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정승필 실종사건>의 한 장면.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 ||
오후 1시 30분경. 꽁꽁 얼어붙은 쓰레기 매립장을 조심스레 파헤쳐 나가던 감식반의 삽질이 멈췄다. 뭔가를 찾아냈다는 신호였다. 잠시 후 많은 사람들이 숨죽이며 지켜보는 가운데 감식반 요원이 뭔가를 조심스레 끌어올렸다. 다름아닌 처참하게 그을린 사람의 사체였다.
“세상에 이럴수가….”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쓰레기더미와 함께 묻혀있던 남자의 사체는 옷이 모두 불에 타고 신체의 상당 부분이 심하게 훼손된 끔찍한 상태였다. 이번에 김원배 경찰청 수사연구관이 전하는 사건은 약 20년 전 국민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면목동 카페 손님 살인사건’이다.
사건은 한 건의 실종 신고가 접수되면서 시작된다. 1월 2일 오후 서울 태릉경찰서에 한 30대 남자가 찾아왔다. 실종신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남자가 실종신고를 한 사람은 자신의 처남인 안수철 씨(가명·28)였다. 우선 당시 상황에 대한 김 연구관의 얘기를 들어보자.
“가족들에 따르면 서울 중랑구 망우동에 거주하는 안수철 씨가 집을 나선 것은 구랍 29일이었다. 이날 밤 11시경 송년회에 간다며 집을 나선 것이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날 안 씨는 귀가하지 않았고 아무 연락도 없었다. 결국 기다리다 못한 안 씨의 자형이 3일째 되는 날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게 된 것이었다.”
신고접수 후 경찰의 관심은 가출인가 실종인가에 집중됐다. 멀쩡한 성인이 귀가하지 않은 사건인 탓에 초기에는 경찰도 그다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더욱이 안 씨가 실종된 시기는 모두들 송년회 분위기로 들떠 있는 시점이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20대 후반의 안 씨가 연말 송년회 분위기에 휩쓸린 나머지 미처 가족들에게 연락을 취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안 씨의 가족들은 안 씨의 평소 성격과 당시 안 씨가 처해있던 특수한 상황을 근거로 범죄에 연루됐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안 씨는 원래 대우조선의 하청업체에서 용접공으로 근무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3월 작업도중 오른쪽 대퇴부가 골절되는 큰 사고를 당하게 된다. 이 사고로 중상을 입은 안 씨는 서울의 한 병원에서 장기간 입원해 재활치료를 받아오다가 지난해 10월에서야 퇴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즉 당시는 안 씨가 퇴원한 지 불과 두 달여밖에 안돼 몸이 정상이 아니었다. 실제로 당시 안 씨는 병원에서 퇴원 후 재활치료를 계속해오면서 요양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중사고를 당해 무려 7개월이나 입원해 있던 안 씨가 연말 분위기에 휩쓸린 나머지 연락도 두절하고 유흥을 즐기고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었다. 뭔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수사팀은 안 씨가 범행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에 들어갔다. 특히 수사팀은 안 씨가 실종되기 이틀 전 사측으로부터 당시로서는 거액의 산재보험금을 받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확인결과 안 씨는 지난해 12월 27일 총 1480만 원의 보험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팀은 즉시 안 씨의 금융거래 내역 확인에 들어갔다. 그리고 안 씨의 통장거래내역을 확인하던 수사팀의 입에서는 저절로 탄식이 터져 나왔다. 구랍 30일 오전 9시 반경, OO은행 태릉지점을 시작으로 안 씨의 통장에서 총 800만 원이 인출된 사실이 파악됐기 때문이었다. 인출된 돈은 50만 원권 수표 4장, 30만 원권 수표 10장, 10만 원권 수표 30장이었는데 서울과 경기도 일원의 은행에서 무려 48차례에 나눠서 인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내역 확인결과 당시 안 씨의 통장에 들어있던 800만 원은 안 씨가 사고로 받은 산재보험금의 일부였다. 안 씨는 산재보험금을 받자마자 그중 일부인 800만 원을 자신의 통장에 예치한 것으로 확인됐는데 사흘째 되는 날부터 그 돈을 수십 차례에 걸쳐 인출한 것이었다. 분명 정상적인 출금방법은 아니었다. 정황으로 볼 때 안 씨에게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수사팀은 사건 당일 안 씨가 미처 입금하지 않은 다량의 현금과 통장을 갖고 나간 사실로 미뤄 면식범이 아닌 강도에게 변을 당했을 가능성도 열어놓고 수사를 진행했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수사팀은 당시 은행에서 인출된 수표 44장에 대해 이서자와 추심자를 철저히 추적했다. 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 수표가 다량인 만큼 수표를 사용하면서 범인이 무심코 이서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수사팀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리고 수표에 이서한 인물들을 체크하는 과정에서 수사팀은 중요한 사실을 파악하게 된다. 바로 이들이 모두 중랑교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하거나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20대 청년들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수표 사용자들은 서로 아는 사이로 확인됐다. 이번 사건이 여러 명의 공범들에 의해 저질러진 범행일 가능성이 제기되는 순간이었다.”
