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한선의 ‘76’(왼쪽), 김혜수의 ‘69’ | ||
그렇다면 이 숫자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나라에서도 라이선스 판매되는 미국의 캐주얼 브랜드 ‘1949’는 ‘서부개척기’를 뜻하는 숫자. 그럼 이 숫자들은 혹 창립기념일? 아니면 기업주의 나이? 결론부터 얘기하면 ‘아무 의미도 없다. 그냥 숫자일 뿐’이다.
탄생 배경은 이렇다. 영캐주얼 업체들은 브랜드 탄생 시기 때 너나 할 것 없이 유명연예인들로 ‘스타마케팅’을 한다. 서로들 자사 제품을 입히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이들이 TV에 출연할 때 자사 옷을 입었을 경우 그 장면은 그대로 홍보사진이 되어 매장에 붙여지고 실제 판매에서도 상당한 효과를 나타낸다.
요는 TV의 심의 규제다. 업체 입장에선 스타들에게 홍보용으로 옷을 협찬했을 경우 자사의 로고가 크게 나와야 효과가 있는데 방송국측에선 죽어라하고 로고를 모자이크 처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숫자. ‘설마 숫자까지 지우랴?’ 방송국 PD를 감쪽같이 속이고(?) 소비자와 은밀한 대화 통로를 마련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만약 어깨 쪽에 76이 보이면 그건 C.O.A.X. 제품이다.
▲ 송혜교의 ‘75’(왼쪽), 정우성의 ‘27’. | ||
“단순한 기본 모양에 회사 로고나 숫자를 새긴 티셔츠만이 기획가격에 팔려나간다니 서글픈 일이죠. 의류회사에 기획자나 디자이너가 필요 없어지는 것 아닙니까.
소비자들도 문제예요, 그 회사의 홍보직원도 아닌데 그 회사 로고나 숫자가 박힌 옷을 왜 입고 다닙니까? 우리 백화점엔 그런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지 않아요. 입점시 다른 개성 강한 브랜드들이 죽어버리거든요. 우리는 패션성이 분명한 업체만 선정합니다. 그래야 일류를 지향할 수 있거든요.”
구구절절 지당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문제는 매출. 아무리 옷이 좋아도 팔리지 않으면 그만이다. 로고나 숫자 박힌 기획상품이라도 내놓아 매출이 올라가면 그만큼 백화점측의 수수료 수입도 좋아지는 것이다. 그 유혹을 과연 MD들이 버텨낼 수 있을까.
명품으로 둔갑한 수입품과 판에 박은 듯한 기획상품 그리고 중국에서 밀려드는 저가의류의 공세로 인해 대한민국의 패션산업은 사지에 몰려 있다.
(주)서령창작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