨의 부탁을 받은 박 씨와 전 씨는 지난해 4월부터 유 씨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기회를 노렸다. 마침 유 씨가 아침운동을 하러 매일 경기 성남시 수정구에 있는 한 대학 앞을 자주 지나간다는 사실을 파악한 이들은 학교 앞에서 교통사고로 위장해 살해하려 했다. 하지만 막상 범행을 실행하려는 순간 박 씨가 주저해 실패로 끝났다.
이에 이 씨는 범행 장소를 유 씨의 집으로 바꾸기로 했다. 평소 당뇨병을 앓아오던 어머니를 병사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서였다. 이 씨는 만약 이번에도 실패할 경우 돈을 주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결국 같은 해 5월 2일 오전 4시 박 씨와 전 씨는 유 씨 집에 침입해 숨어 있다가 아침운동을 하고 돌아온 유 씨의 얼굴에 비닐 랩을 씌워 질식해 숨지게 했다. 유 씨가 죽자 이 씨는 박 씨와 전 씨에게 살해 대가로 1억 3000만 원을 건넸다.
이 씨는 어머니가 당뇨로 숨진 것처럼 꾸미고 바로 장례를 치렀다. 연금보험금 등 20억 원 상당의 재산을 상속 받으며 모든 것이 계획대로 마무리되는 듯했다. 특히 범행을 감추기 위해 어머니 유 씨의 제사까지 지내왔을 정도로 치밀하게 움직였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유산을 주지 않겠다는 말에 순간적으로 화가 나 범행을 저질렀다”며 “친자식처럼 잘 키워주셨는데 왜 그런 몹쓸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뒤늦은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사건을 담당한 경찰 관계자는 “이 씨는 20억 원가량을 상속 받았지만 불과 1년 만에 15억 5000만 원을 사설 경마장에서 탕진한 상태였다”며 “30년 동안 길러준 어머니를 고작 경마 자금 때문에 살해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라며 혀를 찼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