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부터 태광산업·롯데·한화의 창업자 무덤 도굴 사건 당시의 현장. MBC화면 캡처 | ||
경북지방경찰청은 1월 28일 타인 선영의 묘를 훼손한 것도 모자라 유골을 훔쳐내고 그것을 담보로 거액을 요구한 40대 남자를 체포했다. 태광그룹 창업자인 고 이임용 전 회장의 유골을 훔친 뒤 거액의 돈을 뜯어 내려한 정 아무개 씨(49)가 그 장본인이다. 재벌가 묘만 파헤친 정 씨의 엽기 도굴 행각을 들여다봤다.
정 씨는 1월 26일 오후 8시경 경북 포항시 청하면에 소재한 고 이임용 회장의 묘지를 파헤친 뒤 머리 부분의 유골 일부를 훔쳤다. 봉분의 머리 부분을 70~80㎝ 깊이로 파낸 뒤 유골을 덮고 있던 석관 뚜껑을 들어내는 수법이었다. 정 씨의 범행으로 봉분은 5분의 1 정도가 훼손됐다. 범행 직후 곧장 대전으로 올라간 정 씨는 태광그룹 비서실로 전화를 걸어 유골을 돌려주는 조건으로 10억 원을 요구했다.
그룹 측과 ‘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도 정 씨는 거침이 없었다. 정 씨는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그룹 측이 섣불리 신고를 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고 본인의 실명까지 밝히며 거액을 요구하는 대범함을 보인 것이다. “내가 정OO다. 과거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한화랑 롯데 도굴도 내가 한 짓이다”라고 밝힌 정 씨는 아들 명의로 된 은행 계좌번호를 알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룹 측에서 경찰에 신고할 것을 우려한 정 씨는 방어막을 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그룹 관계자에게 “신고할 경우 유골은 절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경찰에 알리면 유골을 훼손하고 자살하겠다”며 협박을 가하기도 했다. 정 씨는 이후에도 그룹 측에 수 차례 전화를 걸어 짧은 시간 동안 용건만 말하고 전화를 바로 끊는 수법으로 경찰의 추적을 피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정 씨가 협박전화를 걸 당시 사용한 전화번호와 범행 현장 인근 도로의 CCTV에 찍힌 렌터카 차량번호 등을 추적한 끝에 1월 28일 오후 2시 15분경 대전 시내의 한 도로변에서 정 씨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놀라운 사실은 정 씨의 범행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알고보니 정 씨는 과거에도 두 차례나 재벌가 선영의 묘를 파헤치고 금품을 요구해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상습범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태광그룹 측으로부터 신고를 받은 경찰은 이 사건이 지난 1999년과 2004년 울산과 공주에서 발생한 대기업 회장 선친 묘 도굴사건과 유사하다고 판단, 당시 주범이었던 정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추적을 해왔다. 조사 결과 출소 후 특정 직업 없이 지내던 정 씨는 국내 30여 개 대기업의 가족사를 학습하고 인적이 드문 선영 묘지들을 물색한 끝에 포항에 소재한 이 회장의 묘소를 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 씨가 재벌가 조상묘를 도굴한 사건으로 뉴스에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1999년이다. 첫 범행 타깃은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부친묘였다. 신 회장의 일대기를 다룬 <신격호의 비밀>이라는 책을 통해 기본 정보를 입수한 정 씨는 신 회장 부친 묘에 값나가는 금은보석이 묻혀있다는 소문에 더욱 자극을 받아 범행을 저질렀다.
1999년 3월초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충골산에 있는 신 회장 부친 묘소를 파헤치고 유골 일부를 훔친 정 씨는 회장 비서실로 전화를 걸어 8억 원을 요구하다 4일 만에 검거됐다. 당시 정 씨는 “잘못했다. 유족들에게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며 “범행 후 자살하기 위해 극약까지 구입했다”고 털어놨다.
이 사건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정 씨는 2003년 12월 여주교도소에서 성탄절 특사로 출소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정 씨는 일정한 직업을 갖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극심한 생활고가 계속되자 정 씨는 출소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2004년 9월 또 다시 도굴 범행을 계획한다. 과거 한 차례 실패 경험이 있던 정 씨는 완전범죄를 위해 역할 분담을 할 수 있는 공범들을 끌어들이기까지 했다.
정 씨는 대전 일대에서 선후배로 지내온 일당 3명과 함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조부모 묘를 도굴하기로 공모했다. 이미 한 차례 경험이 있었던 정 씨를 필두로 한 이들의 범행은 준비과정부터 치밀하게 진행됐다. 10월 7일, 9일, 18일 세 차례에 걸쳐 김 회장 선영을 사전답사한 일당은 같은 달 20일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새벽 3시까지 김 회장 조부 묘에서 두개골과 팔, 엉덩이 뼈 등 유골 5점을 훔쳤다. 당시 이들은 야산의 농로에 가지치기를 해놓고 도주로를 미리 만들어 뒀으며 동일수법 전과자인 주범 정 씨는 일차 수사대상이 될 것을 우려해 사건당일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 치밀함을 보였다.
다음날 오전 서울 용산구의 공중전화를 이용해 한화그룹 본사에 전화를 건 정 씨는 일부러 심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며 “김승연 회장을 바꿔달라. 선영에서 유골을 가져왔으니 확인해보라”고 말했으나 김 회장이 당시 부재중이라 직접 돈을 요구하지는 못했다. 결국 이 사건으로 구속돼 또 다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정 씨는 지난해 11월 출소했다.
출소한 지 2개월여 만에 또 다시 같은 범행으로 쇠고랑을 차게 된 정 씨는 “복역 중 부인이 사망하고 출소 후 자녀 2명과 함께 생활해 왔는데 생활비가 없었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며 뒤늦게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렇다면 정 씨가 전문 도굴범으로 전락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경찰에 따르면 정 씨는 청소년기부터 교도소를 제 집처럼 드나들었던 인물로 사회에 정상적으로 정착해 생계를 꾸려갈 생활력이 없는 인물이었다. 정 씨는 17세이던 1979년 3월 절도와 횡령 등 혐의로 경찰에 처음 입건돼 소년보호처분을 받은 이후 1983년 12월 대구에서 특수강도 행각을 벌이다 검거돼 징역 2년6월을 선고받는 등 수시로 교도소를 들락거린 것으로 드러났다.
큰 맘 먹고 시작한 사업이 망한 것도 계기가 됐다. 1992년 6월 특수절도 혐의로 1년 6월형을 선고받고 1994년 출소한 정 씨는 그 후 대전시 대덕구 오정동에서 다방을 운영하다 영업을 접고 야채 중간도매상으로 전업했다. 하지만 사업은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고 이 과정에서 오히려 수천만 원의 빚을 지게 된다.
한방에 큰돈을 손에 쥘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심하던 정 씨는 급기야 엽기적인 범행을 착안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도굴이었다. 정 씨는 애초부터 재벌가 선영만을 타깃으로 삼았다. 일반인들의 묘를 파헤쳐봤자 노력과 위험에 비해 큰 재미를 볼 수 없다고 판단한 정 씨는 아예 재벌가 묘로 눈을 돌렸다.
현행법상 분묘를 훼손할 경우 5년 이하 징역이지만 사체나 유골을 영리 목적으로 훔친 경우에는 10년 이하 징역형에 처해진다. 따라서 이미 두 차례의 동종 전과가 있는 정 씨는 중형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현재 정 씨를 상대로 유골의 행방을 추궁하는 동시에 공범 여부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