수표에 이서된 이름과 주소 등을 확인한 결과 드러난 인물은 면목동에서 술집을 운영하고 있던 김승도 씨(가명·23)등 총 7명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폭력 등의 전과가 있었던 김 씨는 당시 이미 행적을 감춘 상황으로 그가 운영하던 술집도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수표에 이서한 다른 이들도 행방이 묘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수사팀은 김 씨가 운영하던 술집이 최근부터 문을 닫은 채 영업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우선 김 씨를 추적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만삭의 동거녀를 두고 있었던 김 씨는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면목동 일대 유흥업소 업주들의 친목단체 회장까지 맡는 등 지역에서 상당히 발이 넓은 인물이었다. 김 씨의 무선호출기를 이용해 추적을 벌이던 수사팀은 16일 밤 10시 40분께 마포구 노고산동의 한 모텔에 은신해있던 김 씨 등을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안 씨가 실종된 지 18일 만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안 씨를 상대로 이처럼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것일까. 조사결과 김 씨 일당의 범행은 일확천금에 눈이 먼 나머지 자신의 술집을 찾은 손님을 상대로 벌인 범행으로 드러났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구랍 30일 새벽 4시경 안 씨는 홀로 중랑구 면목동에 소재한 김 씨의 술집을 찾았다. 김승도에 따르면 술을 마시던 안 씨가 접대하는 아가씨에게 800만 원이 입금되어 있는 통장과 100만 원 짜리 수표 3장을 꺼내 보이며 자랑을 하더라는 것이다. 취중에 ‘나도 돈 얼마든지 있다. 무시하지 마라’며 좀 으스댔던가보다. 이를 지켜 본 김승도는 슬슬 돈에 욕심이 났다고 한다. 이에 김승도는 가게 종업원 한성국(가명·25)과 함께 안 씨의 돈을 가로채기로 뜻을 모은다. 이들은 가게 문을 걸어 잠그고 셔터를 내린 뒤 본격적인 범행에 착수했다. 특히 술에 취한 안 씨가 접대부와의 외박을 요구하자 김승도 일당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려들었다. 안 씨에게 일부러 시비를 건 이들은 술에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안 씨를 주먹과 발을 이용해 마구 폭행하고 과도와 맥주병, 삽으로 마구 찔렀다. 그리고 안 씨가 갖고 있던 수표와 통장, 도장을 뺏았다.”
심한 폭행과 과다출혈 등으로 안 씨는 실신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한참 후 안 씨가 깨어나자 이들은 그를 내실로 끌고 갔다. 그리고 이때부터 만신창이가 된 안 씨를 상대로 갖은 폭행을 했다. 이들은 비닐포장끈으로 안 씨의 손발을 결박하고 맥주병으로 머리를 때리는 등 고문을 가하며 “통장비밀번호를 말하지 않으면 당장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안 씨는 자신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산재보상금을 뺏기지 않으려 한동안 버티기도 했지만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안 씨로서는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안 씨의 착각이었다. 김승도 일당의 머릿속에는 이미 무서운 시나리오가 그려져 있었다. 이들은 범행이 들통날 것을 우려한 나머지 안 씨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안 씨를 죽이고 돈을 나눠 갖기로 모의한 이들은 면목동 일대에서 활동하는 동네 후배 및 불량배 등 5명을 범행에 불러 들였다. 이어지는 김 연구관의 얘기.
“김승도는 후배들을 시켜 돈을 인출해오게 했다. 목표한 돈을 손에 쥐자 이제 남은 것은 안 씨를 감쪽같이 처리하는 것뿐이었다. 다음날 오전 11시께 김승도 일당은 렌터카센터에서 미니버스와 승용차를 빌려 타고 경기도 남양주군 벌내면으로 향했다. 안 씨를 끌고 수락산 중턱으로 간 이들은 곡괭이로 내리쳐 쓰러뜨린 뒤 철사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 이들은 사체를 암매장하려 했으나 땅이 얼어 팔 수가 없자 사체를 승용차 트렁크에 싣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중랑구 중화동의 한 철길 옆 풀숲에 차를 숨겨뒀다.”
이들은 이후 아무일도 없다는 듯 태연하게 생활했다. 갑작스레 잠적을 하거나 생활동선을 바꾸면 오히려 의심을 살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다. 하지만 언제까지 사체를 차 안에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체처리 방법에 대해 고민하던 이들은 4일 낮 12시께 사체가 실린 승용차를 몰고 무작정 외곽으로 향했다. 그리고 한참을 배회한 끝에 인적이 드문 가평의 야산에 소재한 쓰레기매립장을 암매장 적지로 선택했다. 이들은 쓰레기장 근처에 구덩이를 파고 사체를 집어넣은 후 미리 준비한 석유 2리터를 붓고 불을 지른 뒤 흙으로 덮었다.
조사결과 이들은 안 씨의 사체를 매장한 후 서울 시내의 여관 등지를 전전하며 수사망을 교묘히 피해왔으며 안 씨로부터 강탈한 돈은 모두 유흥비로 탕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강도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된 주범 김승도는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29세의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또 범행에 가담한 3명에게는 무기징역이, 나머지 3명에게는 범행가담 정도에 따라 징역 3년~12년의 중형이 선고됐다.
김원배 연구관의 사건 회고
황금만능+인명경시 결합 범죄
김원배 연구관은 이 사건을 황금만능주의와 인명경시풍조가 결합된 전형적인 사건이라고 분석했다. 20대 초반에 불과한 술집 주인이 종업원과 사회 후배들까지 불러들여 잔악한 범행을 저지르고 완전범죄를 기도한 이 사건은 당시 뉴스에 보도되며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특히 검거된 후 이들은 “도망다니다가 배라도 탈 수 있었는데…” “돈만 빼앗고 피해다니나 살인자로 도망다니나 붙잡혀 감옥 가는 것은 마찬가지 아니냐”는 말로 수사관들을 경악케 했다고 한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