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표.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국가보안법 및 열린우리당 이철우의원의 사상전 공방 등 ‘이념 논쟁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박 대표가 당 안팎에서 궁지에 몰리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차기 대권 후보는 물론 당 대표로서의 권위와 위상마저 무너지는 게 아니냐는 암울한 전망마저 고개를 들고 있다.
실제로 당내에서는 “이번 국보법 투쟁이 알맹이와 쭉정이를 구별하는 계기가 됐다”며 ‘박근혜 한계론’이 제기되고 있고, 이 틈을 타 잠재적 대권 후보 경쟁자인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지사의 도발 징후도 뚜렷하게 감지되고 있다. 박 대표로서는 안팎으로 ‘진퇴양난’의 외통수에 걸린 셈이다.
이에 따라 박 대표 측근들은 ‘박근혜 일병’을 ‘안보의 늪’에서 구출하고, 국면전환을 위한 전방위 작전을 구상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표와 그 측근그룹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MBC가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박 대표측에게는 가히 충격적이다. 차기 주자군에 대한 호감도 면에서 박 대표는 고건 전 총리(26%)에 이어 22. 6%를 얻는 데 그쳤다. 4월 총선와 7월 당 대표 선출 이후 40~50%를 웃돌던 호감도가 몇 달 새 최대 30% 포인트 이상 추락한 것이다. 높은 대중적 지지가 최대 무기였던 박 대표로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박 대표 주변에 구름처럼 몰려들던 사람들도 이제는 발길을 끊었다고 한다.
한나라당 한 고위관계자는 “박 대표가 국가정체성과 국보법 논란을 거치면서 ‘수구보수 꼴통’ 이미지가 부각된 것이 호감도 하락의 원인”이라며 “이는 개혁과 쇄신의 이미지를 바랬던 국민들의 요구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보법 폐지를 몸으로 막겠다” “대표직을 걸고 사수하겠다”는 ‘여전사’의 모습이 오히려 강한 역풍을 맞은 셈이다.
당내 소장파들은 “박 대표가 전통 지지층인 ‘집토끼’는 묶어둘 수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한나라당 재집권에 필수 요소인 ‘산토끼’는 다 놓쳤다”며 “밀월관계를 유지해 왔던 소장개혁파의 목소리에는 귀를 닫고 강경 보수파의 말만 듣다가 신세망칠 위험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대표선출 이후 소장개혁파와 일정한 거리를 두는 ‘머쓱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소장개혁파들은 양지만 찾아다니는 기회주의자들로 언제 등에 칼을 꽂을지 모른다며 강경보수파들이 박 대표를 부추겼다는 관측이다. 여기에 원희룡 고진화 의원 등이 당론에 배치되는 잇딴 돌출발언을 하면서 박 대표의 행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원은 “원래 안보 문제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박 대표가 박세일 박재완 등 여의도 연구소팀과 원희룡 남경필 정병국 의원 등 소장파를 가까이 했으면 지금과 같은 어려운 상황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원래 콘텐츠나 분명한 리더십이 부족했던 박 대표가 행정수도 이전과 국보법 논란 와중에 보여줬던 오락가락 행보는 국보법 사태가 수습되더라도 상당한 후유증을 남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 최근 대권 행보를 본격화하고 있는 이명박 서울시장(왼쪽)과 손학규 경기도지사. | ||
코리아리서치센터 조사에서 이 시장의 호감도는 11.2%를 기록했다. 서울시 교통체제 개편에 대한 긍정평가에다 청계천 복원사업 등이 2~3%대에 머물던 호감도를 끌어 올렸다는 것이다. 특히 이 시장의 강력한 리더십이 어정쩡한 박 대표와 비교되면서 상승효과를 더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전방부대를 방문한 데 이어 지난 17일 광주 망월동 묘역을 방문했다. ‘민주화 성지’ 방문을 통해 70년대 개발독재와 수구적 이미지를 쇄신하겠다는 것으로, 이 시장의 장기적인 ‘호남 스며들기’ 일환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손학규 지사는 최근 ‘여야 주도세력 교체’를 주장한 데 이어 ‘한나라당 판갈이론’을 제기했다. 현재의 한나라당 틀로서는 차기 대권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며 판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당권을 쥐고 있는 박 대표를 겨냥하는 한편 당내 지지기반이 취약한 손 지사가 새판짜기를 통해 당 장악력을 높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손 지사는 “산업화·근대화에 기반을 둔 수구적 보수세력이 과거회귀식 이념논쟁에 빠져 국민들을 절망으로 내몰고 있다”며 근대화 기수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 대표와 이 시장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그렇다고 박 대표는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대공세를 준비중이라는 것이다. 우선 ‘이념논쟁’을 조기에 정리하고 개혁과 쇄신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방안이 강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표 한 측근은 “국가정체성과 국보법 논란이 일정 정도 이미지 훼손을 초래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했지만 ‘나약한 여성정치인’ 이미지를 떨쳐내고 카리스마를 갖춘 지도자로서 재탄생하기 위해서는 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며 “이번 논란이 일단락되면 21세기 한국이 나아가야 할 국가전략 등 마스터 플랜을 공표하는 등 새로운 모습이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태생적으로 안보불안 알레르기를 갖고 있는 박 대표가 지나칠 정도로 안보정국 전면에 나서는 바람에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역풍이 초래된 만큼 이를 만회하기 위한 카드도 강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미 여의도 연구소 박형준 의원 등 당내 ‘전략통’에게 희망과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집권 프로그램을 주문해 놓았다는 것이다.
마스터 플랜은 최대 취약지역인 호남개발 전략과 행정수도 이전 불발에 따른 충청권 공략 프로그램, 당개혁방안, 21세기 국가운영 비전 등 크게 네 가지로 정리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박 대표는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의 고향(충북 옥천)인 충청권이 행정수도 이전 실패로 한나라당에 등을 돌린 것을 무엇보다 아쉬워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당내 신행정수도후속대책특위에 기업도시 유치 등 획기적인 개발전략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또 내년 초에 ‘U’자형 해안지역을 개발하는 국토균형발전전략을 발표하면서 호남에 투자를 집중하는 방안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여의도연구소는 국회가 정상화되는 대로 정치 경제 외교 사회 문화분야 등에 대한 장기 정책과제들을 발표할 예정이다.
자택개방 등 ‘스킨십 정치’ 후속탄으로 민생 현장 및 소외계층 방문 등 대중정치 행보를 한층 강화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박 대표 한 측근은 “지난 4월 총선 때 전국 시장과 골목을 구석구석 누빈 박 대표의 경쟁력은 그 어느 정치인보다 높다”며 “대중속으로 파고드는 전략으로 ‘국민속의 박근혜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유영욱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