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박근혜, 이명박, 손학규 | ||
삼국지에서 촉나라 유비, 위나라 조조, 오나라 손권이 천하를 삼등분해 패권을 다퉜듯이 한나라당의 잠재적 대권 후보인 박근혜 대표,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지지사 등 세 명이 솥발처럼 나눠 선 삼분정립 형국을 형성하면서 대권 후보 쟁탈전을 펼칠 것이 분명하다.
당권을 쥐고 있는 박 대표가 조조에 비유된다면 이 시장은 천하의 경제권를 장악했던 손권에, 세력은 가장 약했지만 상대적으로 흠집이 적은 손 지사는 유비에 비유된다.
이들 세 명은 직접적인 맞대결뿐 아니라 세력이 큰 한 명을 견제하기 위해 다른 두 명이 짝짓기를 했다가 갈라서는 합종연횡을 반복하며 세구축 작업을 벌여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 시장과 손 지사는 당내 일각의 `박근혜 불가론’을 활용하는 적대적 협력관계를 구축하며 박 대표를 견제하겠다는 전략인 반면, 박 대표는 대세론으로 이들을 제압하며 두 사람 중 한 명을 협력자로 택일하겠다는 태세다.
이들 세 명은 최근 당내 인사들과의 접촉 빈도를 높이며 콘텐츠 및 리더십 개발에 주력하는 등 각자의 `V 프로젝트’를 전개하는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이들은 또 당 안팎의 인사들과 만나면서 자신의 강점을 강조하는 한편, 다른 주자들의 약점을 시사하는 발언들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강점에 못지 않게 적잖은 약점을 갖고 있는 이들의 싸움은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되느냐는 결과뿐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얼마만큼 관심을 끄느냐는 흥행성과에 따라 한나라당의 재집권 향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표는 지난해 7·19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재선출된 이후 당 장악력을 높여가고 있다. 이 시장과 손 지사의 도전을 받는 입장에서 안방부터 확고히 다져놓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특히 국가보안법 등 4대 입법 논쟁을 거치면서 박 대표의 당 장악력이 한층 강화됐다는 평가다. 열린우리당은 박 대표가 4인 회담 과정에서 특유의 황소고집으로 당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보고, “한나라당이 여자 한 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쩔쩔 맨다”고 비꼬기까지 했다.
당내에서는 김덕룡 원내대표는 수석부총무로 전락했고, 박 대표가 당권은 물론 원내대표 역할까지 1인3역을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당의 한 소장파 의원은 “박 대표의 강경입장에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 박 대표의 파워가 막강해 몸을 움츠리고 있다”며 “현재로서는 박 대표의 독주를 막을 마땅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박 대표 측근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박 대표가 초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그간 약점으로 지목돼온 `리더십 부재’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셈법으로 보인다. 4대 입법 논쟁을 통해 전통적 지지층을 확보한 박 대표는 쟁점법안 처리가 무난히 매듭지어질 경우 본격적인 중도노선으로 선회해 `산토끼’ 사냥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금명간 선보일 당명 개정을 포함한 당 개혁방안과 당 정책연구소인 여의도 연구소가 연쇄적으로 선보이고 있는 국가 선진화 방안이 `합리적 보수’ 초점에 맞추고 있는 점은 박 대표의 향후 노선 선택과 맥을 같이한다는 분석이다.
박 대표는 강경보수 입장으로 당내 지지는 확고해졌지만 최대 강점으로 꼽혔던 대중적 이미지에 흠이 간 것은 손실이자, 이후 극복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
경쟁자인 이 시장과 손 지사는 박 대표의 세력 확대에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두 사람은 앞다퉈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그는 “정치도 경쟁력으로 해야 하는 시대인 만큼 정치인이 꼭 CEO 출신일 필요는 없지만 CEO 마인드가 없으면 정치를 제대로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현대건설 회장 등 CEO 출신인 자신이야말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정치인이라는 점을 피력한 것이다.
이 시장은 이재오, 홍준표 의원 등 `MB(이 시장 이니셜)계’로 불리는 측근 의원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도 다른 의원들과의 개별접촉 빈도는 높여가는 등 당내 입지 확보에 나서고 있다. 또 각계 전문가 그룹과 정·관계 및 재계 인사들과의 교류에도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이 시장의 대권 행보와 맞물려 해석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이 시장이 대중 정치인으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는 시점은 5월쯤으로 예상된다. 최대 역점 사업인 청계천 복원 공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화려하게 등장하겠다는 것이다.
박 대표와 이 시장에 비해 갈길이 바빠 보이는 사람은 손학규 경기지사다. 그는 해외투자 유치에 전력하는 등 `경제대통령’ 이미지 심기에 주력했으나, 행정수도 문제로 여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던 이 시장이나 박 대표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끌지 못했다.
손 지사는 최근 “기업인들의 의지를 꺾어 놓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국보법보다 더 나쁘다”며 “대통령에게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유지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운동권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편을 들고 나선 것은 대권주자로서의 독자적인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승부수로 보인다.
그는 당내 소장파 모임인 `새정치 수요모임’과 `국가발전연구회’ 소속 의원들과의 접촉 빈도를 높이는 한편 차기 경기지사를 노리는 당내 의원들과의 친밀도를 높여가고 있다.
손 지사가 특히 주목하고 있는 것은 정치권 밖에서 논의되고 있는 `뉴라이트 운동’이다. 손 지사는 “ 뉴라이트는 이념적 대립이 심각한 상황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바람직한 방향”이라며 “운동전개 과정에서 많은 실천적 과제가 많이 나올 것”이라며 합류의사를 시사했다.
당내 기반이 취약한 손 지사로서는 당밖 세력과의 연대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이는 그가 누차 강조해온 `한나라당 판갈이론’의 연장선 위에 있다.
손 지사와 가까운 한 의원은 “손 지사가 약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본격적인 검증단계에서 박 대표와 이 시장의 약점이 드러나면서 손 지사의 가치는 부각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구시대 이미지의 두 사람보다는 손 지사의 경쟁력이 낫다는 것이 판명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당의 한 중진의원은 “강점보다는 자신의 약점을 보완한 사람이 천하를 얻었다”며 “박 대표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딸이라는 유신의 그늘을, 이 시장은 정주영 전 현대회장 등 현대그룹과의 관계를, 손 지사는 취약한 대중적 인지도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 이 시장, 손 지사 세 명이 천하의 대권 도전자가 되기 위해 어떤 묘책으로 현대판 삼국지를 흥미진진하게 엮어 나갈지 주목된다.
유영욱 언론인